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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초크&드 뫼롱

"형태는 단순하게, 재료는 단일하게, 작업은 정교하게"

2021년 6월, 강남 도산대로에 새로운 랜드마크가 들어선다. 계획 단계부터 화제를 모은 삼탄 & 송은문화재단 신사옥이 그 주인공. 세계적인 건축가 듀오 헤르초크 & 드 뫼롱이 국내 첫 프로젝트를 맡아 콘크리트 파사드와 미니멀한 창을 갖춘 피라미드 형태의 특별한 문화 허브를 공개했다.


헤르초크 & 드 뫼롱 자크 헤르초크와 피에르 드 뫼롱이 이끄는 건축설계사무소. 두 사람은 1950년생 동갑내기로 한동네에서 자라며 일곱 살 때부터 친구로 지냈고, 나란히 스위스 연방공과대학을 졸업한 후 1978년 HdM을 오픈해 40여 년간 둘도 없는 파트너로 지내왔다. 영국 런던 테이트 모던(2000), 중국 베이징 올림픽 주경기장(2008) 등 도시의 랜드마크가 된 건물을 설계했고, 2001년에는 ‘건축계의 노벨상’ 프리츠커상을 수상했다. 매년 전 세계에서 200건 이상의 프로젝트를 의뢰받는 동시대 최고의 건축사무소로, 현재 런던 대표 축구팀 첼시FC의 새 구장인 스탬퍼드 구장, 이스라엘 국립도서관 등의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www.herzogdemeuron.com
“서울 도산대로의 다양한 건축물을 면밀히 살폈지만 영감을 받을 수 있는 건물은 없었습니다.” 10월 24일 삼탄 & 송은문화재단 신사옥 기공식을 마치고 새로운 건물을 소개하는 기자 간담회에 참석한 헤르초크 & 드 뫼롱Herzog & de Meuron(이하 HdM)은 직언을 던졌다. HdM은 스위스 바젤 출신의 건축 듀오 자크 헤르초크Jacques Herzog와 피에르 드 뫼롱Pierre de Meuron이 이끄는 건축설계사무소. 외형과 스타일, 트렌드에 휩쓸리지 않고 건축의 본질에 집중하는 일관된 태도로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주변 지형과 문화적 배경을 고려해 주어진 조건 내에서 퀄리티와 디테일을 극대화하는 이들의 건물은 특정 이미지나 한 가지 건축양식으로 정의할 수 없지만, 저마다 장소와 용도에 최적화된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급진적 디자인의 아이콘인 렘 콜하스, 창의적이고 정교한 건축을 추구하는 프랭크 게리, 자연주의 건축의 대가 안도 다다오 등과는 전혀 다른 행보로 세계 건축계의 ‘한 축’을 담당해왔다. 지역의 돌을 굵게 부순 돌망태를 외벽으로 세워 공간 내부에 다채로운 빛이 스며들게 한 미국 나파밸리의 도미누스 와인저장고(1998), 기존 화력발전소의 외형적 매력을 살리면서 전시 공간에 필요한 기능적 요소를 더해 세계적인 미술관을 탄생시킨 런던 테이트 모던(2001) 등이 대표적인 예. 거대한 구조물로만 여겨졌던 경기장의 미학적 측면을 끌어올린 베이징 올림픽 주경기장(2008), 주변의 지형을 형상화한 독특한 형태로 함부르크의 새로운 랜드마크가 된 엘프필하모니 홀(2018) 역시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프로젝트다. 하버드 대학교 디자인대학원장을 역임한 스페인 건축가 라파엘 모네오Rafael Moneo는 “건축물의 근본을 탐구하는 기능주의적 순수주의”라는 말로 HdM의 특징을 설명했고, 2001년 프리츠커상을 시상한 심사위원 카터 브라운Carter Brown은 “HdM처럼 건축 외피를 위대한 상상력과 기교로 연주한 건축가는 역사상 찾아보기 힘들다”고 극찬했다. 2021년 6월 완공을 앞둔 삼탄 & 송은문화재단 신사옥은 HdM이 설계한 국내 최초의 건물이 될 예정. 송은 아트큐브, 송은 아트스페이스, 송은 수장고 등을 운영하며 국내외 신진 작가들의 활동을 지원해온 송은문화재단의 다양한 전시 공간과 삼탄 본사가 이곳에 들어선다. HdM은 ‘서울 도심 한가운데에 자리한 새로운 문화 허브 공간’을 콘셉트로 정체성을 알 수 없는 도산대로 주변 건물과 확연히 차별화된 랜드마크를 선보인다는 포부다. 대로변을 마주한 전면과 골목으로 향한 후면의 높이를 달리해 측면을 삼각 형태로 구현하고, 외벽 전체에는 소나무 결을 살린 콘크리트를 뒤덮으며, 창은 최소화해 독창적인 파사드를 연출할 예정이다. HdM의 이름을 건 한국 첫 번째 건물의 착공을 기념하고, 자신들의 건축 철학과 신념이 고스란히 담긴 이번 프로젝트를 소개하기 위해 서울에 온 자크 헤르초크와 피에르드 뫼롱을 만났다. 에두르지 않는 단호한 어투와 핵심을 찌르는 직접적인 표현으로 수십 년간 쌓아온 ‘건축 내공’을 이야기하는 두 사람의 모습은 이들이 설계한 건물과 닮아 있었다.


삼탄 & 송은문화재단의 신사옥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헤르초크) 사기업이 주도하는 프로젝트지만 서울 도심에 문화 허브를 만드는 작업이라는 점에서 마음이 끌렸다. 서울에는 바쁘게 돌아가는 상업 지구가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특히 강남의 도산대로는 규모가 크고 굉장히 상업적인 곳인데, 여기에 비상업적인 예술 공간을 조성한다는 점이 의미 있다고 생각했다. 단순히 한 회사의 사옥을 짓는 게 아니라 서울에 문화적인 영감을 불어넣을 새로운 랜드마크를 설계하는 프로젝트라고 판단했다.

주변 환경을 면밀히 검토해 주위와 어우러지는 다양한 방식을 건물에 구현하는 설계로 유명하다. 도산대로에서는 영감이 되는 건물을 찾지 못했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설계 시 이 지역의 어떤 면을 집중적으로 고려했나?
(헤르초크) 모든 프로젝트에 착수하기 전 설계의 방향을 정하기 위해 용지의 주변 요소를 꼼꼼히 분석한다. 이번 역시 가로등부터 건물 크기, 도로 디자인 등 도산대로의 다양한 건축적 요소를 검토했는데, 건물의 사이즈나 높이 등이 일관성 없이 각양각색이어서 지역만의 개성이나 역사적 요소 등 특별한 정체성을 찾기 어려웠다. 아마도 옛 도심에 지어지는 건물이었다면 고려할 만한 지역적 요소가 더 많았을 테고 지금과 다른 형태의 건물이 나오지 않았을까? 주어진 조건 안에서 도산대로의 다른 건물과 차별화하는 데 중점을 뒀다. (드 뫼롱) 토지 용적, 건축법 등 실질적으로 주어진 조건 내에서 비상업적인 예술 공간이 갖춰야 할 기능과 미학을 최대한 구현해내는 데 집중했다. 건물을 지을 수 있는 최대 높이와 건축 면적이 제한돼 있고, 주변에 주거 지역이 있어 일조권도 염두에 두어야 했지만 압박을 느끼기보단 허용 범위 안에서 조형적 가치를 극대화하는 방법을 고민했다.

차별화를 위한 구체적인 방법이 궁금하다.
(드 뫼롱) 형태는 단순하게, 재료는 단일하게, 작업은 정교하게 진행하는 것이다. 신사옥의 파사드는 번화한 대로를 마주하고 있는 만큼 차분하면서 파워풀한 이미지를 구현하고 싶어 콘크리트를 재료로 사용하고 창문을 최소화했다. 대신 건물 후면에 층층이 테라스를 배치하고 입구와 연결되는 작은 정원을 마련해 건물의 개방성, 주변 요소와의 조화를 고려했다.

파사드 전체를 콘크리트로 뒤덮고 창을 거의 내지 않은 시도는 상당히 파격적이다.
(헤르초크) 건물은 궁극적으로 많은 사람을 유입해야 한다. 그렇다면 어떤 건물에 사람들이 매력을 느끼고 관심을 가질까? 입면이 번쩍번쩍하거나 투명하고, 창이 많으면 더 많은 사람이 찾아올까? 우리의 답은 ‘그렇지 않다’였다. 11층 규모의 전면부에는 창이 딱 2개인데, 수직으로 긴 직사각 형태로 상단과 하단에 자리한다. 도산대로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굉장히 정교한 위치다. 대로변 다른 건물과 차별화하는 방법을 고민하다 밝게 빛나는 ‘랜턴’의 이미지를 떠올렸고, 주변이 어두워졌을 때 긴 창으로 빛이 나오면 건물이 하나의 랜턴처럼 느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1864년 지어진 홍콩의 유서깊은 건물 ‘타이퀀’을 갤러리, 공연장 등을 갖춘 새로운 복합문화공간으로 레노베이션한 ‘타이퀀, 홍콩 헤리티지 & 아트 센터’. 알루미늄을 벽돌처럼 층층이 쌓아 과거와 현재의 조화를 꾀했다. Photo: Iwan Baan © Herzog & de Meuron. All rights reserved


카카오와 커피를 보관하던 창고 위에 110m 높이의 파도 모양 유리 구조물을 얹은 ‘함부르크 엘프필하모니 홀’. Photo: Iwan Baan © Herzog & de Meuron. All rights reserved


기존 화력발전소를 리모델링해 세계적인 미술관으로 탈바꿈한 런던 ‘테이트 모던’. Photo: Iwan Baan © Herzog & de Meuron. All rights reserved


새 둥지라는 의미의 ‘냐오 차오’라는 애칭으로 불리며 2008 베이징 올림픽의 아이콘이 된 ‘베이징 올림픽 주경기장’. Photo: Iwan Baan © Herzog & de Meuron. All rights reserved


삼탄 & 송은문화재단 신사옥 조감도. © Herzog & de Meuron. All rights reserved
앞선 프레젠테이션에서 소나무 결 모양의 콘크리트 파사드는 ‘숨은 소나무’라는 뜻을 지닌 ‘송은松隱’에서 착안한 아이디어라고 언급했다. 설명을 듣고 ‘재료의 연금술사’라는 수식어가 떠올랐다.
(드 뫼롱) 외국인의 입장에서 ‘숨은 소나무’라는 뜻이 매우 시적으로 다가왔고, 영감이 됐다. 이름에 맞게 소나무를 건물 어딘가에 하나의 요소로 활용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소나무로 만든 우드 보드 거푸집을 특수 제작해 건물외벽을 이루는 콘크리트 전체에 나뭇결을 입힐 예정이다. 콘크리트지만 마치 나무 같은 독특한 질감을 구현하려고 한다.

세계적인 미술관과 뮤지엄을 다수 설계했다. 예술 공간을 작업할 때 특히 신경 쓰는 지점이 있나?
(헤르초크) 미술관이나 박물관은 단순히 방문객이 들러 예술 작품을 보는 공간이 아니라 사람이 모이고, 만나고, 여유로운 시간을 누릴 수 있는 개방적인 공간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특별한 매력으로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들를 때마다 새로운 느낌을 주는 곳이 되길 바라며 설계한다. 이를 통해 많은 이가 일상에 영감을 주는 예술 작품을 향유할 수 있길 바란다. (드 뫼롱) 건물을 통해 더 많은 서울 시민이 다양한 예술을 접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드는 것이 송은문화재단의 바람이자 우리의 큰 목표다. 조형적인 아름다움을 간직한 건물과 내부의 전시 공간, 정원을 마음껏 즐기며 좋은 시간을 보내고 다양한 영감을 얻을 수 있길 바란다.

땅값 비싸기로 유명한 서울의 강남, 특히 도산대로에 위치한 건물 내에서 공공 공간을 찾기란 쉽지 않다. 이런 점에서 1층에 조성한 정원이 인상 깊다.
(드 뫼롱) ‘문화 허브’를 표방하는 신사옥에 반드시 필요한 공간이라고 생각했다. 입구와 로비를 거치면 바로 닿을 수 있어 누구나 들러 휴식을 취하기 좋다. 작지만 용도에 충실한, 소중한 공간이다. 건축의 본질을 탐구하는 작업을 꾸준히 이어왔고, ‘건축은 건축이다’라는 유명한 말도 남겼다. 그렇다면 HdM이 생각하는 건축가의 역할은 무엇인가? (헤르초크) 건축은 ‘제약의 비즈니스’다. 관련 법규부터 주변 환경, 예산 등 프로젝트마다 수많은 제약이 존재한다. 때문에 건축가는 조건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공간의 퀄리티와 가치를 극대화할 수 있어야 한다. 또 건축은 ‘시간의 비즈니스’이기도 하다. 시간의 제약을 받고, 시간으로 평가받기 때문이다. 따라서 건축가는 주어진 시간을 잘 활용해야 하고, 우리가 구현한 프로젝트가 수십 년 동안 강력한 파워를 발현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작업해야 한다.

‘좋은 건축’의 조건은 무엇일까?
(드 뫼롱) 건축은 시대와 일상을 반영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람이 사는 공간’을 만드는 일인 만큼 삶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선행돼야 한다. 수많은 경험을 통해 사람의 감정과 행동을 이해하고, 그것을 다양한 방식으로 건물에 녹여내 많은 이와 공유하는 것이 건축의 미덕인 것 같다. 미적인 부분도 중요하지만 실용적이고 기능적인 면도 충족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시대의 럭셔리를 정의한다면?
(드 뫼롱) 즐기고 영감을 받는 일. (헤르초크) 신사옥이 서울의 문화 허브가 돼 누구나 정원에 들러 휴식을 취하고 예술을 즐기는 것. 우리의 삶이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모든 일이 진정한 럭셔리 아닐까.

디자인하우스 [LUXURY 2018년 12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