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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디자이너 폴 스미스

"세상은 재미있고 정신없는 모험으로 가득한 곳"

위트 넘치는 색감과 패턴으로 세계적 명성을 이어온 영국의 패션 아이콘, 폴 스미스. 여전히 카메라를 들고 세계 곳곳을 누비며 호기심 어린 소년의 눈으로 세상을 기록하는 70대 디자이너의 마르지 않는 에너지와 영감은 어디에서 비롯된 걸까? 6월 6일부터 8월 25일까지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배움터에서 열릴 전시 <헬로, 마이 네임 이즈 폴 스미스>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


폴 스미스 글로벌 패션 브랜드 폴 스미스의 CEO이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1976년 영국 노팅엄에 3m2(약 1평) 규모의 매장을 열고 자신의 이름을 건 첫 컬렉션을 소개한 이래 ‘위트 있는 클래식’을 모토로 독창적인 의상을 전개하며 영국 패션의 아이콘이 됐다. 2000년, 패션 산업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영국 왕실로부터 기사 작위를 받았고, 현재 전 세계 73개국에 166개 매장을 운영 중이다. 특별한 경험을 제공하는 매장을 꾸미기 위해 런던 본사에서 12명의 건축가와 함께 일하고 있으며 라이카, 피나렐로, BMW 등 다양한 브랜드와 협업도 활발하게 이어가고 있다.
“영감은 여러분 주변 어디에나 있습니다. 만약 찾지 못했다면 자신의 눈을 의심해야 해요.” <헬로, 마이 네임 이즈 폴 스미스Hello, My Name is Paul Smith> 전시를 앞두고 한국을 찾은 폴 스미스는 단호하게 말했다. 직접 디자인한 체크 패턴의 네이비 컬러 슈트에 흰 셔츠를 입고 하얀 머리칼을 흩날리며 기자 간담회 무대에 오른 그는 특유의 유머러스한 입담과 유쾌한 에너지로 이번 전시를 세심하게 소개했다. “아주 쉽고 친절한 전시예요. 주로 회고전 형식으로 이뤄지는 대부분의 패션 전시와 달리 내가 어디에서 영감을 얻는지, 어떤 방식으로 작업하는지 보여주는 자리가 될 겁니다.”

폴 스미스는 ‘가장 영국적인 디자이너’로 잘 알려진 패션계의 거장. 깔끔하고 클래식한 핏, 정교한 디테일을 고수하면서도 안감에 화려한 컬러를 입히거나 소매를 들추면 드러나는 의외의 패턴으로 ‘위트 있는 클래식classic with a twist’의 대명사가 됐다.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 가수 폴 매카트니 등이 ‘팬’을 자처해온 그의 디자인은 전형적인 듯하지만 반전이 있고, 장난기 넘치면서도 품위를 잃지 않는다. DDP 개관 5주년에 맞춰 마련된 이번 전시는 2013년 런던 디자인 뮤지엄을 시작으로 10개 국가를 순회한 전시의 한국 버전. 의상은 물론 직접 작업한 사진과 페인팅, 각종 오브제, 수십 년간 수집한 명화, 팬들의 선물 등 1500여 점의 작품을 소개한다. 첫 매장인 3m2(약 1평) 규모의 노팅엄 바이어드 레인 1호점과 폴이 전 세계를 여행하며 모은 책·자전거·기념품 등으로 가득한 스튜디오, 수많은 이미지가 부유하는 폴의 머릿속을 재현한 미디어 공간 등도 선보일 예정. 수십 년간 1년 중 절반 이상을 해외의 낯선 도시에서 보내왔으면서도 여전히 “세상은 재미있고 정신없는 모험으로 가득한 곳”이라고 말하며 언제 어디서든 카메라와 수첩을 꺼내 들고 영감을 기록하는 패션계 거장의 다양한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

전시 준비를 위해 한국을 찾은 폴 스미스를 DDP에서 만났다. 호탕한 인사와 함께 악수를 나눈 그는 자세를 설명하는 포토그래퍼에게 “걱정 마요, 나 프로니까”라며 순식간에 표정을 바꾸더니 다채로운 포즈를 취한다. 인터뷰 장소로 이동 중에는 스태프들과 자하 하디드가 설계한 건물 디테일을 토론하느라 여념이 없다. 공식 일정만으로도 빠듯한 시간을 쪼개고 쪼개 근래 서울 소식을 접하며 가장 흥미로웠다는 익선동과 성수동에 직접 들르고, 한국의 젊은 패션 디자이너들과 대화하는 자리를 마련한 그는 마르지 않는 열정이자 유쾌한 에너지 그 자체였다.


자하 하디드가 설계한 DDP에서 서울 전시를 열자고 먼저 제안했다고 들었어요. 실제로 건물을 살펴보니 어떤가요?
정말 거대하네요. 매끄러운 곡선, 부드러운 라인들이 인상 깊어요. 자하 하디드 건물은 영국에서도 많이 봤는데 DDP에도 그녀의 건축적 특징이 잘 담겨 있는 듯합니다. 건축가로서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할 즈음 설계도를 보고 굉장히 독특하다고 생각했던 기억이 있어요. 많은 건축가들이 직선, 수직을 주로 활용하는데 유려하고 다양한 선을 자유분방하게 그린 걸 보고 흥미로웠죠. 서울에서 만나니 색다른 반가움이 있네요.

DDP는 빠르게 변화하는 서울의 모습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이기도 해요. 오랜만에 서울에 들렀는데 가보고 싶거나 궁금한 곳이 있나요?
지금까지 서울을 열 번 정도 방문한 것 같아요. 종종 들르다 보니 달라지는 모습들이 눈에 보이는데, 특히 한강을 중심으로 북쪽과 남쪽의 각기 다른 변화가 재미있어요. 요새는 특히 강북에서 전통미가 살아 있는 한옥 등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사례가 많더군요. 익선동, 시청 인근, 성수동 일대에 관심이 있어요.

2010년 대림미술관에서 열린 <인사이드 폴 스미스> 이후 9년 만의 한국 전시예요. 전시 제목이 <헬로, 마이 네임 이즈 폴 스미스>인데, 당신을 새롭게 알리려는 의미인가요?
내 이름을 아직 모르는 분이 많을 수도 있잖아요. 사람은 조금만 성공하면 자기 중심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요. 특히 패션 업계는 자아가 강한 사람들이 무척 많은데, 때론 겸손하게 자신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나를 잘 모르던 분도 이 전시를 통해 디자인 세계의 즐거움을 경험하길 바라요.


처음 참가한 파리 패션위크에서 낮에는 컬렉션 쇼룸으로, 밤에는 숙소로 활용한 호텔방을 전시에 재현한 모습. © Paul Smith Ltd


BMW 미니와 폴 스미스의 컬래버레이션.


트라이엄프 모터사이클과 협업해 제작한 바이크 룩과 컬러풀한 바이크. © Paul Smith Ltd


폴 스미스의 머릿속을 거니는 것 같은 미디어 공간을 구성한 ‘Inside Paul’s Head’ 섹션 전경. © Paul Smith Ltd


2018년 베이징 투데이 아트 뮤지엄에서 열린 <헬로, 마이 네임 이즈 폴 스미스> 전시 전경. © Chuanbao
일반 패션 전시와 달리 볼거리가 다채로운 점이 이번 전시의 특징인 것 같아요. 1평 크기의 첫 번째 매장부터 파리 패션위크 때 컬렉션을 선보인 작은 호텔방, 온갖 잡동사니가 쌓여 있는 스튜디오도 재현한다고요.
많은 디자이너가 자신이 어떻게 작업하는지, 영감을 어디에서 얻는지 낱낱이 알리고 싶어 하지 않아요. 그런 점에서 이번 전시는 정말 솔직한 자리입니다. 저에게 의미 있는 공간을 재현해 초보 디자이너 시절 어떤 방식으로 도전하고 역경을 헤쳐갔는지, 폴 스미스를 상징하는 아이코닉한 스트라이프 패턴과 화려한 컬러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를 모두 공개할 예정입니다. 공간에 놓인 작은 소품 하나까지 디자인 프로세스, 영감에 관련된 것들이에요. 나의 관점에서 보고, 느끼고, 실행한 모든 과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죠.

오래전부터 카메라로 일상을 포착해왔어요. 이번 전시에서도 그 기록 들을 볼 수 있나요?
물론입니다. 아마추어 사진가였던 아버지가 열한살 때 첫 카메라를 사준 후 매일 사진 찍는 게 습관이 됐어요. 인상적인 장면과 순간을 기록하는데, 디자인에 훌륭한 소스가 됩니다. 카메라 뷰 파인더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던 습관이 주변을 관찰하고 사람을 대하는 방식에도 많은 영향을 끼친 것 같아요. 이번 전시에서 가장 아끼는 카메라인 1958년도 롤리플렉스 기종도 선보일 예정이에요. 아버지가 좋아하고 즐겨 썼던 브랜드죠.

전시를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궁금해요.
젊은 디자이너 지망생들이 많이 와서 보고 꿈을 키울 수 있었으면 해요. 디자이너가 되려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지, 어떤 식으로 디자인을 대하면 좋은지 영감을 주는 전시이기 때문입니다. 나 역시 시작은 아주 미미했지만 천천히, 아주 조금씩 브랜드를 성장시키며 지금에 이를 수 있었어요. 거대한 자본이 아니라 손으로 직접 하나하나 이뤄내며 노력한 모습을 통해 용기를 얻길 바랍니다.

폴 스미스 브랜드의 정체성인 ‘위트 있는 클래식’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소개해줄 수 있나요?
‘위트 있는 클래식’은 디자인뿐 아니라 삶 전체에 대한 철학과 태도를 말해요. 사람으로 예를 들면 매너가 있으면서 유머 감각까지 겸비한 셈이죠. 이것을 디자인에 접목하면 슈트 안감이나 셔츠 소매 안쪽에 색다른 컬러와 패턴을 숨기고 열었을 때 예상치 못한 놀라움을 주는 스타일이 되는 거고요.

디자인 면에서 컬러를 굉장히 다채롭게 잘 활용하는데요. 당신에게 ‘색’이란 무엇인가요?
행복이죠. 다채로운 색은 사람을 긍정적이게 하고, 즐거움을 줍니다. 패션에 접목할 땐 겉으로 보이는 면뿐 아니라 속에 숨기는 방식으로 의외의 재미를 더합니다. 프린트된 패턴도 그런 맥락으로 패션계에서 제일 처음 시도했고, 여전히 즐겨 사용 중이에요.

기자 간담회에서 마지막으로 언급한 ‘폴 스미스 이즈 폴 스미스’라는 말이 인상 깊었어요. 남의 시선에 따라 많은 것이 좌우되고 규정받는 시대잖아요. 폴 스미스가 오로지 폴 스미스로 존재할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인가요?
내가 원하는 것과 잘할 수 있는 것을 파악한 뒤 긍정적인 마인드로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이어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디자이너로서 첫 매장을 열었을 때, 매출만으로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워 금·토·일요일만 문을 열었죠.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는 닥치는 대로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하지만 그 시간이 힘들기보단 오히려 고마웠습니다. 디자이너로서 시야를 넓히고 다양한 안목을 키우는 데 많은 도움이 됐거든요. 주어진 상황에 갇혀 돈만 좇았다면 팔릴 만한 옷밖에 만들지 못했을 것이고, 디자이너로서 철학만 고집했다면 매장을 계속 이어갈 수 없었겠죠. 이런 경험들이 내가 오로지 나로서 존재할 수 있게 해준 것 같아요. 지금은 디자이너이면서 CEO이기도 해서, 스스로 모든 걸 결정지을 수 있으니 원하는 것을 마음껏 펼치기 더 좋아졌지요.(웃음)

모든 것이 빠르게 변하는 패션계에서 누구나 인정하는 성공을 거뒀지만 화려함을 추구하는 디자이너들과는 조금 다른 길을 걸어온 듯해요. 언제나 아내인 폴린이 영감의 원천이라 말하고, 모든 공을 그녀에게 돌리는 것만 봐도요.
아직까지 약물 치료를 받은 적이 없고, 제트기를 타고 다니지도 않으며, 평생 영감이 된 한 여자와 40년째 살고 있어요.(웃음) 남들이 보기에 화려한 삶보다 더 중요한 건, 하고 싶은 일을 자유롭게 하고 우리의 타깃 고객인 ‘베리 나이스 피플Very Nice People’들과 마음을 나누며 가치를 인정받는 거죠.

이제 막 시작하는 젊은 디자이너들이 반드시 기억했으면 하는 것이 있나요?
수직적으로 경직된 사고를 버리고 좀 더 자유롭고 다양하게, 수평적으로 사고하는 법을 익혔으면 좋겠어요. 단순히 디자인을 이해하는 것을 넘어 패션 업계 전반을 이해하고 빠져드는 것이 중요해요. 타깃이 누구이며, 어디서 판매를 하는지 종합적으로 파악해 시장성과 이미지의 밸런스를 잘 맞추길 바랍니다.

디자인하우스 [LUXURY 2019년 6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