2023년 1월호

STACK TO THE SKY

성화와 검, 반듯한 직사각형까지 저마다 다른 조형미를 뽐내는 마천루 건축의 최신 키워드는 바로 ‘스택트 박스Stacked Box’, 
즉 ‘적층된 상자’다. 분리된 블록에 손쉽게 다른 기능을 부여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적층으로 인해 생겨난 
야외 공간을 추가로 확보할 수 있는 효율성도 지니기 때문. 새로운 마천루 건축의 트렌드를 엿볼 수 있는 6곳의 빌딩을 소개한다.

Guest Editor 박지혜



Telus Sky Tower

덴마크 코펜하겐에 위치한 건축 회사 BIG는 독특한 건축 철학으로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울타리가 없는 동물원, 하이킹이 가능한 슬로프가 있는 쓰레기 소각장 등 상상을 뛰어넘는 건축물을 선보여온 이들은, 최첨단 기술을 도입한 ‘친환경 고층 빌딩’으로도 명성이 높다. ‘포름 기빙Form Giving’, 즉 ‘형태를 부여한다’는 이들의 평소 건축 철학이 잘 반영된 고층 빌딩이 있으니, 바로 캐나다 캘거리 도심의 ‘텔러스 스카이 타워’다. 건축주인 웨스트 뱅크West Bank가 건축가에게 요구한 것은 ‘밋밋하고 남성적인 이곳의 스카이라인에서 차별화된 건축물을 등장시키는 것’이었다. ‘카우보이 무리에 선 숙녀’라는 애칭을 얻은 이 건물은 잘게 쪼갠 기하학적인 ‘픽셀’이 상층부로 갈수록 서서히 좁아지며, 유연한 곡선을 만들어내는 게 특징이다. 10여 층 단위의 블록을 엇나가게 쌓는 여느 고층 빌딩 설계 방식과 달리, 이 60층 건물은 상층부로 올라갈수록 각 층의 픽셀이 일정하게 좁아지며 안쪽으로 물러나는 방식을 택했다. 상층부는 주거 공간으로 설계했으며, 픽셀이 어긋나며 만들어진 외부 공간은 거주자들의 발코니로 사용된다. 밤에는 설치미술가 더글러스 커플랜드Douglas Coupland의 ‘노던 라이트Northern Lights’가 건물 파사드를 밝혀, 캘거리 도심의 공공 예술 작품으로도 기능하고 있다. big.dk




© Fangfang Tian


DJI Sky City

세계적인 건축 회사 포스터 & 파트너스Foster & Partners가 중국 선전 시에 완성한 ‘DJI 스카이 시티’는 건축물이 위치할 장소와 도시의 지형적 맥락, 그리고 건축주의 정체성을 최대한 반영한 건축물로 평가할 만하다. 세계 최고의 민간 드론 개발 회사인 DJI의 새로운 본사 건물인 이곳은, 그들이 지향하는 최첨단 기술과 혁신을 상징하는 아이콘으로 디자인되었고, 더불어 개발자들이 자유롭게 여러 실험을 할 수 있도록 세심하게 설계되었다. 100m가 넘는 고층 건물 2개가나란히 서 있는 형태로, 한 건물은 본사 오피스, 또 다른 건물은 개발자들이 일하는 혁신 센터로 사용된다. 두 건물은 지상 105m 높이의 구조물 중간 지점에 위치한 90m 길이의 현수교가 연결한다. DJI 스카이 시티는 중심 구조물에 여러 개의 캔틸레버 블록이 부착된 듯 구성되어 있다. 외부의 트러스 시스템에 의해 기둥 없는 내부 공간이 완성되었고, 덕분에 기둥 없이 4층 높이로 설계된 드론 비행 실험실을 갖출 수 있게 되었다. 여러 개의 캔틸레버 블록으로 인해 생겨난 상단의 옥상은 직원들을 위한 야외 휴식 공간으로 활용된다. 지상에서 띄워진 형태로 건물을 설계해 지상에 넓은 외부 공간이 생겼고, 이를 누구나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는 정원으로 꾸몄다. fosterandpartners.com




Photo: Jason O’Rear


Eagle + West

뉴욕에서 가장 낙후된 지역 중 하나였던 브루클린의 최북단에 OMA 그룹이 설계한 뉴욕의 첫 번째 고층 빌딩이 들어섰다. 이 지역은 ‘작은 폴란드’라 불리며, 이스트강을 따라 조선소와 정유 시설, 낮은 층의 주택가가 들어서 있던 곳으로 약 10년 전부터 이른바 ‘그린포인트 랜딩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재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중이다. 건물이 자리한 두 거리의 이름을 따 ‘이글+웨스트’라 이름 지어진 이 고급 아파트는 그 이름처럼 2개의 타워로 구성되어 있다. 보는 방향에 따라 여러 가지 다양한 그림을 만들어내는 이 두 타워를 가장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지점은 아마도 이스트강의 건너편일 것. 이곳에서 바라보면 위로 갈수록 쌓아 올려진 박스 면적이 좁아지는 30층 타워와 위로 갈수록 박스 면적이 넓어지는 40층 타워의 돌출된 그리드가 딱 맞물리는 듯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아슬아슬한 젠가 쌓기 게임처럼 보이는 건물의 외관은 미적인 선택이 아닌, 용적률과 이스트강 뷰를 얻기 위한 효율적 선택이었다고. 각 타워의 분리된 블록은 각각 7~8층으로 나뉘며 블록 단위로 방향을 조금씩 뒤트는 형태로 쌓아 올려져 있다. 이를 통해 모든 세대에 자연광이 유입되며, 지역 커뮤니티를 향해 사방이 열려 있어 그린포인트의 랜드마크로 그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oma.com




Photo: AdamMork

Quay Quarter Tower
‘키 쿼터 타워’는 리스본에서 열린 2022년 세계건축축제에서 ‘올해의 건축물’로 선정되며, ‘세계 최초의 업사이클링 고층 빌딩’으로 건축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한때 시드니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던 AMP 센터를 재건축해 지은 것으로, 건축주는 ‘건물을 철거하지 않고 새로운 마천루를 짓고자 한다’는 조건으로 공모를 열어 덴마크의 건축 회사 3XN의 안을 채택했다. 이들은 기존 건물의 보와 기둥 등 오래된 구조물을 3분의 2 이상 유지하고, 여기에 새로운 구조물을 덧붙이는 방식으로 건물을 완성시켰다. 결과적으로 사용 가능한 연면적과 수용 가능한 인원이 모두 2배 이상 늘어났고, 신축에 비해 약 1만2000톤의 이산화탄소 절감 효과를 얻을 수 있었다. 시드니의 오페라하우스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뉴 타워는 5개의 상자를 조금씩 어긋나게 쌓아 올린 듯한 모습이 특징이다. 이 과정에서 생겨난 돌출된 공간들은 식물이 자라는 야외 가든으로 활용되기도 하고, 시드니 항의 멋진 전망을 감상하는 전망대 역할을 하기도 한다. 건축가가 ‘수직 마을’이라는 이름으로 건물을 묘사했듯, 높게 쌓아 올린 5개의 모듈은 공간을 효과적으로 구획할 뿐 아니라 어긋난 곳에 생긴 테라스 공간을 통해 입주자들이 휴식하고 머무르는 사회적 공간의 기능까지 제공한다. 3xn.com



© OSO

Deloitte Summit
런던의 ‘더 거킨The Gherkin’, 베이징의 ‘CCTV 본사 빌딩’, 뉴욕의 ‘허드슨 야드’가 그러했듯, 밴쿠버 도심 풍경을 재정의할 아이코닉한 건물이 밴쿠버 시내 한복판에 들어섰다. 눈부신 햇살을 그대로 받아내는 여러 개의 유리 박스가 불규칙하게 붙어 있는 듯한 이 건물은 마치 프랭크 게리의 조각적 건축물을 처음 마주했을 때와 비슷한 감상을 자아낸다. “건물 모양은 무작위적인 인상을 주지만 기본 구조는 단순한 규칙에 기반을 둔다. 4층 높이의 유리 육면체가 중심축을 이루고 그 주위로 여러 개의 정육면체 모듈이 방향을 틀며 반복적으로 결합된다.” 설계에 대한 건축가의 설명이다. 이 논쟁적 건축물을 탄생시킨 주인공은 겐고 구마 건축사무소 출신의 듀오 건축가로 도쿄에 베이스를 두고 있는 신진 건축 스튜디오 OSO다. 애초에 다른 건축가에 의해 다소 관습적인 모습으로 디자인되었던 이 건물을 다시 설계할 기회를 잡은 이들은 안전한 길 대신 파격을 택했다. 이들이 디자인의 영감을 얻은 것은 ‘등불’이었다. 여러 겹 쌓아 올린 상자들은 모두 다른 방향으로 배치되어 내부의 사무실은 각기 다른 전망을 가지며, 건물 외관 역시 어디에서 보느냐에 따라 변하는 실루엣을 만들어낸다. 또한 밤이 되어 내부에 조명이 켜지면 마침내 이 건물은 도심 속 하나의 ‘등불’로 변신해 거리를 밝힌다. o-s-o.jp



© Ossip van Duivenbode

RADIO HOTEL & TOWER
네덜란드의 건축 회사 MDRDV의 미국 첫 프로젝트가 뉴욕 맨해튼 북쪽 끝, 워싱턴 하이츠 지역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름하여 ‘라디오 호텔 & 타워’로 사무 공간과 리테일 숍, 호텔 등 지역 커뮤니티에 필요한 시설들이 밀집된 복합 건물이다. 건축물의 외관을 강조하기보다 지역의 정보를 데이터화해 설계에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그들의 설계 방식처럼, 이 건물은 놀랍도록 수수한 모습으로 완성되었다. “워싱턴 하이츠는 맨해튼의 다른 지역과는 매우 다른 흥미로운 특성을 띠고 있다. 우리는 이 동네의 특성에서 디자인 영감을 받았다. 이 동네 건물에서 주로 볼 수 있는 작은 벽돌을 사용했고, 여기에 이 지역의 건물에서 수집한 밝은 컬러를 입혀 건물이 동네에 녹아들 수 있도록 했다.” 건축가 위니 마스Winy Maas의 설명이다. 서로 다른 컬러의 블록 8개가 적층된 형태의 이 건물은 주변을 압도하지 않으면서도 독특한 개성을 드러낸다. 각 블록은 각기 다른 기능의 공간으로 사용되는데, 가장 아래층의 회색 블록은 오피스와 리테일 숍, 붉은색과 분홍, 주황색 블록은 호텔로 활용된다. 중층부의 파란 블록에는 결혼식 등 이벤트 공간으로 사용되는 ‘어퍼 더 하이츠Upper the Heights’가 자리 잡았다. 블록들이 적층된 형태로 인해, 일부 층은 아래 블록의 지붕 위로 생겨난 고유의 야외 테라스 공간을 갖추고 있다. www.mvrdv.n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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