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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창극 선보이는 이자람, 이소연

쓸떼없이 진지하지 않는 것이 우리 세대의 소리

국립창극단이 선보이는 신창극 시리즈 1 <소녀가>는 올해 가장 기대되는 공연이다. 창극에서 하나의 브랜드가 된 이자람과 국립창극단의 주역 이소연이 연출과 소리꾼으로 만나는 무대. 새로운 국악을 기치로 다양한 실험을 계속해온 이들은 재미와 재치, 창의성과 상상력으로 무장한 작품을 곧 쏘아 올린다.



이자람 기존에 없던 새로운 판소리와 창극을 선보이는 모험가이자 혁신가. ‘국악계의 르네상스맨’처럼 연출, 작창, 음악, 극본 등 모든 분야에 강하다. 1984년 노래 ‘내 이름(예솔아!)’로 많은 사랑을 받았으며 서울대 국악과 4학년에 재학 중 8시간에 걸쳐 <춘향가>를 완창했다.

이소연 맑은 성음이 돋보이는 소리꾼이자 국립창극단의 간판 단원으로 <안드레이 서반의 다른 춘향>을 포함해 주요 작품에서 주연을 맡았다. 최근에는 뮤지컬 배우로서도 실력을 인정받고 있으며 캐릭터와 대본 분석력이 특히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국악계의 잔 다르크!’
작창과 연출을 넘나들며 새로운 판소리 공연을 선보이는 이자람을 향한 평가다. 몇 년 전 LG아트센터에서 선보인 그녀의 대표작 <억척가>의 무대는 놀라웠다. 중국 삼국시대를 배경으로 전쟁터에서 억척스럽게 살아가는 여인의 이야기.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억척어멈과 그 자식들> 을 각색해 대본까지 쓴 그녀는 주인공인 김안나를 중심으로 첫째 아들 이용팔, 둘째 아들 제갈정직, 막내딸 모추선, 용병대장, 천의도사, 뺑마담, 동탁의 병사들, 젊은 병사, 보초까지 1인 15역을 완벽하게 소화했다. 소리꾼과 고수만 등장하는 전통 판소리와는 확연히 다른 무대. 세 명의 뮤지션은 북, 장구부터 전자기타와 퍼커션까지 여러 악기를 연주하며 매혹적인 선율을 만들어냈다. 인디 뮤지션 그룹인 ‘아마도이자람밴드’로도 활동하는 이자람은 이 공연을 위해 30여 곡을 새로 만들었다. 그럼에도 가장 돋보인 것은 역시 그녀의 목울대에서 터져 나오는 소리였다. 국가무형문화재 5호 판소리 이수자이기도 한 이자람은 발림(신체를 활용한 몸짓, 표정 또는 부채로 극적인 상황을 실감나게 그려내는 동작), 아니리(음률이나 장단을 더하지 않고 일상적 어조의 말로 하는 부분)를 적재적소에 활용하며 다양한 층위의 희로애락을 풍성하게 그려냈다. 이전 작품인 <사천가>, 음악감독으로 참여한 <흥보씨> 역시 세련된 구성과 형식으로 호평받았다. 이소연은 국립창극단의 간판 배우다. 창극 <산불>, <변강쇠 점 찍고 옹녀> 등 여러 작품에서 주연을 도맡았다. 뮤지컬 <아리랑>과 <서편제>에도 출연해 폭넓은 연기 스펙트럼을 보여주었다. 이자람은 이번 무대를 준비하며 일말의 망설임 없이 그녀를 선택했고 그렇게 환상의 커플이 탄생했다. 함께 선보이는 작품은 <소녀가>. 프랑스의 구전동화 <빨간 망토>가 원작으로 당차고 호기심 많은 소녀가 능글맞고 간교한 늑대에게 통쾌한 한 방을 날리는 것이 각색의 큰 흐름이다. 모노드라마 형식이 될 이 무대에서 이소연은 소리꾼과 배우, 스토리텔러를 넘나들며 소녀의 성장과 활약을 그려낼 예정. 이자람은 연출, 극본, 작창, 작곡, 음악감독까지 1인 5역을 맡는다.

이제 곧 <소녀가>가 무대에 오릅니다. 프랑스 동화 <빨간망토Le Petit Chaperon rouge>가 원작인데 이 작품을 선택한 배경이 궁금해요.
(자람) 어느 날, 프랑스 국적의 의상 디자이너인 프란체스코Francesco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너무 재미있었어요. 그에 따르면 빨간 망토 소녀는 굉장히 스마트하고 강해요. 욕망에도 솔직하고요. 그녀는 애초부터 늑대의 속임수를 알고 있었어요. ‘하하, 내가 너한테 잡아먹히나 보자. 이 늑대를 한 번 갖고 놀아볼까?’ 하는 마음이었지요. 당연히 잡아먹히지도 않아요. 실제 <빨간 망토>는 여러 가지 버전으로 쓰였어요. 2010년, 프랑스 작가 장 자크 프디다는 <빨간 망토 혹은 양철 캔을 쓴 소녀>라는 책을 펴냈는데 빨간 망토 안에 감춰진 소녀의 욕망을 자연스럽게 묘사했어요. 이런 이야기를 접해보니 그간 제가 얼마나 남성적 시각에 익숙했는지, 가부장적 관념과 편견에 사로잡혀 있었는지 느껴져 창피하더라고요. 원전을 읽다 보면 은연중에 욕망은 악덕, 순종하지 않은 삶의 결말은 비극이라고 생각하게 되잖아요. 제가 느낀, 그 시원하고 부끄러운 느낌을 작품에 담아내고 싶었습니다. 한창 대본을 매만지고 있는데 어떻게 하면 관객도 그 감정을 오롯이 느낄 수 있을까 계속 고민하고 있습니다.

빨간 망토 소녀는 그간 소연 씨가 해왔던 역할과는 사뭇 달라 색다른 기분일 듯합니다.
(소연) 재미있을 것 같은데 겁도 나요(웃음). 소녀는 물론 엄마와 늑대까지 모든 역할을 직접 해야 하거든요. 이자람 연출가가 다양한 인물의 상황과 심리를 어떤 식으로 표현할까 무척 기대하고 있습니다. 언뜻 보니 의성어도 많이 들어가더라고요. 한 가지 바람은 관객들이 사회적, 정치적 메시지를 염두에 두고 공연을 보시진 않았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용감하고 씩씩한 한 소녀의 성장기’로 봐주시면 어떨까 싶습니다.

‘이자람표 무대’의 장점 중 하나는 눈물샘과 배꼽을 동시에 자극한다는 거지요. 특히 해학이 두드러지는데 이번에도 웃긴 대목이 많습니까?
(소연) 늑대에게서 탈출하는 장면이 하이라이트인데 어떻게 표현할지 기대돼요. 극을 통틀어 가장 재미있는 장면이 될 것 같아요. 걱정되는 부분도 많아요. 극 중간에 소녀가 ‘단가短歌’(판소리를 부르기에 앞서 목을 풀기 위해 부르는 짧은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있는데 앞뒤 맥락상 ‘매우’ 뜬금이 없어요(웃음). 갑자기 정색을 하고 전통 판소리를 들려주거든요. 처음에는 이해가 안 갔는데 자람 연출가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또 설득이 되더라고요.

연출자의 특권 중 하나가 배우를 직접 선택하는 것이지요. 소연 씨를 택한 이유가 있을 텐데요.
(자람) 소연은 동편제에서 빼놓을 수 없는 전통 판소리 이수자예요. 국립창극단을 대표하는 배우이자 소리꾼이기도 하고요. 한마디로 인물과 소리가 다 좋지요. 소연을 보면 ‘도화지’ 같은 배우란 생각이 들어요. ‘네 머릿속에 있는 걸 다 꺼내 봐. 내가 알아서 요리해 볼게’ 하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요. 무엇보다 그녀에게는 어마 무시한, 엄청난 유머 감각이 있어요. 뻔뻔하고 능청맞은 코드인데 친해지면 진짜 웃겨요. 그런 모습까지 최대한 끌어내는 것이 목표입니다.

국립창극단에는 평생 판소리를 해온 선배이자 고수들이 많은데 그분들과 새로운 무대를 만드는 과정이 부담스럽거나 어렵진 않나요?
(자람) <흥보씨>를 할 때 잔뜩 얼어서 갔는데 결국 자기 일을 하면 되더라고요. 긴장하고 어려워한다는 건 비난받고 싶지 않거나, 칭찬받고 싶어서인데 자기 맡은 바 일을 잘 해내고 실력을 증명하면 문제가 없어요.

이번 공연에는 ‘신창극 시리즈’라는 이름이 붙었는데 판소리와 창극, 신창극은 어떻게 다른가요?
(자람) 춘향전을 예로 들면 판소리에서는 창자 한 명이 이도령도 하고 춘향이도 하면서 극을 이끌지요. 반면 창극에서는 여러 명의 소리꾼이 역할을 나눠 갖습니다. 신창극이 무엇인지는 저도 몰라요. 1인 판소리를 중심으로 여러 실험을 계속할 뿐이죠. 핵심은 판소리, 창극, 신창극이 모두 ‘소리꾼의 예술’이라는 점입니다.

소연 씨는 판소리와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되었는지요?
송순섭 무형문화재 스승께 소리를 배운 아버지 손에 이끌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판소리를 배웠어요. 처음에 <장부가>의 한 대목을 했던 것 같은데 소리를 크게 내야 하는 줄 모르고 “어화청춘 소년님들 장부가를 들어보소” 읊조리듯 소심하게 내뱉었던 기억이 나요. 이후 소리 공부를 계속하면서 방학 때는 지리산 골짜기에 들어가 물소리를 이겨내는 훈련도 받았습니다.

판소리는 ‘한의 예술’이 아니에요. 기쁨과 슬픔, 애환과 고통 등 인생 전체를 담지요. 소리가 전부도 아니에요. 배우들의 연기는 물론 음악과 무대미술이 함께 어우러지지요. 누군가 작품을 보고 “판소리 공연인데 작품이 좋네, 그 배우 소리 참 잘하네” 라고 말한다면 그는 판소리에 대해 관심과 애정이 없는 거예요.

판소리 하면 ‘득음의 과정’이 자연스레 떠오르면서 무척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자람) 판소리를 한다고 하면 왠지 더 힘들고 더 고통스러울 거라고 생각하는데 다른 모든 예술에서도 그건 마찬가지예요. 피아니스트나 화가, 성악가는 힘든 시간 없이 자동적으로 대가가 될까요? 고통의 과정 없이 이룰 수 있는 성취는 없다고 봅니다.
(소연) 언젠가 TV 촬영을 한 적이 있어요. PD분께서 더 힘들고, 더 처절한 느낌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하시더라고요. 평소 판소리나 창극을 많이 접하시지 않아 오해가 있으셨던 것 같아요.
(자람) 세상은 이렇게나 많이 바뀌었는데 여전히 판소리는 이런 식으로 ‘활용’돼요. ‘신명’ 아니면 ‘절규’지요. 물론 <억척가> 같은 작품에도 어마어마한 힘이 들어가는 대목이 있어요. 하지만 그렇게 ‘바주카포’로 쏘는 것 같은 장면은 1~2개에 불과해요. 딱총을 쓸 데도 있고, 새총을 사용할 때도 있지요. 마치 핵폭탄을 터뜨리듯 ‘으아악’ 하는 대목만 있는 판소리는 없어요. 누군가 창극을 보고 “판소리인데 작품이 좋네. 배우들이 소리도 잘하고”라고 말하면 그는 평소 판소리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없는 거예요. 훌륭한 연극이나, 오페라를 보고 연극인데, 오페라인데 작품이 좋다고 말하지 않잖아요. 그런 소리를 칭찬으로 받아들이면 안 돼요.

사실 몇 해 전부터 자람 씨에게 계속 인터뷰를 제안했습니다. 그때마다 고사를 했는데 평소 인터뷰를 하지 않는 이유가 있는지요?
(자람) 기자라고 해도 판소리에 대해 잘 모르는 경우가 많고, 오해하는 부분도 많은데 그런 것을 일일이 얘기하며 보폭을 맞추는 것이 너무 힘들어요. 인터뷰를 하면서 질문을 받아 적고, 단어를 메모하는 버릇이 그때부터 생긴 것 같아요. 판소리에 대한 잘못된 개념이나 인식이 퍼져 나가는 걸 막으려면 정확히 짚고 넘어가야 할 것들이 많거든요.

판소리를 ‘한의 예술’이라 생각하는 것이 대표적인 오해일까요?
(자람) ‘판소리는 한이다’라는 정의는 판소리에 대해 잘 모르는 이들이 사고하기 편하게 대충 만들어놓은 두루뭉술한 정의예요. 엉터리죠. 한은 판소리의 전유물이 아니에요. 영화나 드라마를 본다고 쳐요. 절망과 분노가 가슴 절절하게 그려지지요. 중년의 여자가 주인공이라면 누군가는 그 배역에서 엄마의 삶을 볼 거예요. ‘아, 어떻게 저런 심리까지 섬세하게 묘사할 수 있을까’ 하며 감동도 받겠지요. 노래는 안 그런가요? 인간이 살면서 겪는 온갖 애환이 담겨 있어요. 판소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한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인생 전체를 담지요.
(소연) 판소리를 배울 때 ‘한’을 가르치는 곳은 없어요(웃음). 판소리 사설이나 가사를 포함해 어디서, 어떻게 소리가 나오는지를 배우고 익히는 것이 더 중요하지요.
(자람) SNS를 보고 있으면 놀라워요. 전 세계의 수많은 사람이 얼마나 다채로운 삶을 사는지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지요. 판소리를 하는 소리꾼도 마찬가지예요. 연습을 마치면 레스토랑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고, 연애를 하고, 책도 보고 음악도 듣지요. 영화배우 전도연 씨가 어떤 일상을 사는지 우리는 몰라요. 클래식 음악 연주자도, 화가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쇼핑도 하고, 영화도 보면서 일상을 살겠지요. 저도 마찬가지예요. 잠자는 걸 좋아하고, 뭔가를 읽거나 쓰는 시간이 많지요. 닭볶음탕을 포함해 요리하는 것도 즐기고요.

이런 고정관념을 만드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이 영화 <서편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자람) 여주인공인 송화 역할을 한번 보자고요. 영화의 시대적 배경은 1930년대예요. 먹고사는 문제가 급박했던 참담한 상황이었지요. 판소리를 하는 사람은 생계를 위해 이 마을 저 마을 떠돌아다니며 소리를 해야 했어요. 송화의 아버지는 딸의 눈을 멀게 하면서까지 판소리를 가르치지만 그녀는 시력을 잃지않았더라도 최고의 판소리꾼이 되었을 아이예요. 눈이 머는 과정에서 한을 배웠지만 인생 이야기에 ‘한’만 있는 건 아니지요.

새로운 형태의 공연을 선보이지만 최고 소리꾼으로서의 자부심도 클 것 같습니다. 완창 판소리에 대한 열망도 여전히 있나요?
(소연) 완창 판소리는 큰 숙제 같은 존재지요.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꼭 해야 할 것만 같은…. 아직까지는 꼭 문화재가 되거나 명창이 되고 싶다는 생각은 없어요. <흥보가>나 <적벽가>처럼 다양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긴 호흡으로 제대로 해보고 싶은 생각은 있어요. ‘진짜 소리 잘한다’, ‘엄청난 기술이다’ 같은 말을 듣는 건 중요하지 않아요. 그 긴 이야기를 저와 관객 모두 재미있게 느낀다면 그걸로 충분합니다.
(자람) 열한 살 때부터 끊임없이 소리를 해오다 잠시 쉰 지가 1년쯤 됐네요. ‘명창’으로 불리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어요. 판소리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명창’이란 단어부터 짚고 넘어가야 해요. 이 단어는 소리꾼들이 서로를 견제하거나 최고의 반열에 오른 특정 선생님의 공력을 칭하기 위해 쓰는 말이에요. 명확한 기준도, 조건도 없지요. 소리꾼들만의 전유물처럼 통용되는데 일종의 강박관념이에요. 판소리계가 워낙 좁다보니 명창 소리를 들어야만 선택을 받아 무대에 설 수 있어요. 하지만 2번, 3번, 4번, 더 나아가 100번까지 있어야 명창이란 호칭도 의미가 있는 것 아닌가요? 우리끼리 명창이네, 국가무형문화재네 하면서 서로를 드높이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어요. 물론 애정과 열정이 크지만 전통 판소리를 보전하는 것에 제 인생을 바칠 의향은 없어요. 저는 소리하는 ‘장인’이 아니라 예술을 하는 ‘아티스트’가 되고 싶어요. 소연 씨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국악계에 발을 딛고 있는데 이 땅이 너무 좁아요. 그게 너무 힘들어요. 판소리에 대해 잘 모르니 관객도 연민과 동정 어린 시선을 보낼 때가 많지요. 공연을 마치면 기립박수를 하는 관객이 있는데 여쭙고 싶어요. 창법이나 기예와 상관없이 음악적으로도 과연 특별하다고 느낀 건지. 판소리는 어느새 관객에게 너무 멀어진 장르가 되어버렸어요. 찬찬히 풀어가야 할 것들이 많습니다.

자람 씨는 스스로에게 질문이 많아 보입니다. 분석적이고 진지해 보여요.
어떤 감각이나 감정을 느끼면 정확히 마음 어디를 건드린 건지, 무슨 이유로 기분이 좋거나 분노하는 건지, 그런 감정이 무지나 오만, 욕망에서 비롯된 건지 아니면 사회적 통념이나 한국식 교육에서 기인한 건지 찬찬히 들여다봐요. 질문에 대한 명확한 답을 얻지 않고서는 다음 단계로 못 나가는 성격이라 대충 덮지 못해요. 회피하면 당장은 편하겠지만 곧 불편해질 테니 꼭 매듭을 짓지요.

자람 씨가 쓴 극본은 한마디로 박력이 넘쳐요. 처음부터 끝까지 몰입해서 보고, 듣게 하는 힘이 있지요. 혹시 선호하는 스토리나 구성의 스타일이 있는지요?
힘 있는 글을 좋아하는 것 같긴 해요. 정유정 작가의 <7년의 밤>처럼 첫 페이지부터 독자를 붙잡아 패대기치듯 하는 글을 읽으면 혼이 쏙 빠지면서 짜릿한 쾌감이 들지요. 하지만 “어떤 작품을 쓰고 싶으냐?” 라고 물으면 꼭 그쪽은 아니에요. 일단 제 작품을 본 후 관객의 기분이 좋아졌으면 해요. 연출가 로베르 르파주Robert Lepage의 작품처럼 잠시 소풍을 다녀온 듯한 기분을 안길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겠지요. 이번 <소녀가>를 예로 들면 소녀와 함께 짜릿한 모험을 한 후 함께 벅찬 기분으로 뛰어 돌아오는 것 같은 감흥을 선사하면 좋겠어요. 쓸데없이 진지하지 않으려고 늘 노력하는 편이에요.

새롭고 모던한 무대를 추구하는 두 분은 럭셔리한 삶을 어떻게 정의할 지 궁금합니다.
(소연) 지금 이 순간 더 필요한 것이 없는 삶요. 지금 이대로, 이미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삶이면 이미 럭셔리하다고 할 수 있을것 같아요. 무언가를 계속 욕망하다 보면 자칫 삶이 구차해질 것 같기도 하고요.
(자람) 생각해본 적 없는 화두예요. 즉흥적으로 대답할 건 아닌 것 같고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에 나오는 문장으로 대신할게요. “나는 바라는 것이 없다. 나는 두려운 것이 없다. 그러므로 나는 자유다.” <그리스인 조르바>를 쓴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묘비명이기도 해요.


<소녀가>의 원작인 프랑스 동화 <빨간 망토>. 공연은 2월 28일부터 3월 4일까지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펼쳐진다. 

디자인하우스 [LUXURY 2018년 3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