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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사사무소 사이SAAI 박인영∙이진오 대표

공유의 가치를 담아 공간을 설계하다

‘어쩌다 가게@망원’ 402호는 건축사사무소 사이SAAI의 오피스이다. 그 안의 탕비실은 301호 사장님도 사용하고 203호 직원도 쉬어 간다. 회의실이나 탕비실처럼 사용 빈도가 적은 곳을 이웃과 함께 공유하며 행복한 공간을 만드는 것이 박인영·이진오 대표와 ‘사이’의 목표인 듯했다.


반층씩 나뉜 사무실은 계단으로 이어져 있다. 계단에 걸터앉아 포즈를 취한 박인영 대표와 기대 선 이진오 대표. 이들은 계단에 자리를 펴고 술을 마시기도 한다.


‘어쩌다 가게’에는 계단을 따라 여러 가게들이 들어서 있다.


1층에 자리한 ‘어쩌다 책방’.
박인영·이진오 건축사사무소 SAAI는 작업 과정에서 열린 태도로 건축의 보편성을 고민하며 활동하는 건축 집단이다. 박인영 건축가는 국민대학교를 졸업하고 원일건축과 위가건축, 건국대학교 부동산대학원을 거쳤다. 이후 개발 사업에 참여하면서 설계 이전과 준공 후 유지 관리를 포함하는 건축기획자 역할을 해왔다. 이진오 건축가는 홍익대학교를 졸업하고 위가건축, 한국예술종합학교를 거쳤다. 현재 연세대학교 겸임교수로 일하며 독립된 개별 공간의 관계성에 관심을 갖고 작업한다.

건축사사무소 SAAI(이하 사이)는 망원동 다세대 주택가에 위치해 있다. 골목 깊숙이 있지만 건물 전체가 새하얗고, ‘어쩌다 가게’라는 입간판을 달고 있어 늘 사람들로 북적인다. 세모난 지붕이 높이 솟은 사무용 건물인데 특이하게 출입구도, 로비도 없다. 주차장에 마중 나와 있던 이진오 대표를 뒤따랐다. 복도와 계단을 사이에 두고 건물이 교차하 듯 연결돼 있는 독특한 구조. 계단을 오르니 카페부터 술집, 가든 숍까지 가게들이 층층이 늘어서있다. 한숨 고르려던 차에 꼭대기 층에 다다랐고, 오피스로 들어가는 현관이 보였다. ‘어쩌다 가게@망원’ 402호 문을 열자 제일 먼저 반기는 건 탕비실이었다. 반 층을 올라가면 회의 테이블이 나오고, 반 층 더 오르면 사무공간, 또 반 층 위로 가면 대표의 집무실이 있다. 덕분에 402호 층고는 2개 층을 합친 것만큼 높다. 계단을 내려오던 박인영 대표가 사무실 곳곳을 안내해주었다.“계단을 중심으로 여러 공간을 수직적으로 연결해놓은 형태예요. 그 길 위에 사무실이 개성 있는 모습으로 들어서길 바라며 설계했지요.” 입구에 탕비실을 설치한 이유를 물었다. “보통 사무실과 다르죠? 어쩌다 가게에 입점한 업체들과 탕비실을 공유하기 때문에 입구에 둘 수밖에 없었어요.” 다시 보니 수납장마다 방 번호가 붙어 있다. 이들은 탕비실뿐만 아니라 회의실, 라운지같이 늘 사용하지 않는 공간을 공유한다. 함께 쓰는 곳은 중간에 놓고 여기서 멀어질수록 사적 영역에 속하는 구조다. 지하 라운지는 따로 존재하던 업체가 한자리에 모여 생산적인 시너지를 내는 장이 되기도 한다. “개별적으로 공연이나 전시를 기획하고 각자의 상품을 팔 때 요긴하게 사용하지만, 입점 업체들이 모여 공동 마켓을 열 때 장터로 활용하기도 해요.” 박 대표는 그때 물건을 조금 더 싸게 살 수 있다며 호탕하게 웃었다. 필요한 만큼 선택하고, 함께 쓰면 좋은 공간은 나눠 사용하는 구조. 더 나아가 협력적 소비를 이끌어내는 것, 사이가 설계한 ‘어쩌다 가게’는 공생을 기반으로 진정한 의미의 공유 경제를 실천하고 있었다.

성격도, 스타일도 전혀 달라 보이는 두 사람. 이들은 어쩌다 ‘공유’라는 가치 아래 협력하게 되었을까? “대학 건축과에 가면 건축의 공적인 역할에 대해 배우지만 사회에 나오면 자연스럽게 잊어버려요. 건축가가 만나는 클라이언트들은 대부분 용도를 정해놓고 설계를 의뢰하거든요. 그러던 차에 공유의 개념을 구현해볼 기회가 생겼고, ‘어쩌다 가게’ 시리즈를 실천해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대표가 박 대표의 말을 이어받았다. “저희도 하고 싶은 일만 하진 못해요. 업무 비중은 설계 일이 80%에 달해요. 프로젝트에 쏟는 시간은 사실 많지 않습니다. 공간을 공유한다는 건 친숙한 개념이 아니에요. 어떤 사람에게는 상황에 따라 굉장히 불편할 수 있지요. 사적인 영역과 공적인 영역의 공존, 프라이버시를 침해하지 않는 최적의 조합을 찾는 것이 쉽지만은 않지만 어떨 땐 성장하는 기분도 들어요. 무엇보다 저희는 같이 하는 걸 좋아해요. 남들보다 공유 DNA가 높다고 할까요?(하하)”


같이의 가치, 어쩌다 가게
사이의 두 수장은 건축가의 일을 비단 ‘공간 설계’로 한정하지 않는다. 공간을 짓고 그 후에 벌어질 일에도 관심을 갖는다. 이들은 ‘어쩌다 가게’ 프로젝트를 위해 ‘공무점’이라는 회사를 설립하고 공간 속에서 사람들을 어떻게 잇고, 어떤 방식으로 살게 할 것인지를 치열하게 고민하며 연구했다. 입점하는 이들은 홍익대 인근에 분포한 자영업자를 대상으로 하고, 개별 인터뷰를 통해 공유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이를 우선 선발했다. 그렇게 동교동 1호점을 시작해, 11개의 상점과 사이를 포함한 5개의 사무실이 자리한 망원점까지 2개의 지점을 운영하고 있다. 가장 큰 특징은 5년간 임대료를 올리지 않고 대여를 보장한다는 것. 그 덕에 영세 자영업자들이 임대료 인상으로 밀려날 걱정 없이 마음껏 장사할 수 있다. ‘어쩌다 가게’는 오는 4월 서교점 오픈을 앞두고 있다. 2년 후에는 엄청 큰 ‘어쩌다 가게’가 생길 예정이다. “‘어쩌다 가게’ 시리즈 중 왕십리에 오픈하는 가게는 압도적인 규모가 될 거예요. 3개 층, 약 2644m²(약 2800평) 크기에 이르고, 우리가 직접 약 330m²의 대형 라운지도 운영할 계획입니다.” 사이는 ‘어쩌다 가게’마다 반드시 공무점에서 직영하는 매장을 둔다. 망원점을 예로 면, ‘어쩌다 책방’이 여기에 해당된다. 직영점을 운영하는 이유는 입점한 업체를 이해하고 그들의 애환에 공감하기 위해서다. 공간을 공유한다는 것은 곧 사람과 관계를 맺는 것이고, 그만큼 세심한 관심과 배려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따로 또 같이, 제24회 서울리빙디자인페어
3월 7일부터 5일간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리는 서울리빙디자인페어의 주제는 ‘따로 또 같이, 커넥티드 홈’이다. 두 건축가는 이번 디자이너스 초이스의 공간 연출을 맡았다. 르코르뷔지에의 자유로운 평면에서 착안한 그리드, 공간을 구성하는 원형적 요소인 기둥과 아치를 활용해 여럿이 느슨하게 관계 맺는 공간을 제안한다. 재료의 크기, 부재 간 결합을 고려해 최소의 시간과 비용으로 공간을 구축하며 디자인 그룹 세 팀의 전시 공간을 하나로 묶는다. “공유 경제나 공생이 화두로 대두되다 보니 많은 이가 공유라는 주제에 관심을 갖지만 막상 눈앞에 닥친 일이 아니라 막연하게만 알고 있는 것 같아요. 여러 장소를 하나로 이으며, 현대사회에서 공유라는 가치가 어떻게 실현될 수 있는지 구체적인 모습을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해요.”


건축사사무소 SAAI는 서울리빙디자인페어 디자이너스 초이스의 공간 연출을 맡았다. 여럿이 느슨하게 관계를 맺는 공간을 선보일 예정이다.

디자인하우스 [LUXURY 2018년 3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