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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패션을 이끄는 디자이너가 선보이는 또 하나의 오트 쿠튀르

패션 디자이너의 무대의상

하이패션을 이끄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와 세계적인 발레단・오페라단의 협업은 오래전부터 이어져온 일. 공개할 때마다 패션계와 문화예술계에 신선한 자극이 되었다. 런웨이와는 또 다른 패션 디자이너의 감각과 예술성을 확인할 수 있는 오트 쿠튀르의 결정체, 무대의상의 세계 속으로!

칼 라거펠트의 로맨틱한 발레 의상
<브람스-쇤베르크 콰르텟>





뉴욕 시티 발레단을 창립한 무용계의 거장 게오르게 발란친George Balanchine이 브람스의 ‘피아노 콰르텟 NO. 1’을 모티프로 만든 발레 <브람스-쇤베르크 콰르텟Brahms-Scho¨nberg Quartet>. 1966년 4월 링컨 센터에서 초연한 후 뉴욕 시티 발레단을 상징하는 레퍼토리로 자리매김한 이 작품이 지난해 7월, 파리 오페라 발레단의 공연으로 새롭게 재탄생했다. 영화배우 내털리 포트먼의 남편으로도 유명한 파리 오페라 발레단 예술감독 뱅자맹 밀피에Benjamin Millepied의 연출로 오페라 바스티유 무대에 오른 <브람스-쇤베르크 콰르텟>은 샤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이자 세계적인 패션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가 의상을 제작하면서 더 큰 화제를 모았다.

1980년대, 오페라 <호프만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밀라노 라 스칼라 극장, 몬테 카를로 발레단 등의 무대의상을 디자인한 라거펠트는 특유의 예술적 감각과 노하우를 집약해 새로운 발레 의상을 완성했다. 다른 공연과 차별되는 안무 동작을 파악하는 것은 물론, 브람스의 음악을 반복해 감상하며 디자인 요소를 수집했다. “브람스의 곡에서 ‘빈 분리파’가 추구했던 호화롭고 총체적인 예술 세계가 떠올랐다. 발란친의 원작보다 더 로맨틱한 의상을 제작한 이유다.” 낭만적이면서 세련된 의상을 구현하기 위해 그는 코르셋과 함께 체크, 스트라이프 패턴을 다채롭게 활용했다. 고전적인 발레 의상과 블랙 앤드 화이트 컬러의 절묘한 조화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발망을 입은 발레리노
<르네상스>





“팝도 좋아하지만 클래식하고 아름다운 발레는 나의 오랜 관심사 중 하나였다. 프렌치 발레를 위한 오트 쿠튀르를 제작하는 커다란 꿈을 이룰수 있게 돼 영광이다.” 발망Balmain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올리비에 루스테잉Olivier Rousteing의 말이다. 하이패션계를 이끄는 젊은 아이콘으로 손꼽히는 그는 지난 6월 13일, 파리 오페라 발레단의 스타 댄서 세바스티앵 베르토Sebastien Bertaud가 안무한 발레 작품 <르네상스Renaissance>의 의상을 디자인하며 공연 무대에 화려하게 데뷔했다.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콘체르토 No. 2’에 맞춰 22명의 무용수가 등장하는 작품을 위해 올리비에는 발망의 DNA와 발레 특유의 우아함을 동시에 살릴 수 있는 의상을 디자인했다.

공연 전 인스타그램에 의상 스케치와 함께 작업 과정을 공개한 그는 “발레의 동작을 더욱 드라마틱하게 살리는 동시에 가장 ‘발망답게’ 섹시하고 글래머러스한 느낌을 살리기 위해 고민을 거듭했다”고 밝혔다. 그 결과 발망 특유의 우아한 견장 디테일이 살아 있는 재킷과 코트, 1000개 이상의 크리스털과 진주, 라인스톤 등으로 재탄생한 클래식한 발레 슈트가 탄생했다. 화려하고 눈부신 올리비에의 발레 의상은 루이 14세로부터 영감을 받은 2012년 가을의 발망 컬렉션을 떠올리게한다. <르네상스>의 안무를 책임진 세바스티앵 베르토는 “올리비에의 의상 스케치에서 느껴지는 분위기를 그대로 살려낼 수 있는 안무 동작을 구성했다”고 말한다.


가레스 퓨의 실험적 의상을 입은 17세기 오페라
<엘리오가발로>







파리 국립 오페라단은 지난해 9월, 2016/2017 시즌 오프닝 무대로 프란체스코 카발리의 오페라 <엘리오가발로Eliogabalo>를 선보였다. 14세부터 4년 동안 로마 황제로 군림한 실존 인물 엘리오가발로의 삶을 그린 작품. 프랑스의 젊은 연출가 토마 졸리Thomas Jolly가 연출을 맡아, 각종 악행을 일삼다 끝내 시민들에게 암살당한 폭군의 일대기를 현대적이고 세련된 무대로 풀어냈다. 마치 SF 영화 같은 미래적인 분위기를 완성한 것은 무대 디자이너 앙투안 드라뵈르Antoine Draveur의 미니멀한 조명과 영국 출신의 패션 디자이너 가레스 퓨Gareth Pugh의 모던한 의상. 특히 태양을 형상화한 기하학적인 패턴과 블랙・화이트・골드 등 미니멀한 컬러, 드라마틱한 실루엣을 절묘하게 조합한 의상은 말초적인 역사물을 현대적인 무대로 탈바꿈한 일등 공신이었다.

센트럴 세인트 마틴을 졸업한 후 2008년 ‘안담 패션 어워드ANDAM Fashion Award’를 수상하며 세계적인 패션 디자이너로 발돋움한 가레스 퓨는 14세 때부터 국립 청소년 극단에서 무대의상 디자이너로 활약한 경험을 살려 실용적이면서도 연극적인 요소를 극대화한 공연 의상을 디자인했다. 태양신 아폴론을 숭상한 로마인의 특징을 살려 머리 뒤에 해 장식을 후광처럼 활용했고, 시리아 가문 출신인 황제의 백그라운드에 착안해 레드, 퍼플 등 동양적인 컬러의 비단으로 모노톤 무대에 포인트가 될 의상을 제작했다. <엘리오가발로>에서 첫선을 보인 약 60벌의 무대의상은 가레스 퓨의 2017 S/S 컬렉션 주요 작품으로 소개되기도 했다.


컨템퍼러리 발레와 드리스 반 노튼의 모던한 만남
<더 드리머>





뉴욕 시티 발레단은 매년 가을, 실력 있는 안무가와 세계적인 패션 디자이너가 협업한 신작을 선보이는 ‘가을 패션 갈라’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지난해에는 뉴욕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패션 디자이너 루시 애술린Rosie Assoulin과 나르시소 로드리게스Narciso Rodriguez, 휴고 보스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활약한 대만 출신의 패션 디자이너 제이슨 우Jason Wu 등의 무대의상을 만날 수 있는 4개 작품을 소개했다. 그중 특히 주목받은 무대는 벨기에 패션 디자이너 드리스 반 노튼Dries Van Noten과 뉴욕 시티 발레단에서 역대 두 번째로 상주 안무가 타이틀을 얻은 세계적 안무가 저스틴 펙Justin Peck의 <더 드리머The Dreamer>. 체코 출신의 미국 작곡가 보후슬라프 마르티누Bohuslav Martin 의 피아노 5중주에 맞춰 두 명의 남녀 무용수가 춤을 추는 파 드 되Pas de deux로, 뉴욕 시티 발레단의 수석 발레리나 세 먼스Sara Mearns와 발레리노 아마르 라마사르Amar Ramasar가 호흡을 맞췄다.

2001년 벨기에에서 공연한 안 테레사 드 케이르스마커르Anne Teresa de Keersmaeker의 <레인Rain>과 2015년 뉴욕에서 초연한 데이비드 미챌릭David Michalek의 댄스 오페라 <하고로모Hagoromo>를 통해 컨템퍼러리 발레 의상의 제작 과정을 경험한 드리스 반 노튼은 영국 화가 패트릭 헤런Patrick Heron의 선명한 컬러가 돋보이는 추상 페인팅에서 영감을 받아 <더 드리머>의 의상을 제작했다. 색채 조합과 소재의 레이어링을 기반으로 실용적이고 현대적이면서도 에스닉한 컬렉션을 발표해온 그의 디자인 감성이 모던한 선과 색이 돋보이는 발레 의상으로 재현되었다. 베이지 톤과 딥 블루, 블랙 컬러를 매치해 도회적인 이미지를 살렸고, 동작의 아름다운 선이 잘 살아날 수 있도록 옷감을 대각선 방향으로 자르는 바이어스 재단bias-cut을 적용했으며, 실크 드레스의 치마 부분은 시폰 소재를 겹겹이 쌓아 우아함을 더했다. 아마르 라마사르가 착장한 블랙 팬츠와 베이지 셔츠의 정갈한 실루엣은 러시아를 대표하는 전설적인 발레리노 루돌프 누레예프Rudolf Nureyev를 모티프로 작업한 드리스 반 노튼의 2015년 S/S 시즌 컬렉션을 차용한 결과물이다.


발렌티노가 재현한 19세기 프리마돈나
<라 트라비아타>







지난해, 로마 오페라하우스의 시즌 공연 중 가장 주목받은 무대는 영화 감독 소피아 코폴라Sofia Coppola의 오페라 데뷔작 <라 트라비아타La Traviata>였다. 트렌디한 연출로 잘 알려진 그녀의 첫 번째 오페라 무대를 더욱 빛나게 한 것은 발렌티노의 디자이너들이 제작한 의상이었다. 비련의 여주인공 비올레타의 의상은 발렌티노 가라바니가 메종 아틀리에에서 수작업으로 제작했고, 플로라를 포함한 주요 등장인물과 코러스의 의상은 당시 발렌티노 디자이너로 활약한 피엘파올로 피촐리와 마리아 그라치아 키우리가 로마 오페라하우스 의상팀과 협업해 디자인했다. 1853년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초연한 후 16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다양한 방식으로 재해석된 <라 트라비아타>는 소피아 코폴라의 감각과 발렌티노의 헤리티지를 통해 ‘21세기의 클래식’으로 새롭게 탄생했다.

“나는 근래 재해석하는 방식처럼 근거 없이 모던하고 세련된 <라 트라비아타>를 원하지 않는다. 때문에 소피아 코폴라에게 현대적이면서도 고전미를 잃지 않은 비올레타를 표현해달라고 요청했다.” 발렌티노 가라바니의 말이다. 비올레타의 의상을 디자인하기 위해 그는 베르디의 원곡은 물론 뉴욕과 이탈리아에서 활약한 최고의 소프라노 마리아 칼라스, 오페라 의상의 대가 릴라 데 노빌리, 초현실주의 영화감독이자 오페라 감독 루키노 비스콘티 등의 작품을 오랜 시간 연구했다. 다양한 소재와 다크 계열의 컬러를 겹겹이 적용한 블랙 드레스, 드레이핑으로 포인트를 준 강렬한 레드 드레스, 순백의 화이트 나이트가운 드레스 등은 비올레타의 심적 변화와 오페라의 결정적 순간을 보여주는 효과적인 장치가 됐다.


장 폴 고티에의 화려한 캣워크
<더 원>





“나는 항상 전위적인 예술가들을 동경해왔다. 메이저 패션계에서 활동했지만 늘 일반적인 통념과는 거리가 먼 색다른 아름다움에 이끌렸다.” 파격적이고 전위적인 컬렉션으로 ‘패션계의 악동’이 된 프랑스 패션 디자이너 장 폴 고티에Jean Paul Gaultier의 말이다. 2014년 기성복 제작을 중단하고 오트 쿠튀르에 집중하겠다고 선언한 그는 넘치는 아이디어와 예술적 감성을 효과적으로 표현할 장치를 모색했다. 지난해 10월 베를린 프리드릭스타트 팔라스트Friedrichstadt-Palast 극장에서 첫선을 보인 <더 원The One>은 그의 오랜 바람을 집약한 공연. 프랑스 디자이너 티에리 뮈글레르Thierry Mugler와 독일 연출가 롤란트 벨케Roland Welke가 제작해 2014년 말 공연한 <더 와일드The Wild>의 새로운 버전으로, 라스베이거스 등에서 주로 공연하는 ‘카바레 쇼’ 스타일의 다채로운 음악과 의상, 화려한 퍼포먼스가 특징이다.

베를린 극장에 잠들어 있던 귀신들이 깨어나 펼치는 언더그라운드 파티를 묘사한 공연을 위해 장 폴 고티에는 100명 이상의 퍼포머가 입을 500여 벌의 의상을 디자인했다. 주로 베를린과 카바레에서 영감을 얻었고, 특유의 디자인 요소 중 하나인 세일러 스트라이프와 독특한 실루엣도 활용했다. 50가지 이상의 새로운 패턴과 15만 개 이상의 스와로브스키 보석을 활용한 의상을 위해 그는 테일러, 슈메이커, 메이크업 아티스트 등 55명에 달하는 스태프와 함께 약 10개월간의 제작 과정을 거쳤다. “<더 원>은 장 폴 고티에의 예술 세계를 총망라한 새로운 차원의 캣워크”라는 롤란트 벨케의 설명처럼 한 편의 패션쇼를 보는 듯한 작품이다.

디자인하우스 [LUXURY 2017년 10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