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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CE

사옥 로비에서 만나는 아트

자체 컬렉션이 많아지고, 문화 예술을 후원하는 기업도 늘면서 사옥의 로비를 갤러리처럼 꾸미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다. 유명 미술관에서도 보기 힘든 명작이 수두룩하게 걸린 곳도 적잖다. 아트 작품과 더불어 더욱 화사하고 근사해진 사옥 로비로의 초대.

일신방직


일신방직 여의도 사옥에서 만나는 예술 작품들. 로이 리히텐슈타인부터 데이비드 호크니까지 당대 최고 작가들의 작품이 수두룩하다.




한남동 사옥 역시 미술관 못지않은 컬렉션을 자랑한다. 양주혜 작가의 미디어 파사드를 포함해 최고의 작품을 상설 전시한다.
한남동에 자리한 일신방직 신사옥의 로비는 그 자체로 훌륭한 갤러리다. 짐 다인의 ‘비너스 조각상’, 백남준의 대표작 ‘선덕여왕’, 캔버스에 인물을 거꾸로 그리는 것으로 유명한 게오르그 바젤리츠의 회화를 비롯해 유명 갤러리나 미술관에서 봄 직한 작품 30여 점이 복도와 벽면에 가득하다. 1951년에 설립한 원사, 직물 생산 기업 일신방직은 수장고까지 따로 두고 시의성과 화제성을 반영해 전시 작품을 정기적으로 바꾼다. 최근 선보인 ‘기획전’은 단색화. 이우환, 박서보, 하종현, 정창섭의 대표작을 벽면에 나란히 걸어 각 아티스트의 화풍과 미감을 비교하며 감상할 수 있도록 했다. “이렇게 귀한 작품을 매일 볼 수 있으니 얼마나 좋으냐?”는 질문에 작품 전시와 배치를 담당하는 관계자는 “1년에 3~4차례 전시 작품을 바꾸는데 미술관에서도 볼 수 없는 작품들이 많다. 백남준 선생 작품은 비디오테이프에서 CD로, 메모리칩으로 영상 저장 장치를 계속해서 바꿔줘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느끼는 보람도 크다”고 말했다. 한남동 신사옥은 애초에 미술 작품을 전시할 용도로 설계했다. 유리로 마감한 가로 약 14m, 세로 4m 규모의 로비 벽면에는 LED 전광판을 삽입해 양주혜 작가의 미디어 아트를 선보이는데 색색의 큐브가 다양한 형태와 색깔로 바뀌며 빚어내는 무늬가 아름답다. 여의도에 자리한 일신방직 사옥 역시 놀라운 컬렉션을 자랑한다. 고대 그리스의 조각가 테오도로스Theodoros가 제작한 조각 작품 ‘떠 있는 여인상Floating Caryatide’이 설치된 로비를 포함해 사무실로 사용하는 9~11층 복도 전체를 갤러리로 꾸몄다. 로이 리히텐슈타인, 재스퍼 존스, 앤디 워홀, 프랭크 스텔라, 호안 미로, 안젤름 키퍼 등 미술사에 한 획을 그은 이들의 작품이 수두룩하다. 일신방직을 이끄는 김영호 회장은 소문난 문화 예술 후원가로 1970년대부터 컬렉션을 시작했다고 알려졌다. 뉴욕 프랫 인스티튜트에서 건축을 전공해 문화와 예술에 대한 이해가 깊다. 장르와 시대를 아우르는 그의 컬렉션을 감상하다 보면 그가 얼마나 오랫동안 예술 작품에 애정을 쏟아왔는지 읽을 수 있다. 일신방직 비서실에서는 “홍콩 아트페어를 포함해 좋은 작품이 나오는 곳이면 지금도 짬을 내 다녀오신다”고 밝혔다. 그렇게 모은 작품이 으슥한 비밀 창고가 아닌, 모두가 볼 수 있는 로비에 진열된다는 점이 반갑다.


하이트진로


하이트진로 사옥에 설치된 서도호 작가의 작품 ‘인과’. 거대한 회오리바람을 연상시키는 형태로 서 작가가 오랫동안 천착하는 ‘카르마’를 주제로 삼았다. ©전택수
용인 기흥구에 자리한 하이트진로에는 세계적으로 명성이 높은 한국의 아티스트 서도호의 대작이 설치돼 있다. 1층 로비 천장에서부터 지하 1층 바닥까지 이어지는 작품으로 높이만 11m에 이른다. ‘인과Cause & Effect’란 타이틀이 붙은 이 거대한 구조물은 11만 개의 작은 인물상으로 이뤄져 있다. 오렌지 컬러를 주조색으로 조금씩 채도를 달리한 인물상이 역동적 회오리를 그리며 아래쪽으로 떨어지는 구조. 소형 인물상들은 무등을 탄 채 서거나 앉아 거대한 무리를 이루는데 이는 서도호 작가가 오랫동안 천착해온 ‘인연’과 ‘윤회’의 상징적 표현이다. 하이트진로 홍보실 측은 “실제 작품을 마주하면 인물 군상이 만든 허리케인을 보는듯하다. 가장 아래쪽에 거인처럼 버티고 서 있는 인물상도 울림이 대단하다”고 말했다. 2005년 하이트가 진로를 합병하면서 설립된 하이트진로는 문화 예술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높은 기업으로 알려졌다. 작년에는 ‘참이슬’ 출시 19주년을 기념해 코엑스 내에 팝업 미술관 ‘이슬 갤러리’를 오픈하고 신진 아티스트와 협업한 작품을 전시해 화제가 됐다.


현대카드




현대카드 여의도 사옥에 있는 제프 지머맨의 작품 ‘라운드 버블’. 숯을 주재료로 사용하는 박선기 작가의 작품도 만날 수 있다.
여의도에 자리한 현대카드 본사는 한국에서 가장 색다르고 재미있는 로비를 갖춘 곳이다. 한쪽에는 회사에서 직접 디자인한 탁구대가 놓여있고 그 옆으로는 자전거가 비치돼 있다. 로비에 탁구대가 있으면 쑥스러워 누가 라켓을 잡겠나 싶지만 점심시간 이후에는 긴 줄이 만들어질 정도로 인기가 높다. 현대카드 홍보실 차경모 과장은 “다양한 미술품이 로비는 물론 식당, 회의실 곳곳에 걸려 있는데 모두 좋은 작품이라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진다”라고 말했다. 로비 왼쪽에 설치한 작품은 신라호텔 로비의 아크릴 비즈 샹들리에 작품으로 유명한 박선기 작가의 ‘집합An Aggregation 110209’. 나일론줄에 매달린 숯 조각이 계단을 만들며 천장까지 뻗어나가는 형태. 아래쪽으로는 작은 브라운관을 통해 정혜정 작가의 미디어 아트 ‘눈알 해파리와 함께하는 촉촉한 여행’을 선보이는데 벌거벗은 소인이 눈알 이곳저곳을 탐험하듯 돌아다니는 모습이 재미있다. 반대쪽에는 이 두 작품과 전혀 다른 질감의 사진을 걸었다. 캐나다 밴쿠버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개념주의 사진 운동의 대가 이언 월러스Ian Wallace의 ‘무제Untitled’. 횡단보도에 선 두 명의 남녀 사진을 캔버스 양쪽에 배치하고 가운데 부분은 단색 회화로 처리했다. 2관 로비에는 세계적 유리공예 작가 제프 지머맨Zeff Zimmerman의 작품 ‘라운드 버블Round Bubble’을 설치했다. 풍선처럼 커다란 유리구슬을 부케처럼 풍성하게 붙인 작품. 통창으로 빛이 쏟아져 들어오는 오전 시간에 보면 더욱 아름다운 조형미를 드러낸다. 언더웨어 차림으로 걷는 ‘사라Sara’를 주인공으로 한 줄리언 오피의 미디어 아트도 공간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작품 구매와 설치는 현대카드에서 운영하는 전시 문화 공간 ‘스토리지’의 큐레이터들이 담당한다. 현대카드를 이끄는 정태영 회장은 “경영의 본질은 과학이고 승부는 예술에서 갈린다. 과학이 없으면 예선전 탈락이고 결승전은 예술로 승부가 난다”고 말할 만큼 평소에도 예술적 디자인의 가치를 강조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신세계 인터내셔날 청담


©PKM 갤러리
신세계백화점 해외사업부에서 시작해 패션 비즈니스 전문 기업으로 자리매김한 신세계 인터내셔날은 지난 2015년 도산대로에 신사옥을 오픈했다. 미국의 유명 건축가 그룹 올슨 쿤디그 아키텍츠Olson Kundig Architects에서 설계하고 정림건축에서 준공한 건물은 철제 프레임에 작은 격자창을 내 섬세하고 세련된 모습이다. 주소 지번인 449를 철판으로 만들어 건물 현관에 설치 작품처럼 올린 것도 인상적이다. 신사옥을 오픈하며 여러 점의 미술 작품도 구매했는데 로비에 설치한 작품은 이원우 작가의 ‘아모르 파티Amor Fati’. 스테인리스스틸로 육중한 형태의 주물을 뜬 다음 빛나는 금속거죽만을 남긴 작품으로 중앙에는 ‘아모르 파티’, 즉 ‘자신의 삶을 사랑하라’는 뜻의 라틴어 문구를 새겨 넣었다. 아모르 파티는 독일의 철학자 니체의 운명관이기도 하다. 그는 “자신의 운명을 긍정하고 온전히 받아들이며 사랑할 때 인간 본래의 창조성이 발휘될 수 있다”고 믿었다. 이런 의미를 알고 나면 작품이 더욱 친근하게 다가오는데 출퇴근길에 작품을 보면 자연스레 행복한 하루를 다짐할 것 같다. 작품 주변으로는 단정한 디자인의 긴 나무 의자를 비치해 누구든 편하게 작품을 감상할 수 있도록 했다.


포스코


©포스코

테헤란로 포스코 빌딩 로비에서는 백남준의 대작 ‘철이 철철-TV 깔대기, TV 나무’를 만날 수 있다. 이 작품은 포스코가 백남준에게 직접 의뢰해 제작한 것으로 백남준은 철강회사 포스코에 철이 철철 넘쳐나기를 기원하며 이런 제목을 붙였다. 작품 형태에도 포스코의 밝은 미래를 기원하는 염원을 담았다. 천장을 뚫고 하늘로 날아오를 것 같은 깔대기 모양은 포스코의 비약을 상징하며, 철 기둥은 수많은 꽃과 열매를 맺는 뿌리 깊은 나무를 표현했다. ‘나뭇가지’에 매달려 오색 영상을 뿜어내는 294개의 모니터는 인간과 자연을 사랑하고 미래를 위해 나아가는 포스코의 오늘을 의미한다. 이곳에 간다면 지하 1층에 있는 포스코미술관도 꼭 둘러보길. 1년에 5~7차례 전시를 선보이는데 대관전 없이 모든 프로그램을 기획전으로만 구성해 아트 애호가들에게도 인기가 높고 선정 작가와 전시 수준도 높다. 포스코미술관 관계자는 “포스코의 소장 미술품은 1100여 점에 달한다. 프랭크 스텔라, 정현 등 철을 소재로 하는 작가가 많지만 이우환, 김종학 작가의 회화도 있다. 시서화, 추상화, 사진 등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는데 이런 컬렉션 덕분에 양질의 전시를 기획할 수 있다”고 밝혔다.


KB손해보험 강남 사옥


©PKM 갤러리
KB손해보험 강남 사옥 로비는 재미 서양화가 이상남의 대작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흔치 않은 공간이다. 사옥 인테리어를 진행할 때 보통 여러 작가의 대표작을 한자리에 배치하는 것과 달리 이 공간에서는 ‘이상남 화백’으로 과감히 선택과 집중을 했다. 로비는 물론 회의실에도 그림이 한쪽 벽면을 가득 채웠는데 큰 작품은 가로 사이즈가 12m에 이른다. 로비에 걸린 작품은 대형 추상화로 몇몇 형태의 점과 선, 타원이 나름의 질서를 구축하며 화폭을 가득 채운다. 노란색과 분홍색을 사용한 작품도 있는데 아스팔트처럼 가로로 길게 뻗은 모양이라 속도감이 느껴진다. 로비는 갤러리를 표방한 듯 깨끗하고 간결한 느낌이다. 작품 외에 별다른 구조물이나 설비 시설이 눈에 띄지 않아 각각의 작품이 주연처럼 도드라진다. 이 화백 작품 외에 백남준의 1990년대 작품 ‘엘리펀트 게이트’도 만날 수 있다. 작품들은 이곳이 구 LIG손해보험 사옥일 때부터 공간을 빛냈다. LIG는 경남 사천에 지은 복합 문화 센터 겸 연수원을 지을 때도 이상남 화백에게 작품을 의뢰할 만큼 작가의 작품과 작업 세계에 대한 믿음이 두텁다. LIG손해보험은 2014년 KB금융지주에 인수됐다.


현대자동차 인재개발원 마북캠퍼스





국내 기업 중 아트에 가장 활발한 지원과 애정을 쏟아붓는 곳 중 하나가 현대자동차그룹이다. 약 5년 전부터 국립현대미술관과 ‘MMCA 현대차 시리즈’를 통해 국내 아티스트를 후원해온 것이 대표적이다. 현대모터스튜디오와 제네시스관을 통해서도 동시대 최고 작가의 작품을 선보이고 있으며 영국 테이트 미술관과도 협력 관계를 맺고 있다. 용인시 기흥에 자리한 인재개발원 마북캠퍼스 비전홀에는 벽 한 면을 꽉 채우는 초대형 스크린이 있다. 가로 24m, 세로 3.5m 크기로 연중 다양한 미디어 아트를 선보인다. 총 720개의 크리스티 마이크로타일Christie Micro-tile로 이뤄진 설치물로 가로 60개, 세로 12개의 패널이 하나의 유기체처럼 연동한다. 각기 다른 이미지와 스토리가 수십 개의 패널을 통해 펼쳐지는 광경은 그 자체로 예술적 오라를 발산한다. 현대미술의 큰 줄기 중 하나인 ‘뉴 미디어 아트’를 소개하고 작가를 후원하기 위해 설치한 미디어 갤러리. 현대자동차그룹은 미디어 아트 성장 지원 프로젝트 ‘VH어워드’ 수상작을 이곳에서 상영했는데 때론 다큐멘터리같고 때론 SF 영화 같은 영상이 거대한 미디어 갤러리에서 구현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디자인하우스 [LUXURY 2018년 4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