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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총감독 임재용&프란시스코 사닌

함께 만들고, 함께 누리는 도시로의 여정

9월 7일부터 서울 도심 곳곳에서 ‘도시’, ‘건축’, ‘집합’이란 단어가 메아리치고 있다. 2017년 첫선을 보인 국내 최초의 도시·건축 관련 비엔날레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이하 서울비엔날레)’가 ‘집합도시Collective City’를 주제로 그 두 번째 막을 올렸기 때문이다. ‘2019 서울비엔날레’는 과연 우리에게 어떤 말을 건네고 있을까?


프란시스코 사닌 도시 형태의 역사와 이론에 대한 폭넓은 연구로 국제적 명성을 얻은 학자이자 건축가. 프린스턴 대 학교, AA 스쿨, 킹스턴 대학교,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학 생들을 가르쳤고, 현재 시라큐스 대학교 건축대학원 학장 을 맡고 있다. 2013년 세계도시포럼에서 메데인 파빌리언 의 큐레이터를 맡았으며 중국, 이탈리아, 미국 등 여러 나 라에서 건축가 겸 도시설계자로 활동 중이다.

임재용 건축사사무소 OCA의 대표 건축가다. 시대 흐름 을 새로운 시각으로 읽고 그 결과를 반영하는 새로운 건축 과 도시의 유형을 제안한다. 서울시 공공건축가로 활동하 며 건축의 공공성을 실천했고, 현재 서울문화재단 이사를 역임 중이다. 2014년 베를린에서 열린 , 2012년 <한일현대건축교류전> 등 다수의 전시를 총괄·기획했다.

남아메리카에 위치한 콜롬비아는 치안이 좋지 않기로 유명한 나라다. 특히 제2의 도시, 메데인Medellín은 마약왕 파블로 에스코바르가 활동했던 주요 무대로 그 흉흉한 악명에 외지인뿐 아니라 현지인조차 불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산비탈에 위치한 빈민가에서 총성이 일상처럼 들리던 도시, 메데인은 2004년 세계 최초로 공중 케이블카를 대중교통 시설로 설치하며 변혁을 겪기 시작했다. 빈민가와 도심 사이의 접근성이 높아지자 커뮤니티에 활기가 돌기 시작했고, 무법지대의 우범률이 자연스레 낮아졌다. 평화가 찾아오니 도심과 빈민가 간의 단절이 사라지며 메데인의 시민으로서 느끼는 유대감이 상승했다. 케이블카를 설치하기 힘든 곳에는 기다란 에스컬레이터를 놓았고, 빈민가 주변에 치안 인력을 상주시켰으며, 도서관과 공원 등 공공장소를 늘렸다. 정권 교체와 상관없이 정책의 연속성을 지키며 다방면으로 도시 혁신을 시도한 메데인은 2016년 ‘리콴유 세계도시상’을 받는 등 21세기 도시 재생의 대표 사례로 꼽히고 있다.

모든 도시가 메데인처럼 극적인 변화를 겪을 순 없겠지만 교훈을 얻을 수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인류 문명이 태동할 때부터 도시는 존재했다. 사람들이 모여 부락을 이루고, 협력과 참여를 통해 삶의 공간을 함께 만드는 집합성은 도시의 근본을 지탱하는 핵심 개념이었다. 19세기 들어 급격한 산업화를 거치며 현대적 의미의 도시가 탄생하고, 20세기 내내 발전과 팽창이 지속되면서 이제 오늘날의 도시는 자신의 뿌리인 집합성에서 멀어진 지 오래다. 도시에는 정부와 정책 입안자, 건축가와 도시 전문가, 시민 단체와 개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해 당사자가 서로 뒤틀리며 존재한다. 뒤틀림의 가속도를 겪는 수많은 도시가 메데인처럼 바뀌려 할 때 그 중심에는 누가 있어야 하는가. 그리고 도시의 집합성을 회복하려면 무엇이 필요하고, 어떤 노력과 실험을 행해야 하는가. 오는 11월 10일까지 총 65일간의 대장정에 나선 2019 서울비엔날레에서는 앞선 질문에 대한 전 세계 80여 개 도시의 고민 그리고 30여 명의 건축가 및 단체가 시도한 행동과 노력을 공유한다. 관람객은 돈의문박물관마을의 ‘도시전’과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의 ‘주제전’에서 집합도시에 대한 지식과 경험을 주고받는다. 그뿐만 아니다. 세운상가와 서울역사박물관에는 전 세계 40여 개 대학이 참여한 ‘글로벌 스튜디오’와 전통 시장을 주제로 한 ‘현장 프로젝트’가 마련됐고, 지난 3월 개관한 서울도시건축전시관에서는 시민들이 참여한 공공 공간 관련 전시와 각종 시민 대상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역동적인 서울의 심장부를 주 전시장 삼아 밀도 있게 전개하는 2019 서울비엔날레를 기획한 사람은 누구일까? 주제전을 맡은 해외 총감독 프란시스코 사닌Francisco Sanin 시라큐스 대학교 건축대학원 학장과 도시전 등 국내 프로그램을 총괄한 국내 총감독 임재용 건축사사무소 OCA 대표를 만나 올해 두 번째 싹을 틔운 서울비엔날레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전 세계 40여 개 대학교에서 참여한 ‘글로벌 스튜디오’와 전통 시장을 중심으로 집합도시를 풀어내는 ‘현장 프로젝트’의 중심 공간, 세운상가. © 신경섭


시민 참여 프로그램이 열리는 서울도시건축전시관. © 이현준 사진제공: 터미널7아키텍츠



DDP ‘주제전’ 전시장 풍경. © 김태윤
2019 서울비엔날레가 무사히 오픈한 것을 축하한다. 소감이 어떤가?
(임) 아직 마음을 놓을 수 없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임) 전시는 정보를 모아 배열하는 수준에서 머무르면 안 된다. 물론 정보를 모으기도 쉽지 않고, 분석까지 해서 어떤 그림을 제시하는 건 더욱더 어렵지만, 우리는 이번 비엔날레를 일종의 프로세스라고 생각한다.

프로세스라면?
(임) 아직 비엔날레 도록이 나오지 않았다. 보통 도록은 전시 오프닝에 맞춰 나오는데 그러면 전시장 풍경을 담을 수 없다. 그래서 위험을 무릅쓰고 폐막식에 맞춰서 도록을 내기로 했다. 전시장 풍경, 데이터 분석 결과, 참여 프로그램의 성과 등을 담고, 무엇보다 총감독과 큐레이터가 전시를 총체적으로 돌아보며 글을 다시 쓰기로 했다. 가이드북에 있는 글을 그대로 도록에 넣지 않겠다는 말이다. 대부분 전시가 열리면 곧 잊히며 소리 소문 없이 폐막한다. 2년에 한 번씩 열리는 비엔날레는 1회성 전시로 끝나면 안 된다. 이번에 축적한 정보를 차기 총감독이 데이터베이스로 이용하는 연속성을 띠며 발전해야 한다.

사뭇 비장한 태도다. 사닌 감독은 어땠나? 다른 도시 비엔날레와 비교해 2019 서울비엔날레는 어떻게 다른가?
(사닌) 내가 역질문을 해도 될까? 그 차이점이 왜 궁금한가?

서울비엔날레의 독자성은 본질적으로 행사의 존치와 직결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사닌) 지금 찌르는 요체가 아주 중요하다. 서울비엔날레는 말 그대로 비엔날레다. 비엔날레는 지식을 생산하고 교환하려는 의도에 기반을 둔다. 세계 곳곳에서 일어난 변화가 한국에 모이면 한국이 세계를 배우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세계 또한 한국에서 그 지식을 습득하고 발전한다. 지식을 교환하는 네트워크 플랫폼 역할을 맡는 것인데, 그래서 2019 서울비엔날레의 가장 큰 특징은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다. 대다수 도시 비엔날레에서는 보통 북미나 유럽 등 선진국의 예를 다루지만 우리는 적도 이남의 개발도상국 지역, 즉 남미, 아프리카, 인도, 남아시아 등까지 시선을 확장했다.비엔날레가 꼭 슈퍼스타로 가득 찰 필요는 없다. 서울비엔날레는 트렌디하고 멋진 게 각광받는 곳이 아니다. 아이디어와 결과물의 퀄리티가비엔날레를 움직이는 진정한 힘이다.

(임) 덧붙여 말하면, 서울비엔날레는 도시와 건축 모두를 중시한다. 건축에 치우치는 걸 경계하기 때문에 건축가를 작가로 초대하는 것뿐만 아니라 도시적 스케일의 문제를 말할 수 있는 실제 도시들도 초청한다. 사닌 감독이 맡은 주제전은 전자고, 내가 맡은 도시전이 후자다. 이런 두가지 방향으로 진행되는 비엔날레를 통해 모은 정보가 쌓이면 좋은 도시를 만드는 바탕이 된다. 단순한 전시가 아니라 도시 발전에 도움이 되는 실질적인 밑 재료를 모으는 현장인 셈이다.

이번 비엔날레의 주제는 ‘집합도시’다. 관람객에게 다소 낯설고 어려울 수 있는데 주제 선택에 대한 이유가 궁금하다.
(임) 쉽게 말해 도시는 사람들이 필요에 의해 모여 살게 된 곳이다. 예전에는 규모가 작았기 때문에 커뮤니티가 살아 있었지만 점점 커지면서 시스템과 인프라가 필요하게 되었다. 큰 도시를 관리하기 위해 시스템을 중시하면서 정작 그곳에 사는 사람의 존재가 옅어지는 역설적인 상황이 나타났다. 집합적인건 그냥 모여 있는 상황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번 비엔날레의 슬로건이 ‘함께 만들고 함께 누리는 도시’다. 만드는 것은 프로세스와 관련이 있다. ‘국가와 지자체, 전문가와 학계, 시민과 시민 단체 등 도시의 주요 이해 당사자가 새로운 도시를 만들어내는 유형을 찾을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는 거다. 또 다른 중요한 이슈는 불평등이다. 도시라는 공공 공간이 특수 계층에게 편중되지 않았는지 확인하고, 그들만의 도시가 아닌 모든 시민이 공평하게 누리는 도시가 되는 방식을 찾아야 한다. 시스템 중심이 아닌 인간 중심의 도시를 회복하기 위해서 시민들은 집합적인 행동을 취하고 그 결과를 차별 없이 누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사닌) 도시를 음식이라고 생각해보자. 음식은 본래 맛있고 건강해야한다. 하지만 이런 음식을 제대로 만드는 건 힘들다. 집합도시가 바로 맛있고 건강한 음식이다. 도시가 추구해야 하는 본래의 미덕이 집합도시라는 말이다. 하지만 요즘 도시는 집합성에서 많이 유리됐다. 돈 없으면 학교나 병원에 갈 수 없다. 사회 인프라와 서비스에 대한 접근이 차단된다. 역사와 기억을 지워가면서 새롭게 변모한 도시는 점점 이분화되며 시민을 차별한다. 그래서 이번 비엔날레에서는 도시의 본질을 살리고 건축으로 도시를 재정의해 다시 회복시키는 노력과 행동에 주목했다. 유명인이 모여 작품 활동을 하는 게 아니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협동하고 실천한 작업물을 공유하며 건축, 도시, 정책, 경제, 문화 등 다양한 방향으로 도시를 되살리는 논의를 하는 거다. 좋은 음식을 먹기 위해, 집합적인 도시에서 살기 위해서.

이번 비엔날레의 주요 전시인 주제전과 도시전은 어떤 특징이 있나?
(사닌) 주제전은 간단하다. 창문이 하나도 없는 회랑과 홀이 전시장이다. 회랑에서 전시가 시작되는데 곳곳에서 집합도시를 다룬 각종 영상이 재생된다. 마치 시장의 거리 느낌이 풍기길 원했다. 홀로 들어오면 광장 같은 장소가 펼쳐진다. 나는 주제전이 마치 하나의 도시처럼 읽히길 바랐다. 그래서 시장을 지나 도시 중심부인 광장에 진입하는 상상을 했다. 그런데 그 동선이란 게 말끔하지 않다. 도시의 책무는 시민 각자의 개성을 존중하는 것이다. 이번 주제전 또한 참여작가가 서로 상충되고 반목하기도 하며 얽히고설킨다. 광장 중앙에는 의자를 놓아 논의와 토론을 개진하는 물리적 여건을 마련했다. 보통의 전시라면 관람 동선을 따로 만들었겠지만 이번에는 어디서든 자유롭게 관람을 시작할 수 있도록 가능성을 열어놨다.

(임) 도시전은 말 그대로 전 세계 여러 도시를 초청해 그들이 품고 있는 고민과 문제를 공유하는 게 목적이다. 가장 큰 특징은 아까 말한 대로 ‘글로벌 사우스’를 꼽을 수 있는데, 재미있는 지점은 지역이 비슷하다고 고민까지 비슷한 건 아니라는 거다. 도시전 큐레이터를 맡은 임동우 교수가 교통, 공동주택 등 9가지 카테고리로 참여 도시들을 분석해 세계 지도를 재구성해봤는데, 도시마다 지닌 문제가 각양각색이더라.

2019 서울비엔날레는 서로 다른 장소 5곳에서 열린다. 관람에도 기획이 필요할 듯한데. 하루 완주는 불가능할 것 같고 시간이 날 때 지속적으로 관람하는 게 더 나아 보인다.
(임) 맞다. 휙 보면 5분 만에도 끝나지만 마음먹고 보면 하루 종일 걸리는 게 전시다. DDP, 돈의문박물관마을, 세운상가, 서울도시건축전시관,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어떤 전시가 열리는지 파악하고 시민 프로그램 스케줄도 확인하면서 65일 동안 비엔날레를 일상으로 들이는 전략이 필요하다. 루트가 다양한 덕분에 도시적 맥락도 함께 즐길 수 있다. 예를 들어 서울도시건축전시관에서 돈의문박물관마을까지 도보로 이동하면 덕수궁 길을 따라서 고종의 길을 지나 도착한다. 토요일에는 ‘현장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열리는 세운상가 장터를 거쳐 근처 종묘에 들러도 된다.

요즘 서울이 굉장히 트렌디한 도시로 꼽히고 있다. 서울의 도시 공간에 대한 의견이 궁금하다.
(임) 서울은 메가시티에서 메타시티로 바뀌고있다. 무조건 밀고 개발하는 게 메가시티라면 메타시티는 역사, 지형, 문화, 사람을 존중한다. 강북 끝자락에 백사마을이라고 있다. 나를 포함해 10명의 건축가가 이 마지막 남은 달동네 개발에 참여하고 있는데, 몇 년전이었으면 절반 뚝 잘라서 한쪽에는 고층 아파트 짓고 나머지는 공공 녹지로 만들었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지금은 전체의 3분의 1 정도를 주거지 보전 지역으로 정해서 기존의 터와 길을 그대로 살리려고 노력 중이다. 경제적 측면에서 보면 굉장히 손해일 수 있지만, 지금 강북 지역의 도시 재생은 이렇게 진행되고 있다. 혹시 도시전이 열리는 돈의문박물관마을이 예전에 어떤 곳이었는지 아나?

풍광을 보니 기존 마을을 보존한 것 같은데.
(임) 아파트 지으면서 공원으로 만들려다가 계획을 바꿔 원래 건물을 보존한 곳이다. 그런 면에서 DDP는 메가시티의 결과고, 돈의문박물관마을은 메타시티의 결과다. 이렇게 완전히 맥락이 다른 곳들을 양 끝 삼아 비엔날레가 열리는 상황은 건축가 입장에서 굉장히 흥미로운 지점이다.

사닌 감독은 어떤가? 다른 곳과 비교했을 때 서울은 과연 좋은 도시인가?
(사닌) 이탈로 칼비노의 <보이지 않는 도시들>을 보면 가상의 도시가 계속 나오지만 매번 다르다. 즉 모든 도시는 특별하고 고유의 역사적 특질을 갖는다. 서울만 해도 초고속 성장을 겪으면서 정말 무한할 정도로 특별해졌다. 강남, 강북, 한강, 전통 시장, 한옥, 허름한 장소, 화려한 장소까지 다 나름의 매력이 있다. 아주 풍요로운 도시다. 다른 도시와 비교하며 어디를 따라잡겠다는 생각을 하는 건 무의미하다. 도시 개발은 운명과도 같다. 스스로 개척하는 거다.

(임) 도시의 주인은 시민이고, 그들의 터전이 바로 도시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자기가 사는 도시를 다른 나라처럼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 이번 비엔날레를 통해 서울이란 도시는 내가 사는 곳이고, 발전에 동참하며 공평하게 누릴 수 있는 권리를 주장할 수 있다는 것을 느꼈으면 한다.

마지막으로 남기고 싶은 말이 있나?
(임) 베네치아에는 비엔날레 재단이 있다. 서울비엔날레가 원활히 지속되려면 재단이 꼭 필요하다. 데이터 축적도 중요하지만 비엔날레를 지속 가능한 형태로 계속 운영하는 기구가 정말 필수다. 아무리 열심히 리서치하고 분석해도 이걸 축적하고 관리하는 그릇이 없으면 모든 게 다 허사다.

(사닌) 서울의 진정한 럭셔리는 어디에 있을까? 나는 광장시장, 수산시장에 숨어 있다고 믿는다. 그곳만큼 서울에서 개성 강한 장소가 없다. 이 도시를 특별하게 만드는 존재가 그런 전통 시장이란 점을 기억해주면 좋겠다.

디자인하우스 [LUXURY 2019년 10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