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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 케니 샤프

40년 차 힙스터의 ‘슈퍼 팝 유니버스’

키스 해링, 장 미셸 바스키아 등과 함께 1980년대 미국 팝아트의 전성기를 이끈 케니 샤프. 공상 과학 만화 캐릭터로 자신만의 우주를 꾸미고 뉴욕 거리를 총천연색 그라피티로 채우며 기존 예술의 틀을 깨온 그가 한국에 왔다. 내년 3월 3일까지 롯데뮤지엄에서 열리는 <슈퍼 팝 유니버스>전에서 재기 발랄하고 위트 넘치는 그의 세상을 만날 수 있다.


케니 샤프 1980년대 미국 팝아트를 이끈 대표 작가. 미국 LA 출신으로, 1978년 뉴욕으로 이주해 비주얼 아트 오브 스쿨에서 공부했다. 당시 뉴욕 힙스터들의 성지였던 이스트 빌리지에서 동시대 작가들과 교류하며 그라피티, 실험적 퍼포먼스 등을 선보였고, 1979년 피오루치Fiorucci 매장에서 연 첫 전시를 시작으로 1980년 하위문화로 취급받은 작품을 한데 모아 소개한 단체전 <타임스퀘어 쇼> 등에 참가하며 대중적 인지도를 높였다. 화려한 컬러와 독특한 캐릭터에 특유의 유머를 결합해 환경문제와 소비사회를 꼬집는 회화, 퍼포먼스, 설치 등을 선보이고 있다.
“평범한 것을 거부하고 뭔가 특별한 것을 원하는 사람에게 열려 있다. 어쨌든 힙한 사람에게!” 살아 있는 팝아트의 거장, 케니 샤프Kenny Scharf의 국내 첫 전시가 열리고 있는 롯데뮤지엄 전시장은 입구부터 ‘포스’가 남다르다. 흰 티셔츠에 멜빵 청 반바지, 발목까지 올라오는 흰 양말과 스니커즈 차림의 20대 케니 샤프가 담긴 대형 사진을 지나 안쪽으로 들어서면 눈부신 사이키델릭 조명과 클럽 음악으로 가득한 공간이 펼쳐진다. 1970년대 말 뉴욕 힙스터들의 성지였던 ‘클럽 57’을 재현한 것으로, 케니 샤프는 이곳에서 장 미셸 바스키아, 키스 해링 같은 아티스트와 함께 먹고 마시고 춤추고 노래하며 예술을 논했다. 기성 예술에 대한 반항기로 똘똘 뭉친 이들은 길거리 벽을 캔버스 삼아 그림을 그리고 일상의 소재를 예술로 끌어들이며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시도를 마치 놀이하듯 해나갔다. 세월이 흘러 당대의 수많은 아티스트가 세상을 떠났지만 케니샤프는 여전히 우리 곁에 남아 꾸준히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펼치고 있다. 알록달록한 컬러, 만화에서 갓 튀어나온 듯한 캐릭터, 초현실적인 풍경. 케니 샤프의 작품은 하나같이 재기 발랄하고 위트가 넘친다. 하지만 그 속에는 인류와 환경문제에 대한 묵직한 주제가 담겨 있다. 패셔너블하고 미래적인 캐릭터 ‘에스텔’을 통해 핵폭발과 지구 종말 이후 우주에서의 삶을 유쾌하게 표현한 ‘에스텔의 죽음Death of Estelle’ 시리즈, 1960년대에 인기리에 방영된 만화영화 <고인돌 가족 플린스톤>과 1990년 제작된 애니메이션 <우주 가족 젯슨>을 혼합해 만들어낸 ‘젯스톤’ 시리즈 등이 대표적. 현대사회에 만연한 물질주의의 폐해를 보여주기 위해 우주 한복판에 둥둥 떠 있는 도넛을 그리는가 하면, 버려진 TV나 라디오를 커스터마이징해 새로운 이미지를 끌어내기도 했다. 1980년대 초반 옷장 안에 쓰레기를 가득 채워 자신만의 유토피아를 꾸미는 케니 샤프를 보며 키스 해링은 “맨해튼의 모든 쓰레기를 다 끌고 다니는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는데, 이 작업은 후에 전쟁, 마약, 에이즈 같은 현대사회의 공포스러운 문제로부터 완벽하게 도피할 수 있는 사이키델릭한 우주 동굴 ‘코즈믹 캐번Cosmic Cavern’으로 발전했다. 1958년생, 우리 나이로 치면 올해로 환갑을 맞이한 그는 여전히 페인트 묻은 티셔츠와 청바지를 입고 래커를 든 채 거리를 누빈다. “이 나이에 스프레이를 칠하며 길거리를 다니는 건 좀 웃겨 보일 수 있지만 난 그게 좋아요. 재미있으니까. 지루한 건 한순간도 견딜 수 없거든요. 심오한 주제라고 심각하게 접근하고 표현해야하는 이유가 있나요? 쉽고 재미있게 즐긴 후에 진지하게 생각하면 되는 거죠.” 40여 년 전이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괴짜 힙스터’로 통하는 케니 샤프를 전시장에서 만났다.

인터뷰 전 작업하는 모습을 잠시 지켜봤는데 굉장히 집중하고 있어 말을 걸기가 쉽지 않았다.
작업할 때는 평소와 좀 다른 내가 나올 때가 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몰랐는데 설치를 도와주는 동료가 이야기 해줘서 곧바로 이리로 달려왔다.(웃음) ‘코즈믹 캐번’은 낡고 버려진 장난감과 가전제품을 화려하게 칠해 꾸민 나만의 ‘유토피아’다. 보기에는 요란하고 화려하지만 들어가서 누워 있으면 굉장히 안락하고 편안하다. 이번에는 한국에서 기증받은 폐장난감 50여 점과 백남준 오마주 섹션을 더한 새로운 버전의 ‘코즈믹 캐번’을 준비했다.

이번 전시를 위해 여러 가지 새로운 작업과 협업을 했다고 들었다. 어떤것들이 있나?
우선 뮤지엄 내부 벽에 태극기를 모티프로 한 커다란 그라피티를 그렸다. 이번 전시를 위해 한국에 대해 공부하면서 태극기에 담긴 의미를 알게 됐는데, 굉장히 큰 영감을 받았다. 양과 음의 조화, 대자연의 진리는 나의 오래된 관심사기도 하다. 중앙에 태극무늬를 그리고, 그 주위에 자연과 용, 행복, 평화와 관련한 다양한 영감을 표현했다. 또 전시 기간 내내 전시장 곳곳을 누비게 될 로봇 청소기 3대를 커스터마이징했다. 전자 기계에 새로운 옷을 입히는 것은 1980년대부터 꾸준히 해온 작업으로, 기존 기계가 가진 고유한 기능은 유지하면서 일상에 재미와 활기를 불어넣기 위한 방법이다.

전시명을 보고 1980년대에 발표한 ‘슈퍼 팝’ 시리즈가 떠올랐다.
‘슈퍼팝’은 기존 팝아트에 전기 충격을 가해 최고치의 ‘출력’을 끌어낸 것이다. 내가 경험한 모든 미술 사조, 예를 들어 1920~1930년대 초현실주의는 물론 1950년대 추상표현주의와 1960년대 팝아트, 1970년대 미니멀리즘 등을 모두 쏟아부었다. 딸기 크림 도넛, 일회용 음료 캔 같은 1950~1960년대 당시 미래를 상징했던 아이템이 초현실적인 공간을 부유한다. 지금까지의 작업을 총망라했다는 점에서 이번 전시는 슈퍼팝의 결정판이라고 할 수 있다.


‘Dragon Serpents Adore Korea!’, 2018


‘Face in Places’ , 2016 © Kenny Scharf 2018, Image courtesy the artist and Honor Fraser Gallery, Photo Joshua White/JWPicutres.com
공상 과학 만화 캐릭터와 사회적 메시지를 결합해 독창적인 예술 세계를 펼쳐왔다. 화려한 컬러와 유쾌한 이미지, 팝아트적인 이미지가 작업의 특징이다. 주로 어떤 요소들이 작업에 영감을 주나?
어릴 적 보고 자란 만화영화 <고인돌 가족 플린스톤The Flintstones>과 <우주 가족 젯슨The Jetsons>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존경하는 아티스트도 많다. 앙리 루소의 ‘열대 숲’에 푹 빠져 자주 따라 그리고 연습했는데, 그때의 영향으로 지금까지도 꾸준히 정글을 그리고 있다. 살바도르 달리와 르네 마그리트 같은 초현실주의 작가들, 팝아트의 선구자 앤디 워홀, ‘초현실주의’라는 단어가 생기기도전에 놀라울 만큼 초현실적인 그림을 그린 히에로니뮈스보스 등은 언제나 큰 힘이 되는 작가들이다. 또 카를 구스타프 융의 <인간과 상징>은 정말 좋아하는 ‘인생 책’으로, 이번 벽화에 그린 태극의 음과 양 개념도 여기서 처음 접했다.

뉴욕 ‘스쿨 오브 비주얼 아트School of Visual Art(SVA)’에서 미술을 공부한 후 ‘거리의 예술가’로 활동하게 된 계기는?
어린 시절을 줄곧 LA에서 보내다 1978년 처음 뉴욕에 도착했을 때, 거리를 물들인 그라피티를 보고 큰 자극을 받았다. 그라피티 아티스트들이 공공장소에 자신들만의 예술 세계를 펼치는 것을 보고 작품을 세상에 알릴 수 있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요새 많은 젊은 작가가 SNS를 활용해 작품을 보여주듯, 뉴욕 길거리의 벽 위를 타임라인 삼아 그림을 그린 셈이다.

장 미셸 바스키아, 키스 해링 등과 함께 1980년대 뉴욕 아트 신을 이끌었다. 특히 키스 해링과는 한동안 룸메이트로 지냈을 만큼 절친한 사이였던 것으로 알고 있다. 서로 영향을 주고받은 부분이 많았을 것 같다.
맞다. 바스키아는 브루클린에서, 키스는 펜실베이니아에서, 나는 LA에서 각각 지내다 비슷한 시기에 맨해튼의 이스트 빌리지로 이사하며 자연스레 어울리게 됐다. 포부를 나누기도 하고, 반항적 측면을 거리 예술로 분출하기도 했다. 동시대 예술에 대한 고민을 나누는 좋은 친구이자 선의의 경쟁자였다.

“예술에 규칙은 없다. 만약 있다면 그것을 깨면 된다. 규칙을 깨는 것은 늘 흥미롭다. 난 언제나 그렇게 한다”고 말했다. 어떤 방식으로 규칙을 깨왔나?
여러 방법으로 규칙을 어겼다. 이번 전시작중 1980년도에 작업한 ‘포레버Forever’도 그중 하나다. SVA에 다닐 때 만든 작품인데, 우주를 배경으로 눈덩이를 표현하려고 생각하다 마시멜로를 입힌 초콜릿 케이크를 통째로 아크릴 플라스틱으로 코팅한 뒤 바로 캔버스에 붙여버렸다. 기막힌 발상이라며 혼자 뿌듯해하고 있었는데 함께 수업을 듣던 다른 학생들과 교수님은 그저 황당한 행동으로 취급하더라. 케이크가 변하지 않고 얼마나 오래 작품으로 유지될 수 있겠느냐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작품은 4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렇게 멀쩡하다. 또 한번은 학창 시절 LA에서 그림을 그리다가 아주 밝은 분홍색을 사용했다. 그랬더니 선생님이 “그런 색은 예술 작품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했다. 나에게 ‘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는 말은, 거꾸로 ‘도전할 일’이라는 의미다. 세상을 더 나은 방향으로 바꾼 의미 있는 변화들은 모두 규칙을 깨는 것에서 시작되지 않았나. 하지만 절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규칙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선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모순점을 발견하고 문제에 대해 깊이 고민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나는 전형적인 예술을 하지 않았을 때 사람들이 어리둥절해하는 반응을 좋아한다. 그것이 예술을 더 흥미롭게 만드는 요소라고 생각한다.

주로 어디에서 영감을 얻고, 무엇을 보며 감동하나?
항상 다르지만 굳이 하나를 고르자면 ‘자연’ 이다. 인간이 만든 그 어떤 것도 자연만큼 완벽한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집 안의 작은 식물에서 일어난 변화, 우연히 발견한 길가의 풀과 들꽃에서 영감을 받는 경우가 많다.

이번 전시를 통해 관객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
각자의 방식대로 마음껏 내 작업을 즐겨준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 같다. 물론 작품 안에는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수많은 주제와 이야기가 촘촘하게 층을 이루고 있다. 하지만 그것을 어느 정도까지 알아보고 즐길 것인가는 관객들의 선택이자 몫이다. 보이는 대로, 마음 가는 대로 느끼면 된다.


일상에 예술을 입힌 커스터마이징 3



‘카밤즈’ 퍼포먼스 자동차에 원색 스프레이로 유쾌한 얼굴을 그려 넣는 ‘카밤즈Karbombz’ 프로젝트는 케니 샤프의 대표적인 커스터마이징 작업. 밋밋한 회색 도시와 짜증나는 교통 체증 속에서 사람들이 자신의 작품을 통해 즐거움을 느낄 방법을 고민한 결과다. 이번 한국 전시를 기념해 10월 2일과 3일, 800 대 1의 이벤트 경쟁률을 뚫고 당첨된 롯데홈쇼핑 고객 차량 2대에 각각 1시간가량 직접 퍼포먼스를 펼쳤다.




‘피츠 슈퍼클리어’ 패키지 롯데주류 맥주 피츠Fitz의 패키지가 알록달록한 ‘젯스톤’을 입었다. ‘피츠 슈퍼클리어’ 캔은 케니 샤프의 작품 이미지로 새롭게 디자인한 특별 한정판. 컬래버레이션을 기념해 롯데주류는 지난 10월 롯데월드타워 잔디광장에서 ‘피츠×케니 샤프 비어가든’ 행사를 열었다.




전시장을 누비는 로봇 청소기 <슈퍼 팝 유니버스> 전시장에서는 로봇 청소기 3대가 쉴 새 없이 바닥을 돌아다닌다. 한국 전시를 위해 케니 샤프가 커스터마이징한 로봇 친구들로, 각각 ‘로비Robby’, ‘리타Rita’, ‘리키Richy’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 작가는 LG전자 ‘코드 제로R9’ 청소기 3대와 충전기, 리모컨에 그림을 그리고 보석 등을 장식해 개구쟁이 얼굴의 장난꾸러기 로봇을 탄생시켰다.

디자인하우스 [LUXURY 2018년 11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