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월호

LIVE DRAWING

작업실을 벗어나 관람객 앞에서 작업 세계를 펼치는 작가들의 순간을 포착했다. 2023년 새해를 주제로 펼친 아티스트의 즉흥적인 몸짓과 그들이 말하는 라이브 드로잉의 매력.

EDITOR 한동은

RYU JANGBOK


‘12월 11일 오후 3시 8분’


즉흥적 움직임에서 발현되는 체공의 순간

장복 작가는 인상주의의 관점과 태도를 견지하며 일상에서 마주친 장면을 그린다. 시간의 두께가 드러나는 유화와 즉흥적인 날것의 이미지를 좇는 드로잉을 작업의 두 축으로 삼는다. 눈앞의 현상과 기억의 감각이 작가의 캔버스 위에 중첩되며 시간의 켜가 드러난다. 라이브 드로잉 퍼포먼스를 할 때 표현되는 즉흥성은 온전히 작가만의 것이 아니다. 작가는 무용, 첼로 연주, 낭독 등 다른 공연 예술과 함께 퍼포먼스를 하는 규칙을 고수한다. “시각예술과 공연 예술, 하나의 주제를 공유하는 2가지 다른 매체가 서로의 원인이 되고 시간의 흐름 위에 올랐을 때, 중력을 거스르는 체공의 순간이 발현됩니다. 그 순간, 순도 높은 추상성의 이미지가 그려지죠. 저는 이 지점을 좇습니다. 매번 새로운 파격을 기대하게 됩니다.” <럭셔리>를 위한 라이브 드로잉 퍼포먼스 현장에는 현대무용수 이정민이 함께했다. 그는 모든 것은 연결되고 순환된다는 불교 철학의 연기론에 근거한 몸짓을 선보였다. 하얀 오일 파스텔을 쥔 류장복 작가의 손은 까만 캔버스 위에서 춤을 췄다. 즉흥성과 추상성이 극도의 경지에 다다른 모습이었다. “새해가 흑토끼해라니, 잠수함 속의 토끼가 떠오릅니다. 소설 <25시>의 저자 콘스탄틴 게오르기우Constantin Gheorghiu는 시대를 앞서가는 시인을 잠수함 속 토끼에 비유했지요. 토끼는 산소의 결핍을 사람보다 7시간 먼저 알아채기도 합니다. 이와 같은 여러 상념과 더불어 순환하는 몸짓을 쫓는 선의 궤적을 검은 허공에 남겼습니다.”


KIM CHANGKYUM

   ‘2023 Rabbit Park’

몰입 속에서 발견하는 즐거움
김창겸 작가의 가늘고 섬세한 펜이 그리는 궤적은 놀라움의 연속이다.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오브제부터 도로 위 대형 건축물까지 직관적인 물체가 작가의 도상이 된다. 대상을 사실적으로 그리는 작가의 즐거움은 그림 곳곳에 유쾌한 요소들을 심어두는 것. 펜 드로잉 특성상 작품을 온전히 감상하기 위해서는 작품 가까이 다가가 하나하나의 흔적을 살펴보는 것을 추천하는데, 이렇게 세심히 관찰하다 보면 작가의 유희적 디테일을 발견하는 기쁨까지 누릴 수 있다.
평소 라이브 드로잉 퍼포먼스를 할 땐 주로 작은 크기의 작품을 그리는 김창겸 작가가 <럭셔리>를 위해 50호 작품에 2023년 새해를 담았다. “토끼들이 살아가는 장소를 상상하며 표현한 그림입니다. 저의 주재료인 펜의 색상이 블랙인데, 마침 내년이 흑토끼해더군요. 컬러를 넣기보다 명암을 조절해 전체적인 이미지의 분위기를 완성했습니다. 이 작품 곳곳에 ‘BLACK RABBIT’의 철자를 숨겨두었으니, 가까이서 보시고 찾아가는 재미를 느끼길 바랍니다.” 라이브 드로잉 촬영 중 잠시 쉬는 시간, 펜이 잘못 굴렀는지 캔버스에 불청객 같은 작은 선이 그어졌다. 이 선이 금세 들꽃으로 탈바꿈한 것은 순식간의 일이었다. 한 치의 어긋남도 허용하지 않는 섬세한 작업을 하는 작가는 오히려 ‘실수’야말로 라이브 드로잉의 매력이라고 말한다. “평소 머릿속에 생각해온 이미지를 즉석에서 구현하는 라이브 드로잉 세계에서는 실수 역시 작업의 일부이자 나름의 매력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DOEZNY

‘Black Rabbit’

자유와 해방을 전파하는 몸짓
어쩌면 당신은 이미 더즈니 작가의 작품을 마주쳤을지도 모른다. 그의 무대는 갤러리 화이트 큐브가 아닌 세상 어디에나 존재하는 벽이기 때문. “불특정 다수의 사람에게 제 작품을 자연스럽게 보여줄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죠. 벽에 포스터를 풀로 붙이는 페이스트 업, 스프레이를 사용하는 스텐실, 콜라주 등 다양한 기법을 실험 중이에요. 거리를 활보하며 온몸을 다해 작업하는 스트리트 아트를 처음 접했을 때 일종의 해방감을 느꼈어요.” 작가가 말하는 해방감은 그가 표현하는 핵심과 일치하며, 이는 작가의 개인적 경험에 토대한다. 학창 시절부터 운동을 하던 그에게 미술을 업으로 삼는 것은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터. 하지만 해방의 쾌감을 경험해봤기에, 이를 위한 용기를 전파하고 싶다고 말한다. 작가의 또 다른 주된 주제는 바로 자유와 평등이다. 이는 그의 시그너처 캐릭터, ‘로날드’에서 짐작할 수 있다. “로날드의 두 얼굴은 평등을, 달리는 동작은 자유와 해방을 의미해요. 세상에 갈등을 일으키는 문제들을 나란히 세워두고, 편견 없는 시선으로 바라보고 싶어요.” 작가가 라이브 드로잉한 작품에는 그가 사용하는 거의 모든 기법이 담겨 있다. 새해의 이미지로 그래픽을 만들고 거리에서 쓰는 페이스트 업 기법으로 배경을 완성했다. 그다음 스텐실로 토끼와 검은 프레임을 작업했는데, 이때 유광과 무광 2가지 스프레이를 사용해 레이어를 쌓았다. 빛을 받으면 동양적인 패턴과 한문으로 쓴 계묘癸卯 자가 반짝이는 것을 볼 수 있다. 귀 끝, 꼬리, 손, 발 쪽에는 흰색 털이 난 토끼의 특성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자 종이를 벗기고 찢어 표현했고, 작가의 주요 매체인 스프레이를 상징하기 위해 회색 부분은 흘러내리는 듯 연출했다.


PHOTOGRAPHER 이기태·이창화, 이석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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