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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육공방 5곳

Craft Meat & Urban Butchery

국내 크래프트 미트Craft Meat 신이 어느 때보다 풍성해지고 있다. 사육·도축 시스템이 개선되고, 세계를 누벼 다채로운 육식 문화를 경험한 셰프들이 등장하며 고기를 테마로 한 흥미로운 공간이 잇따라 문을 열기 시작했다. 전문적인 숙성 기술을 통해 평범한 고기를 복합적 풍미가 가득한 숙성육으로 탈바꿈시키는 프리미엄 정육점부터 정통 레시피에 끈질기게 매달려 완성도 높은 육가공품을 만드는 공방까지. 빛나는 크래프트맨십으로 국내 육식 문화를 주도하는 서울의 육공방 5곳을 찾았다.


엘본 스테이크는 감성고기. 고기에 칼집을 내는 용도로 사용하는 ‘곡도’는 칼이쓰마.

소금집
47m2 남짓한 작업실에서 시작한 ‘소금집’은 어느덧 하루 평균 1톤의 고기를 가공하는 육공방으로 성장했다. 작업량은 방대하게 늘었지만 30종에 이르는 육가공품은 여전히 기계의 도움 없이 조지 더럼 셰프의 손끝에서 탄생한다.


(왼쪽부터) 조지 더럼 셰프, 장대원 대표, 조영훈 팀장.

랑빠스81
프렌치 퀴진이 척박한 국내에서 기본기 탄탄한 정통 샤퀴트리를 선보이며 입소문을 타기 시작한 ‘랑빠스81’. 쉽게 타협하지 않는 우직스러움으로 본토의 맛을 충실하게 재현했다. 10여 가지로 푸짐하게 채운 샤퀴트리 보드는 랑빠스81에서 결코 놓쳐서는 안 될 메뉴다.


(왼쪽부터) 그레고리 미쇼, 전지오 셰프.

감성고기와 도마
1세대 프리미엄 정육점으로 호명되는 ‘감성고기’와 감성고기에서 직영으로 운영하는 ‘도마’는 뛰어난 호흡을 자랑하는 ‘팀’이다. 감성고기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숙성한 육우는 고스란히 도마의 주방에 오른다. 감성고기의 구정민 정육사와 도마의 김봉수 셰프가 의기투합해 완성한 요리는 서울 도곡동에 위치한 도마에서 만나볼 수 있다.


(왼쪽부터) 박명재·김중만 정육사, 김봉수 셰프, 구정민·조현호 정육사.

사실주의 베이컨
서울 한남동에서 바비큐 전문점 ‘스모키러버스’를 운영하던 남윤서 대표와 우사단로의 소시지 전문점 ‘블록파티’의 그레고리 이더프 셰프가 함께 전개하는 베이컨 하우스. 고기 전문가들이 만나 차린 공간답게 기교 없이 기본에 충실한 베이컨 네 종류를 선보인다.


(왼쪽부터) 강동주·박장성 셰프, 남윤서 대표, 그레고리 이더트 셰프.

에이징룸
‘에이징룸’은 프리미엄 정육점의 정석 같은 공간이다. 20여 종에 이르는 원육 부위를 저마다 다른 조건으로 숙성한 제품을 시작으로 직접 개발한 레시피로 조리한 카레, 미트볼, 카츠샌드 등 PB 상품과 매장에서 구매한 고기를 즉석에서 구워주는 그릴 서비스까지 입맛에 맞게 이용할 수 있다.


(왼쪽부터) 정준석·박준건 정육사.

서울에서 즐기는 수제 가공육
서울에서도 숙성 풍미가 알차게 밴 가공육이 만들어지고 있다. 이름난 육공방에서 찾은 완성도 높은 가공육 음식 다섯.


고기와 소금으로 일군 가공육의 집


오랜 시간 숙성, 발효해 완성한 론지노와 코파.
소금집 천연 돈장豚臟에 굵게 다진 돼지 목전지를 채워 만든 이탤리언 소시지, 육즙이 알차게 밴 홍두깨살을 훈연해 히코리나무 향을 은은하게 입힌 파스트라미pastrami, 돼지 목살을 다섯 달 이상 저온 숙성해 씹을수록 쿰쿰한 발효 향이 올라오는 코파coppa. 소금집에서 생산하는 30여 종의 육가공품은 ‘크래프트맨십’의 결정체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출신의 조지 더럼George Durham, 그래픽디자이너로 활동하던 장대원 공동 대표가 운영하는 소금집은 공장에서 획일적으로 대량생산하는 공산품과 반대 지점에 있는 육가공품을 만들기위해 2016년 론칭했다. 대기업의 논리에서 벗어나 수제 염장, 숙성을 고수해 처음 선보인 가공육은 손가락 굵기로 두툼하게 썰어낸 베이컨. 소금집에 합류하기 전 입소문을 듣고 찾아와 이곳의 베이컨을 접한 조영훈 팀장이 말했다. “종이에 둘둘 만 600g짜리 베이컨을 구입했을 때의 경험을 못 잊어요. 투박한 포장으로 덩어리째 베이컨을 건네받았을 때의 만족감이 강렬했거든요. 슈퍼마켓에서 종잇장처럼 얇은 베이컨을 구입했을 때와는 완전히 다른 느낌이었죠.” 베이컨은 고기와 소금만 있다면 얼마든지 만들 수 있지만 원육을 발골한 후 염장, 건조, 훈연에 이르는 까다로운 공정을 모두 통과해야 비로소 제대로 된 베이컨이 완성된다. “공장에서 만드는 베이컨은 고기에 간수를 주사해 하루 만에 염장을 끝내지만 저희는 염장하는 데만 꼬박 2주가 걸려요. 맛을 투입시키는 것과 맛을 천천히 완성시키는 것의 차이죠.” 배추김치를 만들면 나박김치, 열무김치까지 만들 수 있는 것처럼 소금집 역시 베이컨으로 축적한 노하우로 잠봉, 론지노, 소시송 등 라인업을 방대하게 늘렸다. “육가공품은 고기와 소금의 과학이에요. 둘의 조합으로 무한한 제품이 탄생할 수 있죠. 앞으로도 합리적인 가격과 맛을 겸비한 제품을 많이 생산할 계획입니다.” 문의 303-1610


프랑스식 선술집에서 즐기는 본토의 맛


샤퀴트리와 빵, 프랑스식 피클인 코니숑으로 푸짐하게 꾸린 샤퀴트리 보드.
랑빠스81 랑빠스81이 문을 연 2015년, 서울은 맛있는 샤퀴트리의 불모지였다. 몇몇 프렌치 파인다이닝과 수입 식료품점에서 샤퀴트리를 한정적으로 판매하던 당시 전지오 셰프와 그레고리 미쇼Gre′gory Michot 셰프는 샤퀴트리 보드를 값싼 로컬 와인과 함께 즐기는 프랑스 리옹의 선술집 ‘부숑Bouchon’에서 착안해 랑빠스81의 문을 열었다. 천장에 염주 모양으로 주렁주렁 매단 고기에서 풍기는 비릿한 짠내, 퀴퀴한 곰팡이 내음으로 가득한 공간에서는 초리소, 소시송, 잠봉 등 매일 10가지 이상의 샤퀴트리가 맛있게 익어간다. 제주도 흑돼지나 한우를 사용해 ‘한국식 샤퀴트리’를 개발하는 곳이 심심치 않게 출현하는 요즘, 랑빠스81은 우직하게 ‘클래식 프렌치’를 표방한다. “염도, 시즈닝을 한국인의 입맛에 맞춰 타협할 생각이 전혀 없어요. 오히려 정통 레시피를 깊게 파고들고자 해요.” 창자 껍질을 터뜨리면 돼지고기 냄새가 확 퍼지는 부댕 누아도 본토 레시피를 충실히 따라 완성한 메뉴다. 피순대를 닮은 익숙한 맛이지만 선지 함량이 높아 빵에 스프레드처럼 발라 먹으면 눅진한 감칠맛이 폭발하듯 피어오른다. 전지오 셰프는 이곳에서만 만날 수 있는 메뉴로 ‘툴루즈 소시지를 올린 카술레cassoulet’를 꼽는다. “작두콩을 토마토소스에 푹 무르도록 끓여 카술레를 만들어요. 그 위에 넛메그로 향을 강하게 입힌 툴루즈 소시지를 올려 내죠. ‘야생의 맛’이라고 표현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는 소시지예요.” 오랜 시간 정통 프렌치에 천착해온 랑빠스81은 지난 3월 금촌구청과 손잡고 독산동 우시장을 활성화하는 이색적인 프로젝트에 뛰어들었다. 우시장 상인들에게 돼지나 소에서 머리, 내장, 족足을 잘라내고 남은 지육枝肉을 샤퀴트리로 가공하는 방법을 전수하고, 우시장에서 공수한 재료로 ‘독산 소시지’를 만들어 시장을 찾은 손님을 대상으로 시식 행사를 진행했다. “식문화를 중심으로 예술, 디자인, 건축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푸드랩’ 스튜디오도 운영 중이에요. 앞으로도 의미 있는 식문화 캠페인을 전개할 생각입니다.” 문의 070-7779-8181


건강한 소를 선택하는 건강한 소비


콜라비 위에 잘 숙성한 치즈 향이 풍기는 훈제 고기를 올렸다.
감성고기, 도마 2014년 양재동에서 문을 연 감성고기는 마블링이 발달한 한우를 최고로 대접하는 국내 시장에서 육우를 집중적으로 다룬 1세대 프리미엄 정육점으로 꼽힌다. 살코기 사이로 촘촘하게 낀 ‘지방’ 맛에 익숙한 소비자들 앞에 단백질과 근섬유가 발달한 육우만 판매하는 감성고기가 등장한 이후 시장의 판도가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했다. “흔히 ‘고기 선진국’이라 부르는 유럽에서는 마블링이 발달한 소를 건강하지 않은 소로 분류해요. 감성고기에서는 지방이 적더라도 넓은 부지에 건강하게 자란 육우를 소개하고 있어요.” 정육점 차원에서 현행 쇠고기 등급제의 문제점을 적극적으로 인식하고 육우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셈이다. 직영으로 운영하는 우드 그릴 레스토랑 ‘도마’의 메뉴 개발에도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고기를 발주하는 요리사와 이를 공급하는 정육점이 중간 지점에서 만날 수 있죠. 머리, 꼬리, 혀 같은 부속을 어떻게 요리에 응용할 수 있는지 주로 의논해요. 인기 부위를 얻기 위해 과다하게 도축하는 것을 막고 비인기 부위를 소비하는 선순환 고리를 함께 만들어가는 거죠.” 문의 6180-3033


기본에 충실한 베이컨 하우스


사실주의 베이컨에서 판매하는 모든 종류의 베이컨을 맛볼 수 있는 샘플러.
사실주의 베이컨 사물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는 태도를 말하는 사실주의는 베이컨 하우스 ‘사실주의 베이컨’에 꼭 들어맞는 수사다. 여러 가공육 중에서도 유독 베이컨은 ‘공장표’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2017년 ‘건강한 베이컨이 가능할까?’라는 질문을 품고 사실주의 베이컨의 문을 연 남윤서 대표는 가장 먼저 건강하게 자란 돼지를 찾는 일에 매달렸다. “핀란드는 20년 전부터 공장식 밀집 사육을 법으로 금지하고 동물 복지 정책을 추진해왔어요. 넓은 목초지에 돼지를 방목하고, 가능하면 돼지에게 항생제를 투여하지 않죠. 환경은 고기의 맛에 필연적으로 영향을 미쳐요. 자연 방목으로 건강하게 자란 돼지의 지방에서는 확실히 고약한 냄새가 덜하죠.” 사실주의 베이컨은 단가를 절감하기 위해 가공육의 색상과 풍미를 극적으로 개선하는 화학 첨가물 아질산나트륨을 사용하지 않는다. 대신 염지액에 천연 방부제 격인 고수를 첨가한다. 담백하고 자극적이지 않은 이유도 유통기한을 늘리기 위해 무리하게 염도를 높이지않기 때문이다. “베이컨 종류에 따라 음식 맛이 널뛰기하듯 달라져요. 카르보나라를 만들때 베이컨을 두툼하게 썰어 넣으면 풍미가 훨씬 살아나죠. 훈연 향이 짙게 밴 베이컨은 공보가주, 연태 등 중국 고량주와도 궁합이 좋아요. 향과 향이 만나 독특한 시너지를 만들거든요.” 문의 797-1775


만능 프리미엄 정육점


수비드 조리로 부드러운 식감을 살린 카츠샌드.
에이징룸 에이징룸은 고기의 1부터 10까지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이다. 발골을 마친 품질 좋은 부분 육을 다채로운 상품으로 개발하는 이곳은 독일식 육가공품 교육 기관 ‘훔메 마이스터슐레’를 수료한 박준건 팀장이 지휘한다. “이미 발골이 끝난 고기를 납품받아 사용하기 때문에 다른 정육점에 비해 상대적으로 시간을 버는 셈이죠. 대신 20종에 이르는 부위를 저마다 온도, 습도, 풍량을 다르게 설정해 드라이 에이징 방식으로 숙성시키거나 고기를 주재료로 다채로운 PB 상품을 개발하는 데 시간을 투자합니다.” 쇠고기와 돼지고기 앞다리살을 져 사골 육수와 함께 7시간 동안 뭉근히 끓여 완성한 카레, 제주산 흑돼지 등심을 수비드 방식으로 조리해 부드러운 식감을 살린 카츠 샌드는 에이징룸을 대표하는 PB 상품이다. 일 반 정육점과 다르게 매장 한구석에 널찍한 그릴도 구비해놓았다. “매장에서 구매한 고기를 즉석에서 구워주는 그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어요. 드라이 에이징 스테이크는 수분이 적 어 표면이 순식간에 익기 때문에 기름을 충분히 둘러가며 굽는 것이 관건이죠.” 문의 592-8292

디자인하우스 [LUXURY 2018년 9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