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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 공간 디자이너가 애정하는 소도시

Architectural City

세계를 무대로 일하고 여행을 통해 영감을 얻는 건축가, 공간 디자이너가 바라보고 해석하는 도시는 색다른 매력으로 다가오는 경우가 많다. 그들에게 놀라움과 감동, 아이디어를 선사한 5곳의 소도시를 소개한다.


지역의 정체성을 반영한 대형 쇼핑몰 타이구리 전경 ©ZhangJiaHui, HEZHENHUAN


전통 가옥 형태에 현대적 요소를 가미한 구찌 플래그십 스토어 ©ZhangJiaHui, HEZHENHUAN


타이구리 지하의 팡수오 서점 ©안지용
쇼핑몰의 ‘끝판왕’ 중국 청두
“<삼국지>에 등장하는 촉나라에 속하는 지역, 그리고 판다. 비행기에 오르기 전 중국 청두成都에 대해 알고 있는 정보는 이 정도가 전부였다. 수많은 개발과 건축적 실험이 벌어지고 있는 중국인 만큼 베이징, 상하이, 광저우, 우한 등 상당히 다양한 도시를 다녔는데도 청두 하면 떠오르는 배경이나 이미지가 딱히 없었다. 그러다 우연히 비즈니스 미팅으로 청두에 들렀는데, 다채로운 콘셉트의 현대건축을 접하며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중국 내륙 한복판, 쓰촨 분지 서부에 위치한 청두는 원래 공업도시로 유명한 곳. 한국에는 덜 알려져 있지만 계획적인 개발 과정을 통해 세련된 현대 도시로 변모해가고 있다. 놀라운 것은 단순히 외형적으로 모던하고 현대적인 건물을 짓는 데만 집중하지 않고 정교한 계획하에 지역의 정체성을 반영한 일관된 콘셉트의 건물을 올리고 있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예가 쇼핑몰 타이구리太古里. 럭셔리 브랜드의 플래그십 스토어가 밀집한 일종의 ‘명품 거리’로, 지상은 독립된 건물이 마을을 이룬 형태이고 지하는 하나의 쇼핑몰로 연결돼 있다. 흥미로운 것은 구찌, 프라다 등의 플래그십 스토어가 전통 가옥을 모티프로 전체적인 톤 & 매너를 맞추고 있다는 점. 전통 목조 건물의 형태와 구조를 유지한 채로 현대적 요소를 가미해 세계 어디에서도 보기힘든 이 도시만의 쇼핑몰을 완성했다. 타이구리 지하에는 일본 쓰타야 서점의 중국 버전이라 할 수 있는 팡수오 서점이 들어서 있는데, 이곳의 감각 역시 상당히 인상깊다. 중국에 대한 편견을 날려줄, 21세기 쇼핑몰의 가장 진화한 버전 중 하나를 목격할 수 있는 도시. 타이구리 반대편에는 우리나라 시장 같은 중국 전통 상업 거리도 위치해, 두 곳을 오가며 비교해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_ 매니페스토 안지용 대표



포르투 전경


마을을 향해 난 좁고 긴 창이 인상적인 산타 마리아 성당 내부 ©임태병


알바루 시자의 대표작인 레카 바다 수영장 ©임태병
지극히 건축적인 도시 포르투갈 포르투
“지난해 여름, 비즈니스 미팅을 위해 들른 포르투갈 포르투Porto에서 건축 도시의 진면목을 새삼 확인했다. 포르투는 리스본에 버금가는 포르투갈 제2의 도시로, 건축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겐 1992년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세계적인 건축가 알바루 시자Alvaro Siza의 고향으로 잘 알려져 있다. 초기작인 보아 노바 티 하우스부터 직접 설계하고 학생을 가르쳤던 포르투 건축대학, 대표작인 레카 바다 수영장과 세랄베스 현대미술관, 상 벤투 기차역 등 도시 곳곳에서 그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국내에서도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 아모레퍼시픽 기술연구원 등을 통해 시자의 건축을 접했지만, 포르투에서 만난 그의 작품은 전혀 다른 결의 감동이었다. 간결하고 시적인 건축으로 유명한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흰 벽’에 강렬한 햇빛이 ‘쨍’하며 부딪치고, 아래로는 그림자를 드리우며 대조를 이루는 장면은 자연과 건축이 빚어낸 예술 그자체였다. 덩어리, 흰색, 그림자, 거침, 가벼움, 무거움 같은 추상적인 단어들이 한데 어우러져 실체가 있는 건물로 구현된 듯한 경이로움을 느꼈다. 시자의 여러 건물 중에서도 가장 인상 깊은 곳은 산타 마리아 성당. 내부로 들어서면 오른쪽 벽에 띠 형태의 좁은 창이 가로로 길게 뻗어 있는데, 예배를 보기 위해 자리에 앉으면 창밖으로 하늘과 산봉우리가 보이고, 일어서면 마을의 전경이 눈에 들어온다. 성의 세계와 현실의 경계를 절묘하게 표현한 것으로, 수도사들이 점심에 창틀을 바 삼아 와인과 빵을 즐기며 사계절을 내다보는 실용적 기능도 갖추고 있어 미적인 측면은 물론 스토리텔링과 실용성까지 완벽하게 담아냈다. 이런 건축 거장이 나고 자라 활약한 곳인 만큼 포르투는 도시 전반의 건축 수준이 매우 높다. 여행을 안내해준 부부 건축가의 말에 따르면 한 집 건너 한 집이 건축업에 종사할 정도라고. 경쟁이 워낙 치열해 대다수 건축가가 에어비앤비나 카페, 식당 등을 동시에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때문에 마감과 디테일 등 시공 퀄리티가 훌륭하고, 건축가마다 고유한 창호를 사용할 만큼 다양성도 보장돼 있어 건물을 비교하고 살피며 골목을 산책하는 재미가 상당했다. 시간이 허락된다면 알바루 시자의 뒤를 잇는 또 한 명의 건축 거장 에두아르두 소투 드 모라Eduardo Souto de Moura의 건물을 따라 여행해보는 것도 좋은 추억이 될 듯하다.” _ 문도호제 임태병 소장



20세기 아르누보 디자인의 흔적이 남아 있는 메츠의 건물


도시를 관통하는 모젤강가의 전경 ©프랑스 관광청(kr.france.fr)


반 시게루가 설계한 메츠 퐁피두센터 © Shigeru Ban Architects Europe et Jean de Gastines Architectes
오래된 공업 도시의 화려한 변신 프랑스 메츠
“프랑스에서 유학 중이던 2004년, 일본 출신의 세계적 건축가 반 시게루坂茂의 스튜디오에 합류할 기회를 얻어 메츠 퐁피두센터를 건설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프랑스 북동부에 위치한 메츠Metz는 아르누보 디자인의 본산지이자 유리공예와 철강 등이 발달한 공업 도시로, 20세기 이후에는 이렇다 할 특징이나 랜드마크 없이 방치돼 있었다. 이런 메츠에 변화의 바람이 분 것은 2003년. 프랑스 정부가 예술 지방 분산화 정책을 시행하며 국립 미술 기관인 퐁피두센터의 분관을 지을 도시로 메츠를 선정하면서부터다. 구겐하임 미술관을 유치하며 세계적인 문화 도시로 거듭난 스페인 빌바오를 벤치마킹한 도시 재생 사례로,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도시를 움직이고 역사를 만들어가는 건축의 힘을 몸소 느끼고 체험할 수 있었다. 퐁피두센터의 건설과 함께 변화해가는 메츠의 분위기와 에너지를 가까이서 목격하는 것은 무척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2010년 퐁피두센터가 완공된 후 쇠락해가던 공업 도시는 문화적, 건축적 영감이 가득한 도시로 거듭났다. 20세기 초반 아르누보 디자인의 영향을 받은 기존 건물들이 반 시게루의 현대적인 건물과 대비를 이루고, 파리 퐁피두센터와 연계된 세계적인 수준의 전시가 1년365일 상시 펼쳐진다. 수도인 파리는 물론 룩셈부르크, 벨기에, 프랑크푸르트 등 주변 국가의 도시와 TGV로 1시간 30분이면 닿는 지리적 특징과 역사적으로 프랑스, 독일이 혼재된 문화는 메츠만의 독특한 분위기와 활기를 완성하는 요소. 건축을 통해 문화 도시라는 새로운 이미지를 구축하고 유럽 각 도시를 연결하는 새로운 거점으로 거듭났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_ 조호건축 이정훈 소장


에도 시대의 목조 건물이 그대로 보존된 히가시오차야 거리 ©백종환


사나의 건축과 세계적인 현대미술 작가들의 작품이 어우러진 21세기 미술관


명상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스즈키 뮤지엄 ©백종환
기품 가득한 문화 도시 일본 가나자와
“근래 여행한 도시 중에는 일본 가나자와金沢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2박 3일의 짧은 휴가 기간에 진정한 힐링을 경험하게 해준 곳이다. 우선 도시가 매우 정갈하고 깨끗하게 보존돼 있어 놀라웠는데, 일본 내에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전쟁의 영향을 받지 않은 드문 도시이자 지진 피해도 없던 지역이라 오래된 건물을 잘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고스란히 보존된 에도 시대의 목조 건물, 과거와 현재의 삶이 공존하는 골목 풍경 등 예상치 못한 즐거움이 곳곳에 숨어 있다. 마치 도쿄와 교토의 매력을 추출해 큐레이션한 듯한, 전통적이지만 고루하지 않고 트렌디하면서도 가볍지만은 않은 세련된 분위기가 도시 전반에 흐른다. 본격적인 여행 일정을 시작하며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21세기 미술관. 가나자와를 세계에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한 랜드마크로, 2010년 프리츠커상을 받은 일본 건축가 듀오 사나SANNA가 설계했다. 원형 건물 안에 조화롭게 배치된 박스 형태의 전시 공간을 거닐며 레안드로 에리히의 작품 ‘더 스위밍 풀’, 제임스 터렐의 ‘블루 플랜트 스카이’ 등 세계적인 현대미술 작가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입장을 위한 대기시간이 평균 1시간에 이를 만큼 인기가 많은 곳인데도, 안에 들어가면 온화한 여유가 느껴져 더 특별하다. 21세기 미술관의 대각선 길 건너편에는 일본 3대 정원 중 하나인 겐로쿠엔兼六園이 위치해 있다. 교토의 정원과는 또 다른 일본 원예의 품격을 마주할 수 있는 곳으로, 사계절 다른 풍경을 펼치는 정원을 산책한 후 내부에 위치한 다원 시구레테이時雨亭에서 다도 체험을 하며 명상의 시간을 보내면 좋다. 이곳에서 버스로 두세 정거장 가면 스즈키 뮤지엄에 닿게 된다. 가나자와가 낳은 최고의 불교 철학자 스즈키 다이세츠를 기리는 곳으로 일본의 유명 건축가 다니구치 요시오谷口吉生가 설계했다. 잔잔한 인공 호수 위에 그림처럼 떠오른 하얀 건물의 아름다운 조화가 인상 깊은 이곳에서는 새소리, 물소리, 바람 소리를 들으며 그저 머무는 것만으로도 힐링을 경험할 수 있다. 이처럼 세련된 가나자와의 문화적 DNA를 숙소에서도 느끼고 싶어 선택한 곳이 구무KUMU 호텔이다. 기존 건물을 레노베이션해 2017년 문을 연 곳으로, 곳곳에 숨어 있는 위트 넘치는 아트 워크와 층마다 배치된 다실이 머무는 즐거움을 더해준다. 주말을 활용한 짧은 일정 동안 이국적인 도시에서 수준 높은 건축과 문화를 두루 경험하고 싶다면 가나자와가 좋은 답이 될 것이다.” _ WGNB 백종환 대표



‘중세의 맨해튼’이라 불리는 산 지미냐노의 전경


마을의 중심에 위치한 광장의 모습


여전히 이 도시의 랜드마크 역할을 하고 있는 중세에 건립한 타워 ©조성익
‘중세의 맨해튼’에서 발견한 소도시의 매력 이탈리아 산 지미냐노
“학창 시절 로마에서 한동안 머물며 멋진 추억을 쌓은 이후 이탈리아는 가장 좋아하고 늘 동경하는 나라가 됐다. 흔히 여행을 떠나면 ‘찍고 떠나기’ 바쁜 일정을 소화하지만, 나는 짧게는 3일, 길게는 일주일 정도 한곳에 머물며 구석구석을 관찰하고 경험하는 방식을 선호한다. 그 과정에서 의외의 것을 발견하고, 새로운 영감을 얻는 경우가 많아서다. 오래전부터 이탈리아를 여행하며 느낀 도시의 특징은 모든 도시가 로마 시대부터 이어온 요새의 형태를 띠고, 성 안의 중심에는 교회가 있으며, 현재 교회는 종교적 기능보다 마을의 상징으로 남아 상업적인 요소를 보완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교회의 가장 아름다운 벽면은 광장의 북쪽에 위치하고 그 맞은편에는 노천카페가 자리하는데, 남쪽 햇빛이 교회의 하얀 벽에 반사되며 반대편을 밝게 비춰 직사광선을 쬐지 않으면서도 따듯하고 기분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산 지미냐노는 이런 특징을 고스란히 간직한 이탈리아의 전형적인 소도시. 토스카나 지역의 중심, 시에나 근교에 위치한 도시로 중세 시대 귀족들이 부를 과시하기 위해 집 위에 70~80m에 이르는 높은 전망대를 경쟁적으로 세운 흔적이 지금까지 남아 있어 ‘중세의 맨해튼’, ‘타워의 도시’라는 별명으로도 불린다. 인터넷에 검색하면 주로 “흥미로운 도시이긴 하나 딱히 볼 건 없으니 반나절 정도 머물면 적합하다”고 평가받는 곳이지만, 나는 이곳에서 일주일을 머물렀다. 성벽 안에 수준 높은 갤러리와 세계적인 레스토랑부터 시장, 카페, 밥집 등 아주 서민적인 요소까지 두루 잘 갖춰져 있어 관광객도 즐겁고 주민도 행복한 도시였기 때문. 도시 입구는 방어를 위해 좁게 설계했고, 안으로 들어가면 공간이 넓어지며 광장이 등장한다. 메인 광장 옆에는 이탈리아의 모든 도시가 그렇듯 거실로 들어가는 현관 역할을 하는 소광장이 배치돼 있는데, 이곳에 마을 사람들이 즐겨 찾는 훌륭한 카페와 레스토랑이 많다. 중세에 건립된 타워를 유지, 보수해 스위트룸이나 프라이빗 다이닝 스폿으로 활용하는 호텔이나 레스토랑을 경험하는 것도 이 도시를 즐기는 또 하나의 방법. 토스카나의 푸른 자연과 어우러진 오렌지빛 성벽, 그 안에서 이탈리아 소도시의 매력을 만끽할 수 있는 곳이다.” _ 홍익대학교 건축과 조성익 교수

디자인하우스 [LUXURY 2019년 2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