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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REPORT

2019 베네치아 비엔날레 리포트, '흥미로운 시대를 살기를!'

2년에 한 번 열리는 비엔날레는 현대미술 트렌드를 주도하는 문화 축제다. 전 세계 320개 비엔날레 중 가장 인기 있는 것은 1895년 이탈리아에서 시작한 ‘베네치아 비엔날레’. 11월 24일까지 열리는 베네치아 비엔날레 현장에서 주목할 만한 몇 가지 경향을 짚어보았다.

1 스타 작가는 여전히 중요하다

 
아르세날레 전시관 입구에 걸려 있는 조지 콘도의 ‘더블 엘비스’
“세계 각국의 여러 기관이 모여 베네치아 비엔날레라는 강력한 예술 세계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예술은 민족주의 대두를 막거나 권위주의 정부를 끌어내리거나 난민을 도울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난세에 어떠한 삶을 영위하고 어떻게 사고해야 하는지 지침은 줄 수 있지요.” 랠프 러고프Ralph Rugoff 총감독은 여러모로 비엔날레의 공식을 깼다. 먼저 비엔날레는 아트페어와 달리 비상업적인 예술 축제이기 때문에 유명한 작가를 내세우지 않는다는 일종의 규칙부터 날려버렸다. 본전시가 열리는 아르세날레 전시관 입구에서 관람객이 마주치는 첫 번째 미술가는 미국 작가 조지 콘도George Condo였다. 그는 지난해 홍콩 아트바젤 기간에 열린 신작 전시가 오픈하기도 전에 솔드 아웃되며 유명세를 더했다. 구입 경쟁이 워낙 치열해 지드래곤 조차 작품을 획득하는 데 실패했다는 소문. 때문에 전시장에서 작품을 보자마자 든 생각은 가격에 대한 궁금증이었다. 그다음에야 정신을 차리고 그림을 살펴보니 기괴한 미소를 띠며 건배하는 두 사람은 트럼프와 김정은이 아닐까 싶다. 러고프 총감독은 이왕이면 스타 작가가 트럼프의 망령을 보여주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판단한 것이 아닐까? 아르세날레 전시관 북쪽의 함선 정박장에 전시된, 국제적 파워를 가진 토마스 사라세노Tomas Saraceno의 작품 ‘사라져가는 구름에 부쳐On the Disappearance of Clouds’ 역시 시선을 사로잡는다. 기후변화로 점점 사라져가는 구름을 음악과 함께 설치 작업으로 표현했다. 지난해 한국관 예술감독을 맡았던 현대자동차 아트 디렉터 이대형은 베네치아 비엔날레는 사실 자본주의 논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고 말한다. 한때는 자본과의 거리 두기에 나섰지만 올해는 상업적 작가마저 끌어안은 것. 이런 점이 향후 작가 선정에 영향을 끼칠 것이 분명해 보인다. 본전시 작품 캡션에 지난번까지만 해도 소속 갤러리의 이름이 명시되었는데 이번에 전격적으로 이를 삭제했다는 것은 고무적이다. 베네치아 비엔날레는 18개월의 준비 기간에 1300만 유로(약 150억 원)가 투입되는 대형 전시다. 90개 국가관 예산은 별도다. 이와 비교할 수 있는 예술 축제는 카셀 도쿠멘타Kassel Documenta 정도인데, 4년 이상의 준비 기간에 4500만 유로(약 600억 원)의 예산 규모로 진행된다. 어쨌거나 모든 예술은 자본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이 분명해 보인다.


2 더 크게, 더 강렬하게!


DMZ의 철조망으로 만든 이불 작가의 ‘오바드 V’
‘누가 누가 더 큰가’ 내기라도 하듯 본전시 작품들은 거대했다. 특히 중국 미술가 순위안 & 펑위 듀오 작가의 작품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강렬한 인상으로 남녀노소 모두가 이들의 작품을 기억하고 있으니, 아마 인기상이 있다면 이 두 작가가 수상했을 것이다. 아라리오갤러리 주연화 디렉터는 “가르디니의 설치 작품 ‘캔트 헬프 마이셀프 Can’t Help Myself’는 로봇 팔과 물감이 ‘서로를’ 움직이게 하는 작품”이라고 설명한다. 2016년 구겐하임 미술관 커미션으로 만든 작품으로 로봇 팔의 인공 센서를 업그레이드해 이번에 다시 선보였다. 붉은 물감은 피를 연상시키며 중국 문화 혁명과 아시아 대학살을 떠올리게 한다. 아르세날레 전시관에 설치한 ‘디어Dear’는 실리콘으로 제작된 고대 로마 의자 위로 고무호스가 채찍처럼 날아다니며 권력을 풍자하는 크고 시끄러운 작품이다. 마침 옆에 우리나라 이불 작가의 작품이 위치하는데, ‘디어’ 때문에 정신이 쏙 빠진 채 감상했다. 이불 작가의 ‘오바드Aubade V’는 세상의 질문에 대한 긍정적 대답을 모스부호와 부전용 시그널 등으로 보내며 남북 분단과 이데올로기의 대립, 근대와의 이별을 표현한 작품. DMZ의 감시초소 GP를 해체하면서 나온 철조망 같은 여러 종류의 잔해를 녹여서 만든 4m 대형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이번 비엔날레에서는 거대한 축에 끼지 못한다. 작가는 작품이 너무 거대하면 프로파간다가 될 수 있기에 적절한 크기를 고민했다고 말한다.


3 블랙 파워, 여성, 성 소수자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사진작가 자넬 무홀리의 셀프 포트레이트
이번 비엔날레 곳곳에는 아프리칸의 검은 얼굴이 사진과 그림으로 많이 보였다.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흑인 작가 아서 자파Arthur Jafa의 거대한 타이어에 체인을 감은 설치 작품은 미국의 쇠퇴한 자동차 산업과 일자리를 잃은 흑인 노동자의 힘겨운 삶을 보여준다. 조지 콘도와 함께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아프리칸의 강렬한 초상 사진은 여성 작가 자넬 무홀리Zanele Muholi의 자화상.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성 소수자이자 여성 사진 작가인 그녀는 흑백사진으로 흑인이 처한 국제적 사회 현실을 담담하게 고발한다. 미국 흑인 작가 헨리 테일러Henry Taylor는 아프리카 출신이 지배하는 최초의 공화국을 상기시키는 아이티 혁명을 소재로 한 그림을 선보여 관객의 이목을 끌었다. 최근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블랙 파워를 다시 한번 실감할 수 있는 작품들이 많아 반갑다. 여성·성 소수자·흑인 같은 마이너리티에 대한 조명은 얼마 전부터 두드러지기 시작한 현대미술 흐름과 일맥상통하는 경향이다.


4 지구 환경을 다시 생각하자


리투아니아관의 ‘태양과 바다’
황금사자상을 수상하며 단번에 최고 인기 전시로 떠오른 리투아니아관의 주제는 ‘환경’. 영국 런던의 서펜타인 갤러리에서 큐레이터로 일하고 있는 루시아 피트로이스티Lucia Pietroiusti 예술감독은 현대인의 가장 큰 힐링이라 할 수 있는 여름휴가를 뮤지컬 형식으로 보여주는 ‘태양과 바다Sun & Sea’를 선보였다. 1층에는 모래사장이 깔려 있고 어린아이와 개를 포함한 20명의 뮤지컬 배우들이 여름휴가를 연기하며 노래한다. 2층에서 관객들이 이를 내려다보다가 자리를 떠나면 새로운 관객이 입장하는 형식이다. 원래 가르디니의 프랑스관이 2시간씩 줄을 서야 할 정도로 큰 인기였으나, 황금사자상이 발표되고 난 후 대세는 역전되어 한적한 곳에 위치한 리투아니아관 앞에 아침 9시부터 긴 줄이 늘어섰다. 바닷속 풍경을 보여준 프랑스관은 얼핏 환경이 주제인 것 같지만, 국가 경계와 정체성이 테마다. 반면 ‘유유자적하게 살자’고 하는 리투아니아관의 노래 가사가 현대인의 환경오염에 대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것이 흥미롭다.


5 한국 여성의 한恨을 이야기하다


한국관 남화연 작가의 ‘반도의 무희’
이번 베네치아 비엔날레는 한국 여인 천하다. 심사위원으로 위촉된 김선정 광주비엔날레 대표를 필두로 본전시에 초대된 이불, 강서경, 아니카 이Anicka Yi 그리고 한국관의 남화연, 정은영, 제인 진 카이센Jane Jin Kaisen 작가와 예술감독 김현진이 모두 여성이다. 한국관의 주제는 <역사가 우리를 망쳐놨지만 그래도 상관없다History Has Failed Us, But No Matter>. 남화연, 정은영, 제인 진 카이센 작가는 각각 리서치를 기반으로 한 영상 작품을 선보인다. 남화연 작가는 근대 무용수 최승희를 연구해 ‘반도의 무희’, ‘이태리의 정원’을 발표했으며, 정은영 작가는 생존하는 여성 국극 남역 배우 이등우와 신세대 퍼포머들의 퀴어 공연을 보여주는 ‘섬광, 잔상, 속도와 소음의 공연’을 소개한다. 제인 진 카이센 작가는 바리 공주 설화를 바탕으로 디아스포라를 재해석한 ‘이별의 공동체’를 보여준다. 작가는 입양아로서 직접 작품 일부에 출연해 무당과 소통하며 관객들의 눈물을 자아냈다. 본전시에 참여한 이불 작가는 DMZ 철조망으로 만든 작품으로 분단 문제를 상기시켰고, 강서경 작가는 할머니의 부재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 ‘그랜드마더 타워’와 진경산수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땅, 모래, 지류’ 연작을 선보였다. 아니카 이는 ‘바이올로가이징 더 머신Biologizing the Machine’ 연작 두 점을 전시했다. 페미니즘을 연상시키는 세균 배양으로 국제적 명성을 얻은 그녀는 이번에도 과학과 예술을 결합한 이국적인 작품을 선보인 것. 한국 작가들의 작품은 전반적으로 마이너리티를 감싸 안은 모성애적인 전시라는 호평을 받았다.


6 거장의 힘


포르티니 미술관에서 성대하게 열린 윤형근의 전시
베네치아 비엔날레가 세계 최고 미술 축제로 꼽히는 이유 중 하나는 이곳에서부터 근사한 전시가 비롯되는 점 때문이다. 위성 전시로 도시 곳곳에서 거장들의 회고전이 대거 열리는데, 대부분 정적인 작품이라 재기 발랄한 비엔날레와 대조를 이루며 또 다른 감동을 선사한다. 그리스 출신 작가 야니스 쿠넬리스Jannis Kounellis의 프라다재단미술관 회고전은 거장의 파워를 보여준 전시였다. 그의 실험적인 대표작이 다시 재현돼 감동을 불러일으켰는데, 작품마다 과거의 사진과 설명이 첨부돼 그가 얼마나 앞선 작가였는지 실감할 수 있었다. 아카데미아 미술관에서는 게오르크 바젤리츠Georg Baselitz의 전시가 열렸다. 거꾸로 그려진 인물 회화들의 초창기부터 최근작까지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다. 대형 조각 작품들도 출품돼 바젤리츠의 모든 것을 감상할 수 있어 반갑다. 23번 방에서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서명이 들어간 25점의 드로잉이 전시됐는데, 작품 보호를 이유로 10년에 한 번씩 일반에게 공개되는 ‘비트루비우스적 인간Vitruvian Man’을 볼 수 있다. 팔라초 그라시에서 열린 뤼크 튀이망Luc Tuymans의 전시는 벨기에 회화의 정수를 보여주었다는 찬사를 받았다. 카 페사로에서 열린 아르메니아 출신 미국 작가 아실 고르키Arshile Gorky 전시와 팔라초 프란체티에서 열린 프랑스 거장 장 뒤뷔페Jean Dubuffet 전시도 빼놓을 수 없다. 우리나라의 윤형근도 포르티니 미술관에 당당히 초대받아 자존심을 높였다. 첫날 1000명의 VIP와 기자가 방문해 찬사를 보냈다.


7 테크 실험 러시


도미니크 곤잘레스 포에스터의 VR 작품


히토 슈타이에를의 ‘이것이 미래다’
아트바젤에 이어 HTC의 VR 후원이 비엔날레에서도 빛을 발했다. 일본계 독일 작가 히토 슈타이에를Hito Steyerl의 ‘이것이 미래다This is the Future’는 환경문제를 주제로 한 첨단 영상 작업이다. 크기가 다른 여러 스크린이 레이어를 이루며 디스플레이되고, 관객들은 그 사이로 걸어 다니며 새로운 풍경을 관찰할 수 있다. 프랑스 출신 작가 도미니크 곤잘레스 포에스터Dominique Gonzalez-Foerster 도 첫 VR 작품을 선보였는데, 역시 미래 환경을 소재로 하고 있다. 중국 상하이에서 활동하는 이용우 디렉터는 이번 비엔날레는 디지털 세대 예술의 혼성적 경향을 보여주었다고 평가했다. 디자인, 건축, 도시, 시각예술이 훌륭하게 결합되었다는 것이다. “어느 비엔날레나 찬반 논란은 있었다. 정치·사회적 예술 형식을 바라는 자는 거친 목소리를 기대하겠지만 이번은 부드러운 편에 속한다. 대부분 작품성 위주로 선정된 작가들이며, 마이너리티의 어필이 돋보인다.” 비엔날레는 아트페어와 다르다. 예술의 본질은 관객과 소통하는 것이며, 상업성이 우선되어서는 안 된다. 2022년 카셀 도쿠멘타 감독으로 인도네시아 작가 그룹 루앙루파Ruangrupa가 선정되었기에 동남아시아 작가의 부상을 은근히 기대했지만 이번 비엔날레에서는 여전히 극소수였다. 이것이 다음 비엔날레가 기대되는 이유다. 그때까지 우리 모두 ‘흥미로운 시대를 살기를!’, 암울한 시대에 예술로 마음의 평화와 위안을 얻기를 바란다.

디자인하우스 [LUXURY 2019년 6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