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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터피스를 추구하는 6인의 필름메이커

감각적인 영상의 조건

스마트폰과 유튜브가 등장한 이후 영상 콘텐츠가 쏟아지기 시작했지만, 정작 끝까지 볼 수 있는 웰메이드 영상은 오히려 찾기 힘들어졌다. 지금 시대에 자신만의 스타일과 화법으로 인정받은 비디오그래퍼는 어떤 사람들일까? 마스터피스를 추구하는 6인의 영상 감독을 만났다.

완성도를 높이는 그래픽 디자인


송은희는 ‘픽셀제로’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며 뮤직비디오, CF, 바이럴 등 다양한 영상을 만들고 있다. 영상 스튜디오 디지페디에서 일하며 국내외 뮤지션들의 뮤직비디오 제작에 참여했다. 연출, 편집, 컬러그레이딩, 모션그래픽 등 영상 제작 업무뿐 아니라 촬영과 포스트 작업까지 맡아 일관성 있고 완성도 높은 작업을 선보인다.


헤이즈가 출연한 코오롱스포츠의 CF ‘Seahorse Sea Love’
송은희 감독의 작품은 꽤 눈에 익는다. 화려한 모션 그래픽과 3D 그래픽이 어우러진 방송국 ‘엠넷’의 시그널 영상이 그의 작품이다. 송은희는 자신만의 색깔이 드러나는 작품을 만들기 위해 영상 스튜디오 ‘디지페디’에서 조감독으로 일했다. 이후 2017년부터 ‘픽셀제로’라는 이름으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몇몇은 그래픽 디자인이 제 스타일이라고 말할 때도 있지만 그보다 감독으로서 색깔을 드러내고 싶은 부분은 스토리텔링이에요. 슬픈 장면을 연출하기 위해 주인공이 울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처럼 직접적인 묘사는 선호하지 않아요. 대신 오브제를 클로즈업하거나 어떤 상황을 연출하곤 하죠. 박살 난 휴대폰을 강조하거나, 하얀 커튼 뒤에 쭈그려 앉은 인물에게서 슬픔을 느껴요. 좀 더 현실적인 접근이라고 해야 할까요?” 영상 콘텐츠 제작자로서 송은희는 대중의 목소리에도 귀 기울인다. “특히 아이돌 뮤지션의 뮤직비디오를 제작하면 그에 대한 피드백과 영상을 해석하는 글이 쏟아져 나와요. 팬들은 매 프레임의 미장센, 조명, 구도, 색감 등을 다각적으로 면밀히 해석하죠. 때로는 제가 무의식적으로 삽입한 장면을 해석해내 놀란 적도 많아요. 휘둘리지 않고 그들을 만족시키는 것이 감독에겐 큰 미션 중 하나예요. 메시지도 분명해야 하죠.”


클래식을 존중한 작품


뮤직비디오 광고 필름 프로덕션 VM 프로젝트의 대표이자 디렉터. 2011년 프레드페리와 함께 인디 뮤지션의 뮤직비디오를 제작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활동 영역을 넓혔다. 아이유의 ‘삐삐’, 아이콘의 ‘사랑을 했다’, 블랙핑크 ‘휘파람’ 등 아이돌 뮤지션의 뮤직비디오를 제작한다.


아이유의 ‘삐삐’ 뮤직비디오
조범진은 ‘VM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지난 10년간 영상 작업을 선보였다. 뮤직비디오 감독으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건 4년 남짓이다. “VM의 초창기 뜻은 벨로 무브먼트Velo Movement의 약자였어요. 스케이트보드, 그라피티, BMX 등 서브 컬처를 소개하는 영상을 만들었죠. 스포츠 브랜드와 함께 영상을 제작했고, 3년 전부터는 본격적으로 뮤직비디오를 전문으로 하는 프로덕션으로 거듭났고, 지금은 바이탈모먼트Vital Moment라고 새로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조범진은 뮤직비디오 감독을 하기 전까지 디자이너로 활동했다. 그래픽 디자인뿐만 아니라 포토그래퍼, 머천다이징 등 시각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모든 일을 해왔다. “눈에 보이는 것을 만드는 일은 어느 정도 공통점이 있다고 생각해요. 다만 영상을 본업으로 삼은 건 이 분야에서의 최종 목표가 영화감독이기 때문이에요. 조너선 글래이저, 스파이크 존즈 같은 뮤직비디오 출신 감독들을 좋아해요. 작품도 멋지지만, 그들의 커리어를 쌓아 나가는 과정 또한 훌륭하다고 생각해요. 심지어 스파이크 존즈는 뮤직비디오 감독을 하기 전에 스케이트보드 영상도 찍었죠.” 영상 콘텐츠를 접하기 쉬워진 만큼 전문성이 결여된 채 기기와 편집 프로그램에 의존한 영상이 쏟아져 나왔고, 걸작을 찾기란 더욱 쉽지 않아졌다. “영상은 기록이라는 범주 안에 있어요. 테이프, 데이터 등 어떤 방식으로든 남죠. 이 분야에서 활동하는 사람이라면 지금보다 좀 더 신중하게 영상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노출, 심도, 조명처럼 기본적인 것을 무시한 채 최신 기기와 편집 기술에 의존하는 건 좋은 방법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기술이 등장하기 전 최소한의 테크닉으로 완성한 영상 작품이 있고, 여전히 명작으로 꼽히고 있어요. 사람들이 클래식이라고 부르는 것들을 이해하고 진중하게 영상에 접근했으면 해요.” 조범진은 그래픽 효과에 의지하는 것을 지양한다. 실제로 찍은 영상이 만들어낸 영상보다 전달할 수 있는 감정이 깊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촬영을 완성도 높게 했다면 편집 과정에서는 ‘컷 & 페이스트’로 충분해요. 반드시 그래픽 작업이 필요한 장면에서는 촬영한 영상과 그래픽 영상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질감을 바로잡는 정도만 하죠.”


필름메이커가 중심에 있는 콘텐츠


어거스트 프록스는 영상, 화보, 편집 디자인, 음악 등 다방면에서 디자인을 선보이는 창작 그룹이다. 어거스트 프록스의 대표이자 영상을 맡은 김세희는 지코, 크러쉬, 도끼 등 힙합 뮤지션의 뮤직비디오를 주로 연출했고, 최근에는 구구단 ‘Not That Type’, 샤이니 ‘셀 수 없는’ 등 아이돌 뮤지션의 뮤직비디오 작업을 진행했다.


힙합 뮤지션 돕덕의 ‘코노르’ 뮤직비디오
어거스트 프록스가 처음 결성되었을 당시에는 뮤지션, 화가, 필름메이커, 스타일리스트 등이 모인 창작자의 아지트에 가까웠다. 김세희 역시 감독이기 전에 힙합 뮤지션으로 활동했고, 적은 예산으로 뮤직비디오를 제작하기 위해 직접 카메라를 잡았고 당시 호기로운 시도가 현재 어거스트 프록스가 영상 제작 프로덕션으로 자리 잡은 주춧돌이 됐다. “지난 2년간 어거스트 프록스는 영상 제작 프로덕션으로 인정받기 위해 아이돌 뮤직비디오, CF, 바이럴 영상 등 다양한 작업을 했어요. 마음 맞는 동료들과 나만의 색깔을 드러내며 작업할 때 가장 즐겁지만, 비상업적인 작업만 하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지는 않았어요.” 2019년부터 김세희는 처음 어거스트 프록스가 태동할 당시의 마음가짐으로 돌아가 젊은 아티스트를 지원하고, 자본을 출자해 직접 영상을 제작할 계획이다. “지금까지 뮤직비디오는 음악 홍보를 위한 수단 중 하나에 가까웠어요. 저는 필름메이커가 전면에 있는 콘텐츠를 만들어보고 싶어요. 젊은 아티스트와 협업해 영상에 어울리는 음악을 고르고, 음악에 맞춰 의상까지 스타일링해 필름메이커의 색깔이 강하게 드러난 작품을 선보일 예정입니다.” 누구나 영상 제작자가 될 수 있는 시기에 아마추어와 프로를 나누는 기준은 작품에 대한 고민과 완성도다. “저 역시 아마추어로 시작했기 때문에 누구나 이 분야에 뛰어들 수 있다고 말해요. 다만 실력이 뛰어난 아마추어 사이에서 스스로 프로라고 말할 수 있는 근거가 필요하죠. 좋은 영상과 작품에 대해 누가 더 오래 고민하고, 작품에 드러나도록 하느냐에 달렸다고 생각해요. 고민을 거듭한 영상은 보는 이의 감정을 건드리고, 짧은 영상이라도 반복해서 보도록 유도하죠.”


공간에 담긴 이야기


다리 감독은 2001년 영화 연출부 막내로 시작했다. 짧은 호흡에 비교적 자유롭게 만들 수 있는 뮤직비디오에 호기심이 생겼다. 인피니트 F의 ‘가슴이 뛴다’, 허각의 ‘사월의 눈’, 멜로디데이의 ‘겁나’ 등을 연출했다.


뷰티 브랜드 미샤의 2018 FW 브랜드 필름
‘다리’라는 이름으로 활동 중인 조소영 감독은 2018년 11월 연세대학교에서 열린 강연회 ‘테드TED’에 참여해 영상 속 공간에 대해 강연했다. “공간은 인물의 성격을 반영해요. 주인공의 캐릭터를 구축한 다음, 그가 살고 있는 방을 상상하죠. 또 주인공이 처한 상황을 설정하고 그가 걷게 될 길거리를 떠올려요. 저에게 공간은 곧 스토리예요.” 그의 영상 작품은 서정적이다. 허각의 ‘사월의 눈’, 김세정의 ‘꽃길’ 등 발라드 음악의 뮤직비디오에 감독의 감성이 잘 녹아 있다. “최근에 작업한 코스메틱 브랜드 ‘미샤’의 2018 F/W 브랜드 필름은 개 인적으로도 만족스러운 작품이에요. 바이올리니스트가 무대를 앞두고 화장하는 장면부터 시작해요. 마지막에는 건물 옥상에서 혼자 연주를 하며 영상이 끝나죠. 화장하는 행위 자체가 누군가에게 예뻐 보이기보단, 나 자신을 표현하고 오롯이 나를 위해 메이크업을 한다는 메시지를 주고 싶었어요. 스토리와 공간, 그래픽 디자인까지 잘 맞아떨어진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다리 감독의 과거 작품부터 최근작까지 모아보면 그만의 서정적인 분위기와 따뜻한 색감이 느껴진다. “영상 분야의 트렌드는 뚜렷해요. 패션만큼 자주 바뀌고 민감하죠. 앵글과 톤은 물론이고, 시즌마다 영상에 삽입하는 포트 스타일도 달라요. 상업적인 작업을 하는 사람으로서 트렌드를 무시할 수는 없지만, 너무 의존하는 것은 경계해야죠. 트렌드라고 의식할 때는 이미 늦었으니까요. 지금 가장 많이 팔리는 옷은 롱 패딩이에요. 길거리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지만, 롱패딩을 트렌드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잖아요.” 다리 감독은 늘 새로운 프로젝트에 목말라 있다. 뮤직비디오나 CF 이외에도 영상 매체를 통해 대중에게 작품을 선보일 수 있는 다양한 방식을 찾는다. “올해는 지금까지 만든 작품을 모아 전시를 해보고 싶어요. 2014년에도 킬드런 작가와 함께 협업 전시를 할 기회가 있었어요. 작가의 작품에서 영감을 얻었고, 영상으로 표현해보고 싶어서 먼저 연락했죠. 다행히 킬드런 작가가 함께 해외 전시에 나가자고 해 작곡가, 프로듀서, 모델 지인과 모여서 바로 작업을 시작했어요. 저에게 영향을 주는 아티스트가 있다면 장르에 얽매이지않고 함께 하고 싶어요.”


색깔을 고수하는 방법


다니엘 전은 영국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며, 포토그래퍼, 모션그래픽 아티스트로 활동했다. 한국에서 필름메이커로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고 헤드, 제너럴 아이디어, T.I 포맨, 크리스 크리스티, 이상봉의 패션 필름을 제작했다. 패션 매체와 함께 지속해서 영상을 선보이고 있다.


디자이너 권문수의 2017 FW 패션 필름
패션 필름은 트렌드와 영상미를 효과적으로 전달해야 한다. 다소 추상적이고 모호하다는 평가를 듣기도 하지만 점점 대중에게도 패션 필름의 인지도가 높아지고 있다. 다니엘 전은 한국의 패션 필름 분야를 개척한 감독 중 한 명이다. 영국에서 영상을 전공하며, 방학 기간 동안 한국에서 포토그래퍼로 활동하곤 했다. “당시 영국에서 패션 필름 붐이 일기 시작해 자연스럽게 이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되었어요. 물론 포토그래퍼로 활동하며 패션에도 관심이 많았고요. 사진보다 저를 더 잘 표현할 수 있는 방법으로 패션 필름을 택했습니다. 한국에 돌아온 후에는 제너럴 아이디어의 최범석 디자이너와 함께 브랜드 패션 필름을 제작하면서 본격으로 활동하기 시작했어요.” 다니엘 전은 영상이란 말보다 UCC라는 단어가 더 익숙할 때부터 활동했고 지난 10년간 끊임없이 트렌드를 좇고 있다. “영상 분야의 트렌드가 자주 바뀌는 편이지만, 그중에서도 패션 필름은 더욱 영향을 많이 받는 편이에요. 최근에는 글리치 효과, 레트로 분위기의 영상이 자주 눈에 띄어요. 이 트렌드 사이에서 나만의 색깔을 유지하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고 있죠. 예를 들면 얼마 전부터 직접 색보정을 하고 있어요. 색보정 전문 스튜디오가 있지만 나만의 분위기나 색깔을 만들고 싶어서 직접 하기 시작했어요. 요리사가 자신만의 레시피를 갖고 싶어 하는 것과 비슷한 것 같아요. 아직은 서툴지만 촬영을 하며 머릿속에 상상했던 분위기를 더 잘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다니엘 전만의 색깔을 만들어내는 또 하나의 방식은 아카이브다. 그는 모든 것을 수집하고 정리하는 습관이 있어 평소 모아둔 아카이브에서 작업에 대한 모티프를 얻는다. “일상생활에서 벌어지는 모든 것들을 수집하고 저장해요. 음식이나 여행 중에 풍경을 찍어 보관하는 것은 물론 술자리에서 나눴던 대화도 적어두죠. 지금은 몸에 밴 일이라 수고스럽지 않아요. 아카이브가 저의 재산이라는 생각으로 열심히 기록했던 시기도 있었어요. 시간이 지나 기록물을 살펴보면 그 당시보다 더 좋은 생각이 떠오를 때가 많거든요. 지금은 스마트폰이나 영상 기기같은 것들이 있어 요즘에는 수집하는 일이 더 쉬워졌어요.”


트렌드에 부합하는 영상


이봉주 감독은 패션 화보, 광고, 뮤직비디오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는 비디오그래퍼다. 현재 패션 화보 잡지 <태그매거진>과 비주얼메이킹 크루 ‘아트그라피’의 영상 파트 실장으로 활동 중이며 <내셔널지오그래픽> ‘폭스티비 무브유어바디 시리즈’, 여행 매거진 <트레비> 등의 영상을 제작하고 있다.


트레비의 커머셜 바이럴 영상
유튜브에서 가장 익숙하게 볼 수 있는 영상은 일상생활을 촬영하는 ‘브이로그V-log’다. 좋은 장비나 편집 기술이 없어도 스마트폰만으로 콘텐츠를 만들어낼 수 있다. 사람들은 유튜브를 통해 영상으로 소통한다. 이봉주 역시 아마추어로 일상을 스케치하는 영상을 촬영하기 시작했고, 그의 감각적인 영상을 본 브랜드들이 협업을 제안하며 본격적인 필름메이커 활동을 시작했다. “좋은 조명과 카메라로 전문 모델을 촬영하면 누구나 수준급 영상을 만들 수 있어요. 처음 영상을 시작했을 때도 모델을 찍고 싶은 마음에 무작정 포토그래퍼를 찾아갔고 화보 촬영 현장의 스케치 영상을 많이 찍었어요. 조명과 모델이 있는 곳을 찾은 거죠. 좋은 영상을 찍으려면 좋은 오브제가 있는 곳으로 가야 하니까요.” 이봉주 감독은 SNS에 업로드하기 적합한 1분 내외의 영상을 주로 촬영한다. 수많은 게시물 사이에서도 돋보여야 하는 영상이기에 슬로모션을 비롯한 화려한 영상 효과에 공을 들인다. 하지만 잘 찍은 영상은 어떤 보정으로도 앞서기 힘들다. “1분 영상을 찍기 위해 10시간 정도 촬영해요. 편집 기술이 좋아졌지만 촬영이 부실하면 좋은 영상을 기대할 수 없어요.” 이봉주 감독은 SNS 시스템에 적합한 최적의 영상을 제작한다. “지금 영상 분야는 모든 게 빨라요. 속도감 있는 영상을 추구할 뿐만 아니라 빨리 찍고, 빨리 업로드하는 것을 선호하죠. 스토리텔링이 확실한 영상보단 즉흥적이고, 자연스러운 모습을 원해요. 다행히 이런 스타일이 저에게 잘 맞아요. 다만 좋은 영상을 얻으려는 노력을 편집과 장비에만 기울이지 않았으면 해요. 많은 사람을 만나고 좋은 곳을 찾아다닐 때 완성도 높은 영상을 찍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디자인하우스 [LUXURY 2019년 3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