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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의 재료로 현대건축의 미학을 극대화한 건축물

Local x Material Architecture

천재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는 “자연은 신이 만든 건축이며, 인간의 건축은 그것을 배워야 한다”고 했다. 주변 환경에 대한 심도 있는 고찰을 재료에 담아낸 건축가들이 주목받고 있다. 지역에서 발견하고 수집한 재료로 현대건축의 미학을 극대화한 아름다운 건축물의 향연!

화산지형 위에 강철과 유리로 ‘시’를 쓰다
레스 콜스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상의 2017년 수상자로 스페인 RCR 건축사무소의 세 공동대표 라파엘 아란다Rafael Aranda, 카르메 피헴Carme Pigem, 라몬 빌랄타Ramon Vilalta의 이름이 호명됐을 때, 건축계는 술렁였다. 스페인 카탈루냐 지방의 소도시 올로트Olot에서 조용히 활동해온 세 명의 건축가에 대해 영국 <가디언>지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이라는 설명을 붙였다. 이들이 자하 하디드, 안도 다다오, 프랭크 게리 등과 비견되는 쟁쟁한 ‘스타’ 건축가를 제치고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이유에 대해 하얏트 재단은 “그들의 작업은 건축물과 주변 환경이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으며, 건축 재료를 선택하고 짓는 과정에서 의미 있고 지속 가능한 공간을 만드는 법을 잘 알고 있다”고 설명한다. 스페인 명문 건축학교로 손꼽히는 마드리드 건축학교Escuela Te ´cnica Superior de Arquitectura de Madrid를 졸업한 후 고향으로 돌아가 30여 년 동안 주변 환경에 어울리는 건축을 고찰한 RCR 건축사무소의 가장 큰 특징은 자연 친화적인 공법이다. 흙이나 나무 같은 친환경 재료를 사용하는 것은 아니고 오히려 철판, 유리 등 익숙한 현대건축 재료를 주로 활용한다. 가장 보편적인 재료로 지역의 특징을 극대 화하는 건축을 선보이는 RCR 건축사무소에 대해 프리츠커상 심사위원단은 “아름답고 시적인 방식으로 지역과 세계를 아우른다”고 평한다.

올로트의 대표적인 레스토랑 ‘레스 콜스Les Cols’는 재료에 대한 RCR 건축사무소의 고찰을 살피기 좋은 결과물이다. 강, 나무, 건물 등 주변 환경을 해치지 않으면서 새로운 건물을 지형 위에 살포시 얹은 듯한 특유의 스타일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올로트는 대표적인 화산지형으로 땅이 검은색을 띠고, 오래전부터 금속가공이 발달해 철재 또한 함께 발달한 도시다. 지역 내에서 생산한 후 재활용한 철판이나 녹슬면서 더욱 단단해진 코르텐 강판 등은 주변 환경의 특징을 함축하기 좋은데다 검은 땅과도 아름답게 대비를 이룬다. RCR 건축사무소는 철을 뼈대로 알루미늄, 플라스틱 등을 조화롭게 배치해 지역의 오래된 레스토랑을 현대적인 다이닝 공간으로 탈바꿈하고, 숙박 공간을 더했다. 철제 파이프 여러 개를 세운 후 그 위에 반투명 플라스틱을 덮어 견고하면서도 가볍고 미니멀한 건물을 완성한 것. 독특한 캐노피와 화산지형을 닮은 돌바닥, 세 건축가가 직접 제작한 투명 아크릴 식탁이 어우러져 마치 야외에서 식사를 즐기는 듯 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벽돌과 티크, 라탄의 현대적인 조우
카타마마 호텔





인도네시아 발리 스미냑 지역에 2016년 문을 연 카타마마 호텔Katamama Hotel. 스미냑의 랜드마크이자 핫 플레이스로 손꼽히는 포테이토 헤드 비치 클럽을 운영하는 PTT 패밀리가 론칭한 첫 번째 부티크 호텔로, 발리 전통 건축 재료와 다양한 수공예 기술을 접목한 감각적인 디자인이 돋보인다. 자카르타를 기반으로 활약하고 있는 유명 건축 디자이너 안드라 마틴Andra Matin은 인도네시아에서 오랫동안 활동해온 경험을 바탕으로 발리 특유의 지역적 매력을 극대화하면서 현대적인 호텔로서 최적화된 건물을 설계했다. 발리 전통 건축 기법인 트리앙가Tri Angga를 활용해 외벽과 내벽 전체를 주변 토양에서 채집한 흙으로 제작한 1만여 개 이상의 수제 벽돌로 완성했으며, 입구와 발코니는 지역 장인이 제작한 수제 타일과 인도네시아에서 주로 자라는 수종인 티크, 라탄 등으로 마감했다. 호텔 로비와 다이닝 바의 기둥과 천장에도 벽돌과 티크, 라탄을 적절히 활용해 공간에 통일감을 줬다. 실내를 장식한 가구와 인테리어 소품 역시 발리 공예가들의 작품을 대거 배치했는데, 수라바야 목수가 인도네시안 A급 티크로 제작한 원목 가구, 전통 패턴을 현대적으로 해석하는 부부 디자이너 듀오 톡 아궁 인디고Tjok Agung Indigo의 테이블 러너, 자연 염색과 핸드 위빙 기법으로 텍스타일을 제작하는 타룸Tarum의 러그 등이 대표적이다. 입구부터 소품 하나까지 전통적이면서 현대적인 발리의 정취를 경험할 수 있는 곳이다.


낡은 벽돌과 기와의 웅장한 변신
닝보 박물관





중국 저장성의 항구 도시 닝보寧波에는 웅장한 회색 건물이 자리하고 있다. 켜켜이 쌓인 벽돌이 만드는 독특한 선, 각기 다른 질감과 다른 형태의 여러 건물이 자아내는 오묘한 조화, 건물 곳곳에 마치 무늬처럼 새겨진 직사각형 창문이 눈길을 끈다. 2012년, 중국 최초로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건축가 왕수王澍의 대표작으로 지역의 역사를 함축한 재료를 통해 과거와 현대의 조화를 추구하는 건축가 특유의 철학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왕수에게 프리츠커상을 안겨준 심사위원단은 “왕수의 건물은 매우 독창적이다. 옛것을 환기시키지만 역사적 요소를 직접 사용하지는 않는다”고 평했다. “건축가는 재료에 담긴 의미를 중요시하고, 그것에 담긴 사람들의 기억이나 경험 같은 수많은 감정을 잘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고 언급한 왕수는 설계하는 거의 모든 건물에 현지 흙으로 제작한 수제 벽돌이나 기와를 재활용한다. 지역이 간직한 특징과 역사를 아우르는 건물을 짓는다는 의도다. 닝보 박물관은 이런 그의 건축 특징이 도드라지는 건물이다. 뻥 뚫린 중앙 정원을 에두른 여러 건물은 중국 각지의 철거 현장에서 수집한 수천 장의 기와와 낡은 벽돌, 지역에서 수집한 돌과 대나무로 완성했다. 투박하게 쌓은 벽돌 사이로 색색의 기와를 무심한 듯 배치했고, 짚과 진흙을 섞어 벽을 칠한 후 마치 줄무늬처럼 선명한 대나무 자국을 새겨 넣었다. 왕수의 건축은 철거와 재건축이 대규모로 이뤄지고 있는 중국 건축계에 자재의 순환이라는 개념을 도입하는 한편, 과거에서 현재, 미래로 이어지는 지속 가능한 발전을 실현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강철과 침엽수의 미니멀한 만남
노르웨이 야생 순록 센터 파빌리온



노르웨이 도브레피엘 국립공원의 해발 1250m 산 중턱에는 컨테이너 박스 같은 네모난 상자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다. 도브레피엘에 서식하는 야생 순록, 북극여우 등을 관찰하기 위한 전망대로,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 스웨덴 트리호텔의 ‘The 7th Room’ 등을 설계한 노르웨이 건축사무소 스뇌헤타Snøhetta의 작품이다. 유기적인 원목 구조물 겉에 강철을 두른 심플한 형태에서 북유럽 특유의 실용적인 건축미가 돋보인다. 외벽을 구성한 강철과 내부를 채운 목재는 고도에 위치한 파빌리온이 가혹한 기후에도 잘 견딜 수 있도록 노르웨이 본토의 자재만 을 사용했다. 의자로 활용 가능한 곡선 형태의 원목 구조물에는 침엽수의 나이테 무늬를 그대로 남겨 단조로움 속에 조형미를 더했다. 건물과 주변 환경의 경계를 지우는 건축을 지향하는 스뇌헤타의 철학을 엿볼 수 있다.


대나무의 화려한 변주
나만 리트리트 레스토랑 & 바





베트남을 대표하는 휴양지 다낭에 위치한 5성급 리조트 나만 리트리트Naman Retreat. 전통문화와 현대적인 인테리어가 조화를 이루는 특유의 분위기를 완성한 주역은 베트남 건축을 기반으로 전 세계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건축사무소 보 트롱 니아Vo Trong Nghia다. 2015년 초 오픈해 현대적인 친환경 리조트로 명성을 쌓은 나만 리트리트의 콘퍼런스 홀과 레스토랑& 바를 설계한 보 트롱 니아는 베트남 건축을 대표하는 대나무 자재와 초가 지붕을 활용해 리조트에 전통적인 분위기를 더했다. 덥고 습도가 높은 베트남에서 대나무는 견고하고 통풍이 용이해 건축자재로는 물론 생활 소품 재료로도 흔히 사용한다. 보 트롱 니아는 대나무를 재료로한 건축물을 자주 선보이는데, 특히 셀 수 없이 많은 대나무 살을 견고하게 엮어 돔이나 아치 등 웅장한 형태를 구현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나만 리트리트 곳곳에도 수많은 대나무를 다양하게 변주했는데, 메인 다이닝 스폿인 ‘해이 해이Hay Hay 레스토랑’에는 2개의 웅장한 돔과 트로피컬 이미지를 연상시키는 야자수 형태의 기둥 29개를 완성했고, 바 천장은 두툼한 대나무 줄기를 활용해 밀짚모자를 형상화했다. 건물 구조의 효과적인 표현을 위해 여러 종류의 각기 다른 대나무를 사용했으며, 내구성을 높이기 위해 베트남 전통 가공 방식으로 방부 처리도 거쳤다.


제주의 미학을 담은 현무암 외관
제주현대미술관



화산지형인 제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돌이 현무암이다. 현무암은 질감이나 색조가 두드러지지 않아 다른 건축자재와 섞어 사용하면 주변에 묻혀버리는 탓에 건물의 주요 재료로 사용하는 경우가 드물다. 하지만 제주 한경면에 위치한 제주현대미술관은 현무암을 전면에 내세웠다. 도드라지지 않는 현무암 특유의 중성적인 색감이 미술관 전체를 은은하게 감싼다. 제주 출신의 건축가 김석윤은 제주의 지형과 문화적 특징을 철저히 고려해 제주현대미술관을 설계했다. 매스를 잘게 분할해 미술 전시와 자연을 고루 감상할 수 있도록 공간과 동선에 연속적인 변화를 줬고, 미술관 주변에는 투박한 현무암을 쌓아 돌담을 세웠다. 외벽에는 돌이 숨쉴 수 있는 틈새를 만들어 세월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이끼와 풀이 자랄 수 있게 했다. 건물 그 자체로 제주를 대변하는 한 편의 ‘작품’이다.


흙과 짚으로 재창조한 아프리카 전통 가옥
스레드 컬처 센터





A.R.T. 뉴욕 극장, 피터 프리맨 갤러리 등을 설계한 일본계 미국 건축가 토시코 모리Toshiko Mori는 재료에 대한 남다른 철학을 강조해왔다. 저서 <Immaterial/Ultramaterial>에서 그는 “건축의 본질에 대한 예상은 변화하고 있다. 건축가는 고정관념을 바꾸기 위해 두드러진 변화를 시도해야 한다”고 언급했는데, 이런 생각은 실전에도 적용된다. 지역적이고 전통적인 재료를 현대적으로 탈바꿈해 이전에 사용된 적 없는 전혀 새로운 건축 자재를 만들어내고 활용하는 일을 지속적으로 이어가고 있다. 최근 선보인 아프리카 세네갈의 스레드 컬처 센터Thread Culture Center는 재료에 대한 토시코 모리의 아이디어를 엿볼 수 있는 결과물이다. 비영리 기관인 요제프 & 애니 알버스 재단과 세네갈 사회단체 아메리칸 프렌즈 오브 르 코사가 주도해 추진한 세네갈 지역 12개 부족의 화합을 위한 문화센터로, 신티안 지역의 오래된 건물을 전혀 새로운 형태로 탈바꿈했다. 중앙을 비운 채 뫼비우스의 띠처럼 휘어지며 곡선을 이루는 지붕이 특히 돋보이는데, 대나무를 촘촘히 엮어 골조를 만들고 지역에서 채취한 황토와 짚을 섞어 압축한 새로운 재료를 얹었다. 토리코 모리는 “세네갈 전통 가옥의 지붕을 다양하게 변주하는 수차례의 실험을 거쳐 지금의 형태를 완성했다”고 설명한다. 공간 양 끝에 배치한 침실과 작업실에서 시작된 지붕은 외부로 이어지며 독특한 형태의 옥외 통로와 마당을 이룬다. 지붕은 빗물을 모으는 데도 유용해서, 물이 부족한 건기에 특히 실용적이다. 또한 현장에서 퍼낸 흙을 압축해 제작한 벽돌로 벽을 쌓고, 깨진 타일에 색을 칠해 바닥을 꾸며 토속적이면서도 현대적인 이미지를 부각했다. 건물은 ‘2017 미국 건축 협회상’을 수상했다.

디자인하우스 [LUXURY 2017년 8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