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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집의 트렌드를 이끄는 3인의 건축가

작아서 럭셔리한 집

‘저녁이 있는 삶’과 ‘워라밸’이 라이프스타일의 중요한 화두로 떠오른 시대. 획일화된 주거 형태에서 벗어나 작지만 개성과 취향을 담은 나만의 공간을 꿈꾸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작은 집의 형태를 다채롭게 변주하며 새로운 주거 문화의 트렌드를 이끌고 있는 건축가 3인의 ‘집’과 ‘삶’에 대한 이야기.

듀플렉스 주택으로 완성한 타운하우스


서울 대흥동의 38년 된 단독주택을 허물고 지은 ‘하정가’. ‘하얗고 정감 있는 집’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조성욱건축사사무소의 조성욱 소장.


서로 다른 생각이 모인다는 뜻으로 한 필지에 두 가구를 지은 듀플렉스 하우스, ‘사이집’.


좁은 내부가 답답하지 않도록 층고를 높이고 커다란 창을 낸 ‘하정가’의 내부.


김포한강신도시에 올해 말 완공 예정인 단지형 단독주택 ‘라피아노’의 내부 전경
조성욱건축사사무소 조성욱 소장 올해 말 김포한강신도시에 들어설 예정인 라피아노Lafiano1차는 각기 다른 구조의 연립형 주택 174가구가 하나의 단지를 이루는 타운 하우스. 세대별 독립성과 프라이버시를 지키면서 정원과 옥상 테라스, 다락 등을 배치해 단독주택의 여유와 아파트의 편리함을 동시에 담아낸 공간으로 화제를 모았다. 이곳을 설계한 주인공은 판교와 동탄 일대에 듀플렉스 주택 ‘붐’을 일으키며 주목받은 조성욱 소장. “판교에 지은 ‘사이집’처럼 설계해달라는 것이 시행사의 요청이었어요. 사이집은 한 지붕 아래 두 가구를 배치한 듀플렉스 형태의 주택인데, 내부에 중정을 만들어 건물 전체의 채광을 고려했지요. 주인집이 흔히 기피하는 ‘북향’에 위치하는데도 구석구석까지 해가 잘 들어요. 자칫하면 죽은 공간이 될 수 있는 지하를 다채롭게 활용한 것도 특징입니다. 우리나라 아파트는 프라이버시 침해 문제도 있고, 모양도 네모난 박스처럼 획일화돼 있어 재미가 없잖아요. 라피아노를 통해 좀 색다른 주거 문화를 제안하고 싶었어요. 각 가구를 지그재그로 배치해 프라이버시를 고려했고, 정원이나 테라스 등 외부 공간을 건물 사이에 끼워 넣어 주거 형태의 변화를 시도했습니다.”

그가 처음 듀플렉스 주택을 짓게 된 계기는 단순하다. 막 걸음마를 시작한 아이가 편하게 뛰어놀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다. 아파트 값에 조금만 보태면 수도권에 땅을 사 하늘을 보고 땅 을 밟으며 살 수 있는 상황. 비용을 좀 더 절감하기 위해 오랜 친구와 하나의 필지를 구입해 그 위에 주택 두 채를 지어 이웃으로 살기로 했다. 그의 첫 번째 듀플렉스 주택인 판교의 ‘무 이집’은 그렇게 완성됐다. “2011년에 집을 지은 이후 연이어 비슷한 주택 형태인 ‘에리두’와 ‘사이집’을 설계하게 됐어요. 특히 사이집은 건축주의 요청으로 무이집과 거의 같은 구조를 띠고 있죠. 그걸 계기로 이전에 한 적 없던 다양한 주택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지금에 이르게 된 거예요. 신기하죠. 처음엔 진짜 우리 가족이 ‘살 집’을 지은 것뿐이었거든요. 집의 기본인 단열, 방수, 채광에 주로 신경 썼고,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집을 원한만큼 긴 복도, 계단 미끄럼틀, 마당으로 이어지는 거실 정도를 추가했어요. 이웃집 주인이 친한 친구여서 같이 영화 보며 맥주도 한잔하고 바비큐 파티도 즐길 수 있게 옥탑 부분은 계단식 테라스로 꾸몄고요. 저희 집이 이렇게 의미 있는 작업이 될 줄 알았더라면 더 공들여서 열심히 지었을 거예요(웃음).”

조성욱 소장이 집을 설계하며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그 안에 담길 ‘삶’이다. “주택을 지을 때 공간을 최대한 비워두는 것을 선호합니다. 집은 실제 살아갈 사람의 라이프스타일로 채워져야 하니까요. 입주 전의 새 아파트에 가보면 TV와 소파부터 조명, 가구를 놓을 위치까지 이미 설정해둔 경우가 많은데, 효율성만을 고려한 결과라고 봐요. 이러면 모든 공간이 획일화될 수밖에 없죠. 제가 정말 좋아하는 집이 ‘임스 하우스Eames House’입니다. 세계적인 부부 디자이너의 집이지만 안을 들여다보면 건축적으로 무엇 하나 ‘튀는’ 요소가 없어요. 지붕과 바닥, 벽, 숲이 내다보이는 창문이 전부입니다. 그래서 특별하죠. 언젠가 임스 하우스 같은 집을 지어보고 싶어요.” 넓은 면적이나 값비싼 마감재는 좋은 집을 규정하는 조건이 될 수 없다고 단언하는 그는 주거 문화의 진정한 럭셔리는 ‘마음껏 꾸미고 뜻대로 활용할 수 있는 집’이라고 말한다. “집의 면적으로 부의 기준을 삼던 시대는 지났습니다. 집에서 중요한 것은 개인만의 스토리가 담긴 가구나 소품을 취향대로 채우고 활용할 수 있는 공간이라고 생각해요. 건축가는 사람들이 원하는 라이프스타일을 채워갈 수 있는 공간을 최소한의 요소로 가이드하는 역할을 하면 된다고 봅니다. 이런 관점으로 집을 바라보면 건축비도 절감할 수 있고, 보다 다채로운 주거 문화도 뿌리내릴 수 있지 않을까요?”


개인의 취향과 삶으로 지은 협소 주택


야외 공간을 지나야 아이들 방에 닿을 수 있는 동선으로 공간을 배치해 가족 구성원의 관계와 라이프스타일을 고려한 주택 외관.


스킵 플로어로 공간을 분할해 주방과 다이닝룸, 휴식 공간을 다채롭게 변주한 후암동 협소 주택의 내부.


테라스와 싱크대가 갖춰진 작은 공간 사이에 폴딩 도어를 설치해 편리하게 바비큐 파티 등을 즐길 수 있도록 배려한 석관동 협소 주택’.


(주)공감 건축사사무소의 이용의 소장.
(주)공감 건축사사무소 이용의 소장 “협소 주택은 ‘우리가 도시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의 결과입니다. 집은 내가 살고 싶은 삶을 구현할 수 있는 아주 중요한 공간이니까요. 우리가 살아가는 집에는 퇴근 이후의 삶을 누릴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합니다. 취미를 즐기거나 가족과 함께하는, 원하는 삶이 녹아 있는 공간. 그게 더 풍부하고 다양할수록 럭셔리한 집이라고 생각해요.” 이용의 소장은 서울 속 구도심, 주로 후암동이나 성산동 같은 주택 밀집 지역의 자투리땅을 활용해 독창적이고 개성 넘치는 집을 짓는다. 대지 면적은 좁지만 층의 높낮이를 달리하는 스킵 플로어 방식 등을 통해 건축주의 가치관과 취향을 다채로운 공간에 녹여낸다. “작년에 성북동에 지은 집은 1층이 세차장이에요. 설계를 의뢰한 분이 세차를 무척 좋아했거든요. 또 다른 집은 초등학생 자녀를 둔 부부가 의뢰했는데, ‘아이를 위한 재미있는 공간’을 원해서 방 천장에 그물 해먹을 설치하고 계단 옆에 제법 넓은 미끄럼틀을 붙였죠. 음악과 스피커에 관심이 많다면 설계 단계부터 음향이 극대화되는 최적의 공간을 고려할 수 있고, 요리가 취미라 주방에 오래 머문다면 동선 등을 고려해 냉장고나 주방 기기, 조리대의 위치를 정하면 됩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양치하는 방식부터 청소와 빨래 스타일, 선호하는 창밖 풍경 등 하나부터 열까지 사람마다 취향과 습관이 다 달라요. 그것들을 최대한 반영한 공간을 만들려고 합니다. 획일화된 공동주택에서는 해결할 수 없는 것들이죠.”

이용의 소장이 협소 주택에 도시의 삶을 녹이기 시작한 것은 2011년부터. 대형 건축 설계 사무소에서 직원으로 일하던 시절, 좀 더 효율적인 출퇴근을 위해 이사를 준비하다가 획일화된 주거 공간에 회의를 느끼고 직접 집을 짓기로 결심했다. 가진 돈을 끌어모아 경매를 통해 후암동의 59.4m2(18평) 땅을 구입했고, 2년에 걸쳐 1층에 카페 공간을 갖춘 3층 규모의 주택을 완성했다. 스스로 살 집이 첫 번째협소 주택 프로젝트였던 셈. 공감 건축사사무소의 정체성이 ‘작은 집’과 밀접하게 연결돼있는 이유다. “건축 사무실과 함께 킨포크스 Kinfolks라는 이름의 디자인 스튜디오도 운영 하고 있어요. 작은 집을 짓다 보면 디자인이 필요한 요소가 상당히 많거든요. ‘왜 이런 아이템은 없을까’ 싶은 것도 생기고요. 예를 들면 미니멀한 택배 보관함, 예쁜 소화기 같은 것들요. 철저히 개인 취향을 따르다 보니 기성품은 한계가 있더라고요. 건축을 위해 필요한 것을 직접 디자인해 제작하고 있어요. 올해는 자체 브랜드의 디자인 아이템도 만들어보려고요.” 시대가 바뀌며 협소 주택의 트렌드도 달라지고 있다. 그가 처음 집을 지을 당시의 ‘작은 집’이 기존 주거의 대안이었다면 지금은 이를 통해 자신만의 삶을 찾고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가꾸려는 사람이 늘고 있다. “초기 협소 주택은 아이가 있는 가족이 아파트의 층간 소음을 피하기 위해 선택한 일종의 대안이었지요. 하지만 지금은 싱글부터 노년의 부부까지 클라이언트도 다양해졌고, 취향도 굉장히 구체 적이면서 다채롭습니다. 그만큼 공간도 달라지고 있어요. 유학 다녀와서 전문직에 종사하는 싱글 친구가 한 명 있는데, 요새 작은 집 하나 짓겠다며 땅 보러 다니느라 바빠요. 위층만 개인 공간으로 쓰고 다른 곳에는 주말에만 운영하는 에어비앤비나 게스트하우스로 활용하고 싶다면서요. 다른 한 부부의 집은 공간 전체가 서재입니다. 책을 읽고 모으는 것을 너무 좋아해서 아예 집 전체를 서가로 꾸민 거죠. 공간은 작아도 개인의 삶과 취향이 완벽하게 녹아있는 거예요.”

작은 집의 매력을 누구보다 잘 아는 이용의 소장은 세상에 그 즐거움을 알릴 계획도 세우고 있다. “우리나라 아파트가 흥행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가 모델하우스 덕분이라고 생각해요. 반대로 실제 주거 환경을 확인하기 힘든 협소 주택은 멀게 느껴질 수밖에 없죠. 그래서 협소 주택을 몸소 체험해볼 수 있는 전시를 준비하고 있어요. 동대문의 39.6m2(12평) 땅에 4층 규모의 호텔을 지어서 ‘최소의 호텔’이라 이름 짓고 예약한 사람들이 하룻밤 살아볼 수 있게 하는 거예요. 경험해보면 생각보다 불편하지 않다거나, 예상보다 좋다는 것을 느낄 수 있게 되겠죠. 이제 곧 공사를 시작해서, 올해 말 즈음에는 선보일 수 있을 것 같아요.”


골목의 문화를 공유하는 공동주택


1층 근린생활시설과 2m 폭의 골목 사이에 목제 슬라이딩 도어를 설치해 외부 시선을 차단하면서 시야를 확보한 성산동 주택. ©진효숙




거실과 주방에 단 차를 둬 엄마와 아이의 눈높이를 고려한 성산동 주택의 내부. ©진효숙


에이라운드 건축 박창현 소장.


하나의 건물에 근린생활시설과 세 식구가 거주하는 공간을 함께 구성한 연남동 주택. 3층 방으로 올라가는 내부 계단을 좁고 높게 만들어 공간감을 풍성하게 했다. ©진효숙
에이라운드건축 박창현 소장 집은 개인의 삶이 녹아 있는 공간이지만, 동네를 구성하는 가장 작은 단위이기도 하다. 내부를 취향에 맞춰 완벽하게 꾸미더라도 이웃과 동네 환경에 따라 삶의 질이 달라질 수 있는 것. 골목을 사이에 두고 오밀조밀 모여 지내던 사람들이 닫힌 공간에서 손안의 스마트폰만 들여다보며 살아가는 시대. 박창현 소장은 주거 문화에 작은 변화의 바람을 일으킬 중심으로 좁은 골목과 오래된 상점이 있는 ‘구도심’에 주목했다. “혼자 잘 살며 만족하는 삶보다는 주변 사람과 함께 어우러지며 행복한 삶이 더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집을 통해 그런 삶을 구현할 수 있을거라고 판단했고요. 한 동에 수백 가구가 함께 사는 아파트나 주상 복합은 불특정 다수의 이웃이 워낙 많은 데다 서로 만날 기회가 적어 이런 취지에 적합하지 않아요. 반면 길이 좁고 주택이 밀집된 동네는 골목을 쓰는 사람들이 한정돼 있어 서로 마주칠 기회가 많고, 친밀감을 형성하기도 좋지요. 이런 곳에 주택을 지어 골목과 맞닿은 1층이나 건물 주변에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모일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는 겁니다. 가림막을 닫으면 개별 영역이지만 열면 골목과 연결되는 마당 같은 공간으로 골목 스 케일을 조절하거나, 길과 맞닿은 1층에 작은 상점을 배치해 동네 사람들이 만나는 접점을 만드는 거죠. 제가 지향하는 건축은 작더라도 주변과 조화를 이루는 집을 지어 사람들이 관계를 형성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박창현 소장의 포트폴리오에 담긴 상가 주택과 공동주택 대다수는 이런 아이디어의 결과물이다. 자신만의 주택을 짓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그는 건물과 공간 디자인을 제시하는것에서 그치지 않고 주변과 접점을 이룰 새로 운 콘텐츠를 제안하기도 한다.

“지난해 연남동에 지은 주상 복합 주택에는 1층에 청바지 수입 편집 숍이 들어서 있어요. 젊은 부부가 직접 살 집을 의뢰했는데, 남편이 작은 가게를 하려고 준비하고 있다기에 1층을 가게 용도로 설계했죠. 지하는 임대 공간으로 비워뒀는데, 지금은 미술 하는 친구들이 작업실로 사용하고 있다더군요. 하나의 건물 속에 이토록 다양한 문화가 혼재되는 것이 참 흥미로워요. 또 하나는 전농동의 원룸 주택인데, 지금 착공을 앞두고 있어요. 건축주가 그 동네에서 30년 이상 목욕탕을 운영해서 지역 토박이들과 무척 가까워요. 그래서 1층에 ‘사랑방’처럼 운영할 카페를 제안했습니다. 그곳에서 매주 동네 사람들이 클래스를 여는 거죠. 방앗간 아저씨의 떡만드는 기술, 꽃집 아가씨의 꽃 포장 노하우 등 다양한 특강을 열며 기존 주민과 새로운 이웃이 자연스레 만나는 자리를 마련하는 겁니다.” 그가 설계한 작은 집 속에는 동네와 관계에 대한 고찰, 그로부터 파생된 독특한 건물 구조, 색다른 라이프스타일까지 수많은 가치가 녹아 있다. 이런 특징은 단독주택뿐 아니라 원룸이나 다세대주택 같은 공동주택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원룸은 공간이 무척 협소합니다. 침대 하나도 들어가기 벅찬데 세탁기와 싱크대까지 넣다 보면 효율이 떨어져요. 전농동 원룸 주택을 설계하면서 개인 공간을 줄여 잠자고 쉬는 데 집중할 수 있게 했고, 지하에 별도의 공동 공간을 마련해 식당, 세탁실 등을 구비했어요. 이전에 목욕탕이던 필지의 특징을 고려해 공동 목욕실도 만들었습니다. 탈의실과 세면실은 물론 정원을 내다보며 목욕을 즐길 수 있는 공간도 마련했죠. 기존 원룸에서는 결코 누릴 수 없는 시간을 제공할 수 있는 것이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최근 박창현 소장은 몇 해 전 ‘담장 허물기 캠페인’이 이뤄졌던 홍은동을 기반으로 동네의 정체성을 건물에 녹이는 ‘동네 읽기 프로젝트’에 푹 빠져 있다. “오래된 주택들이 담장을 허물면서 공용 도로와 개인 구역의 구분이 모호해진 것이 흥미롭더라고요. 이런 특징을 재해석한 주택을 지어보려고 계획 중입니다. 모든 세대의 현관 앞에 평소에는 개별 공간으로 쓰다가 한 달에 한 번 정도 문을 열면 외부로 변신하는 작은 공간을 배치하는 거죠. 공간을 오픈하는 날엔 플리마켓이나 케이터링 파티를 열어도 재미있을 거예요. 개인과 공동의 경계가 모호한 지점을 통해 이웃과의 접점을 만들고, ‘선택적 오픈’을 할 수 있게 하는 거죠. 예전처럼 사람들이 서로 소통하며 따로 또 같이 사는 삶을 찾게 되길 바라요. 집을 통해 그런 작지만 반가운 변화가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디자인하우스 [LUXURY 2018년 6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