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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상을 대변해온 파워 드레싱의 역사.

Power Dressing

허리를 조이지 않는 것만으로도 정치적 메시지를 전하던 과거를 거쳐, 유리 천장에 오르기 위해 아르마니의 슈트와 도나 카란의 화이트 셔츠로 무장하던 시절도 있었다. 여성의 삶과 시대상을 대변해온 파워 드레싱의 역사.


1960년대 샤넬 슈트를 입은 여성들.


가브리엘 샤넬의 스케치.


1980년 조르지오 아르마니의 광고 캠페인.


2016 멧 갈라에 참석한 제나 라이언스와 제니 코너, 리나 더넘.


2016년 CFDA 어워드에서 지방시 슈트를 입은 비욘세.


보스의 블라우스와 스커트를 입은 영국 왕자비 메건 마클.


2014년 그래미 시상식에서 아들과 옷을 맞춘 마돈나.


이브 생 로랑의 르 스모킹 룩.


1979년 이브 생 로랑의 슈트를 입은 비앙카 재거.


Salvatore Ferragamo


Loewe
만화영화 <심슨네 가족들> 시즌 7의 한 에피소드에서 마지 심슨은 할인 매장에서 우연히 샤넬 슈트를 건지고, 옷 덕분에 선망하던 컨트리클럽에 초대받는다. 샤넬 슈트가 사교계 진출의 열쇠가 된 것.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서도 신입 사원 앤드리아(앤 해서웨이)가 유능한 비서로 인정받게 된 데에는 확 바뀐 스타일이 한몫했다. 동료의 도움을 받아 패션계에 어울리는 스타일로 변신한 그녀는 높아진 자신감을 바탕으로 진짜 능력을 발휘한다. ‘파워 드레싱Power Dressing’은 사회에서 성공하기 위한, 혹은 권위와 영향력을 발휘하는 옷차림을 가리킨다. 마지 심슨의 샤넬 슈트, 앤드리아의 최신 패션이 예다. 파워 드레싱의 흐름은 현대 여성 복식사, 그중에서도 특히 슈트의 발전과 맥을 같이한다. 여성의 사회적 욕구를 반영한 대표적인 아이템이기 때문이다. 1914년, 가브리엘 샤넬은 카디건 스타일의 재킷에 무릎길이의 직선형 스커트를 매치한 혁신적인 여성복을 선보였다. 그 시절 일상적이던 코르셋 착용을 탈피하고 활동성을 강조한 샤넬의 슈트는 여성 참정권에 관심이 높아지던 시대상과 맞물려 폭발적인 호응을 얻었다. 1930~1940년대 할리우드 스타들도 다양한 실험을 통해 여성복에 대한 관점을 확장시켰다. 마를레네 디트리히와 캐서린 헵번의 팬츠 슈트는 중성적인 스타일이 관능적인 매력을 배가할 수 있다는 걸 증명했다. 1966년, 이브 생 로랑의 ‘르 스모킹’ 룩도 패션사에 중요한 획을 그었다. 당시만 해도 공식 행사에서 남성은 턱시도를, 여성은 드레스를 입는 것이 관례였다. 하지만 이브 생 로랑은 재킷과 바지로 구성한 최초의 여성용 턱시도 슈트로 관습을 타파했다. 르 스모킹 룩은 이후 ‘파워 슈트’의 원형이 된다.

1980년대 등장한 파워 슈트는 남성복의 주요 요소를 적용해 남성 중심의 사회에 편입하고, 당당하며 능동적인 이미지를 보여주려는 전문직 여성들의 욕망을 바탕으로 탄생했다. 대표적인 디자이너는 조르지오 아르마니다. 기존의 어깨 패드와 뻣뻣한 안감, 심지를 제거한 남성 슈트로 화제를 모은 아르마니는 이를 토대로 자연스럽고 여유로운 실루엣의 여성 슈트도 선보였다. 뉴욕의 도나 카란은 한발 더 나아가, ‘여성의 관능적인 면은 어디에 있습니까?’라고 질문했다. 그녀는 어깨를 둥글린 재킷과 캐시미어 니트, 몸을 감싸는 신축성 있는 스커트 등으로 좀더 섬세한 감성이 깃든 슈트 패션을 제안했다. 그녀의 컬렉션은 지나치게 남성적인 슈트에 거부감이 있던 여성들에게 훌륭한 대안이었다. 도나 카란은 “여성은 먼 길을 왔다. 파워 드레싱은 이제 우리 자신의 내면을 표출하는 방식이다” 라고 전했다.

파워 슈트의 유행이 여성에게 또 다른 억압이라는 평가도 있었다. 1975년 <성공을 위한 옷Dress for Success>를 발간한 존 T. 몰로이John T. Molloy는 이 책의 여성 버전에서 당시의 분위기가 얼마나 엄격했는지 보여준다. 저자는 수년에 걸친 연구(?)를 바탕으로, 플라워 패턴의 옷과 스웨터, 플랫폼 슈즈 등은 직장에서 반드시 피해야한다고 권고했다. 성공을 위해서는 최대한 여성성을 감춰야 한다는 것이 이 책의 요지였다. 이러한 제약이 사회적 변화와 부딪치면서 마침내 2012년, <월스트리트 저널>은 파워 슈트의 종식을 선언했다. 패션 칼럼니스트인 크리스티나 빙클리Christina Binkley는 “한때, 여성 경영진에게 필수적으로 여겨졌던 진홍색 콤비 슈트는 여성이 남성의 전형에 맞추기 위해 노력한 시대를 반영한다”고 평했다.

오늘날의 파워 드레싱은 더 이상 형식과 디자인에 구애받지 않는다.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중 하나로 꼽히는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화려한 스카프나 두툼한 팔찌를 즐겨착용한다. 테레사 메이 영국 총리는 공식 석상에서 호피 무늬나 스파이크 장식을 선보이는가 하면 노출 의상도 마다하지 않는다. 미국의 퍼스트레이디 멜라니아 트럼프는 지난해 청와대에서 열린 국빈만찬에서 1000만 원대 쿠튀르 드레스를 입어 화제를 모았다. 과거의 여성들이 남성 복식과 문화를 모방하고 그들의 방식에 맞춰 성공했다면, 오늘날엔 여러 방식으로 높은 지위를 차지한 능력 있는 여성들이 많아지면서 성공한 여성의 스타일 역시 다양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앞으로 지향해야 할 파워 드레싱의 핵심도 이것이다. 정해진 룰을 벗어나 자신의 취향에 귀를 기울이고, 원하는 스타일을 당당하게 표현하는 것. 뉴욕의 패션 디자이너 레이철 로이Rachel Roy는 말한다. “진정한 힘은 옷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사람으로부터 오는 것이어야 합니다.”

디자인하우스 [LUXURY 2018년 11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