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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파이프오르간, 현악기, 금관악기를 제작하는 4인의 장인

악기 만드는 남자들

악기만큼 견고한 공예품도 드물다. 현 한 줄, 울림통의 미묘한 각도 등에 따라 음감이 달라지기 때문. 악기는 어떻게 만들어지고 다듬어져 세상에 단 하나뿐인 소리를 갖게 될까? 제작에 대한 남다른 노하우와 섬세한 손길로 자신만의 악기를 만드는 남자들을 만났다.

전통과 현대의 절묘한 컬래버레이션
엄홍식 클래식 기타 제작자



경기도 광주의 한적한 마을에 클래식 기타 제작자 엄홍식의 공방이 자리한다. 가정집을 겸하는 주택 2층에 오르면 방마다 각종 공구와 건조 중인 나무 더미가 가득한 ‘기타 세상’이 펼쳐진다. “엄격하게 선별한 최상급 자재를 원산지 거래처에서 직수입해 오랜 시간 건조합니다. 특히 올해 제작 중인 85주년 기념 모델의 경우 15년 이상 건조한 마스터 그레이드만 사용해요. 3년간 실온에서 말린 후 30。C 이상의 온도가 유지되는 건조실에서 12년 이상의 시간을 보낸 자재들이죠. 품질 좋은 기타를 안정적으로 생산하기 위해 공방에는 1000대 이상의 자재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국내 1세대 기타 제작자인 고 엄상옥 선생의 손자이기도 한 엄홍식 마스터는 가업을 통해 전수받은 전통적인 소리와 자체 실험을 거쳐 구현한 현대적인 음색을 아우르는 기타를 추구한다. “스페인 전통악기처럼 깊고 힘 있는,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것이 85년째 이어지고 있는 ‘엄기타’의 대표적인 특징입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좀 더 연주하기 쉽고 따뜻한 음색을 지닌 악기가 트렌드죠. 기본 음색은 클래식 기타의 전통적인 소리를 추구하면서 포크 기타의 대표적인 설계 방식인 ‘X-브레이스Brace’를 적용하는 등 제작 방식에 조금씩 변화를 줘 전통과 트렌드의 절묘한 조화를 담는 것이 현재 진행 중인 작업입니다.” 가능한 한 많은 소리를 반복해 들으며 실험을 이어가고, 전문가와 연주자의 평가를 귀담아들으며 개선점을 찾는 그에게 기타는 ‘도전’이다. “색다른 설계를 적용하거나 제작 순서를 바꿔보고, 아주 작은 부품을 뗐다 붙였다 반복하며 원하는 소리를 찾습니다. 쉽지 않은 과정이지만 즐거워요.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묘한 매력의 소리를 구현해 ‘엄기타’의 새로운 역사를 써나가는 것이 목표입니다.”


한국의 정서가 깃든 파이프오르간
홍성훈 오르겔바우 마이스터



“파이프오르간 한 대를 제작하는 데 필요한 시간은 평균 1~3년입니다. 하지만 정확한 완성 시기는 누구도 예측하기 어렵지요. 수백 개에서 수천 개에 이르는 파이프와 부품들이 완벽한 하모니를 이뤄야 하거든요. 파이프오르간을 ‘신이 완성하는 악기’ 라고 부르는 이유입니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해 경기도 양평에 문을 연 기독교 문화 공간 더블유 스토리W Story에서 만난 홍성훈 마이스터는 약 1년에 걸쳐 완성한 17번째 파이프 오르간을 정성스레 안내하며 설명을 이어간다. “공간 콘셉트를 듣는 순간 ‘평화’라는 단어가 떠올랐어요. 파이프오르간의 외관은 천사의 날개를 형상화한 것입니다. 아담하고 모던한 공간에 어울리는 미니멀한 모습이지만 소리는 상당히 웅장해요. 높이 4.5m, 너비 3m 크기의 오르간 속에 파이프 370여 개를 채웠습니다.”

홍성훈 마이스터는 국내에서 유일한 파이프 오르간 제작자로 손꼽힌다. 20대 후반 세계적인 파이프오르간 제작사인 요하네스 클라이스Johannes Klais에서 기술을 습득하고, 1997년 독일 오르겔바우 마이스터 국가시험에 합격한 후 한국에 돌아와 본격적인 제작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당시 한국에서 파이프오르간은 굉장히 생소한 악기였습니다. 이토록 아름다운 악기를 한국에 알리고 싶다는 일종의 사명감이 있었던 것 같아요.” 1998년 1월 ‘홍성훈오르겔바우’ 를 설립한 그는 지난 20년 동안 단순한 제작을 넘어 의미 있는 도전과 실험을 이어왔다. 2008년 구로아트밸리에 완공한 작품은 기존 오르간의 틀을 완전히 해체한 세계 최초의 ‘오르겔 소리 조형물’로 주목받았고, 2012년 여수세계박람회의 스카이타워 외관에 설치한 작품은 ‘세계에서 가장 큰 소리를 내는 파이프오르간’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됐다.

최근 그의 가장 큰 관심사는 서양 악기인 파이프오르간에 우리 민족의 정서를 입히는 ‘한국적인 오르겔’ 제작이다. “근래에는 전통화 ‘일월오봉도’를 형상화한 가로 10m, 세로 10m 규모의 오르겔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대금・퉁소 등 전통악기와 흡사한 소리를 구현하거나, 옻칠・나전칠기 같은 전통 공예를 접목하는 방식으로 한국적인 오르겔을 꾸준히 제작하고 싶어요.”


사람을 닮은 현악기를 만들다
신동진 현악기 마에스트로



“현악기는 사람을 많이 닮았어요. 특히 바이올린은 사람의 목소리와 가장 흡사한 소리를 내지요. 굴곡을 이루는 형태 역시 인체를 형상화한 것입니다. 그만큼 편안하고 인간적인 매력이 넘치죠.” 서초동 악기 거리에서 비아체노 공방을 운영 중인 신동진 마에스트로에게 현악기는 평생을 함께한 ‘친구’ 같은 존재다. 현악기 제작자인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부터 악기 공장을 놀이터 삼아 뛰어놀았던 그는 고등학교 시절 이탈리아로 떠났고, 악기 도시 크레모나에서 현악기 복원을 공부하며 장인 정신을 몸소 익혔다. “훌륭한 악기에는 문화와 감성이 녹아 있습니다. 크레모나는 도시 전체가 음악으로 가득해요. 거리 전체가 악기 공방이죠. 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정말 큰 공부가 됐던 것 같아요. 기술도 기술이지만, 악기 제작자로서의 자세를 배울 수 있었습니다.”

현악기의 종류는 다양하지만, 제작 과정은 거의 비슷하다. 가장 먼저 콘셉트를 잡고 그에 맞는 디테일을 디자인한 후 나무를 선택한다. 1차 가공을 거쳐 형태를 다듬고, 각 부위를 접합해 기본 틀(백통)을 제작한다. 이후 세팅과 소리 체크를 반복하고 칠을 더해 악기를 완성한다. “현악기는 대개 단풍나무와 전나무로 제작하는데, 같은 나무도 부위와 생산지에 따라 전혀 다른 소리가 나요. 나무에 따라 소리가 달라지는 거죠. 그만큼 콘셉트에 맞는 울림을 내는 나무를 발견하는 것이 중요해요. 제작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 콘셉트를 정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기술적 차이도 중요하지만 제작자가 만들고 싶은 소리에 따라 나무 선택부터 디자인, 칠이 바뀌니까요. 개인적으로는 솔리스트에게 적합한 화려한 악기를 선호하는 편입니다.” 현악기 중 가장 좋아하는 종류는 비올라다. “첼로는 너무 크고, 바이올린은 다채로운 표현을 담기엔 좀 작아요. 비올라는 바이올린, 첼로의 중간 사이즈인데다 엄격하게 지켜야 할 규격이 없거든요. 자유롭고 개성이 강해 만들 때 흥미로워요.” 현악기 제작자로서 그의 바람은 오랫동안 좋은 악기를 만드는 것이다. “결국 좋은 악기는 연주자와 청취자 모두가 아름답게 느끼는 악기 아닐까요? 누구에게나 멋진 악기로 기억에 남을 만한 현악기를 만들고 싶습니다.”


연주자의 호흡과 감성을 담다
이상진 금관악기 마이스터



“세계 클래식 음악의 ‘성지’ 중 한 곳으로 꼽히는 독일 프랑크푸르트 암마인에서 금관악기 제작 회사 ‘리틴뮤직Littin Musik’을 운영하고 있는 이상진 마이스터. 장인 정신과 최첨단 기술을 겸비한 독일의 악기 제작 시스템을 기반으로 연주자의 편의를 극대화한 트럼펫과 트롬본을 선보이고 있다. “고등학교 관악 합주부와 음악 대학교, 경찰 군악대를 거치며 연주자로서 트롬본을 접했습니다. 항상 트롬본과 함께 생활하다 보니 악기의 구성과 제작 과정에 대한 호기심이 생기더군요. 한국에는 예나 지금이나 제작 학교, 자격증 과정 등 금관악기 전문가 양성을 위한 프로그램이 전무합니다. 트롬본의 제작 과정을 알기 위해서 는 해외로 눈을 돌려야 했어요. 지인의 추천으로 금관악기 제작 회사 핀케Finke와 인연을 맺게 됐고, 독일 남부 루트비히스부르크에 위치한 악기 제작 학교 오스카 발커 슐레Oscar-Walcker-Schule에 진학하면서 금관 악기 제작자로서의 길을 걷게 됐지요.”

2014년 자신의 성 ‘리Li’와 영어로 ‘얇은 철’을 의미하는 단어 ‘틴Tin’을 결합한 리틴뮤직을 회사 이름으로 내걸고 그동안의 노하우를 집약한 악기 공방을 오픈한 이상진 마이스터는 대형 악기 회사의 일률적인 제작 방식과 차별화된 ‘소규모 맞춤형’ 시스템을 지향하고 있다. 관 길이를 파격적으로 축소해 누구나 쉽게 불 수 있는 트롬본을 제작하는가 하면, 연주자의 취향과 체형, 호흡 등을 꼼꼼히 따져 최적의 소리를 내는 악기를 연구하고 생산해왔다. “금관악기는 입으로 불어 소리를 내는 악기이다 보니 연주자의 호흡에 영향을 많이 받습니다. 때문에 울림이 좋고 장시간의 연주에도 편안하게 호흡을 유지하며 연주할 수 있어야 해요. 좋은 악기를 제작하기 위해서는 연주자의 입술 모양, 팔 길이, 신체 사이즈, 호흡의 볼륨과 파워, 오케스트라 내에서 다른 악기와의 어울림 등을 세심하게 고려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악기를 제작할 때 가장 힘을 쏟는 과정은 금속을 균일한 두께로 펼치는 ‘두드림’과 ‘담금질’ 단계다. “까다롭지만 수작업의 강점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과정이어서 고유한 소리의 빛깔을 만들어낼 수 있거든요. 듣는 이를 압도하는 넘치는 에너지와 가슴을 뻥 뚫는 경쾌한 소리로 섬세한 감성을 표현하는 금관악기의 매력을 극대화하는 작업을 이어가려고 합니다.”


디자인하우스 [LUXURY 2017년 8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