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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 페로탕 대표, 에마뉘엘 페로탕

내 역할은 아티스트의 꿈을 이뤄주는 것

파란 눈의 이 갤러리스트는 그 자체로 하나의 브랜드다. 파리, 뉴욕, 홍콩 외에 서울에도 지점을 갖고 있으며 베르사유궁전에서 전시회를 연 무라카미 다카시, 자비에 베이앙 같은 거물급 아티스트 100여 명의 작품을 관리한다. 세계적 아트 매거진 <아트리뷰>가 선정하는 ‘세계 미술계 파워 100인’ 리스트에도 꾸준히 상위권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에마뉘엘 페로탕 정식 미술교육을 받지않았지만 동물적 감각과 사업가 기질로 세계적 성공을 거둔 인물. 어떤 경우에도 작가를 최우선시해 가능한 한 최고의 무대에서 최고의 전시를 선보일 수 있도록 지원한다. 파리 본점을 포함해 뉴욕, 홍콩, 도쿄, 서울의 각 지점을 맡고 있는 이들에게 갤러리 운영을 전적으로 믿고 맡기며 이들의 말을 경청해 다음 프로젝트에 반영한다.

에마뉘엘 페로탕Emmanuel Perrotin은 미술계에서 입지전적 신화를 쓴 인물이다. 본인의 말처럼 ‘금수저’가 넘쳐나는 이 업계에서 그는 가진 것도, 아는 것도 많지 않은 상황에서 성공을 일구어냈다. 애초에 미술과 관련한 일을 할 생각조차 없었다. 형이 열다섯 살에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그는 더 이상 안정적으로 청소년기를 보낼 수 없었다. 결국 고등학교를 중퇴했고 오후 2시부터 6시까지만 일하면 된다는 조건이 마음에 들어 파리의 한 갤러리에 취직했다. 그곳에서 4년간 일한 그는 작은 아파트를 갤러리로 꾸며 화상畫商으로서 첫 커리어를 시작한다. 독립선언 후에 그가 소개한 작가는 ‘망가’스타일의 작품으로 전 세계를 접수한 무라카미 다카시와 해골에 2156개의 다이아몬드를 박고, 부패해 파리가 들끓는 소의 머리를 작품이라 내놓으며 현대미술계의 악동자리를 꿰찬 데이미언 허스트였다. 인터뷰 도중 그는 “내겐 동물적 감각이 있다”고 여러 차례 말했는데 이런 선택을 한 것을 보면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닌 듯하다.

페로탕은 이 세상에서 가장 까다로운 ‘고객’을 양쪽에 두고 있다. 한쪽에는 막강한 재력의 컬렉터가, 또 다른 한쪽에는 요구하는 것도 많고 컨트롤도 쉽지 않은 아티스트가 있다. 이 둘은 아쉬울 것도 없고, 찾는 이도 많기 때문에 언제든 다른 화상에게 떠날 준비가 되어 있다. 이 고난도의 삼각관계에서 그는 30년 넘게 존재감을 확고히 하며 성공을 이어가고 있다. 그의 계산과 아이디어, 투자는 수많은 전시와 이벤트로 연결돼 오늘날 우리가 보고 즐기는 미술 현장에 직간접적으로 반영된다. 그의 활동, 그의 전략에 대한 이해가 곧 동시대 미술을 즐기는 또 하나의 도구가 되는 것이다. 종로 팔판동에 자리한 갤러리 페로탕에서 그를 만났다. 세계적 갤러리스트는 어떻게 탄생하고 성장하는 것인지를 두고 2시간가량 이야기를 나눴다.


최근에야 도쿄에 분점이 생겼다는 사실이 의아하다.
일본은 한국보다 현대미술시장이 훨씬 작다. 전통 일본화나 도자기를 더 많이 사기 때문이다. 가고시안 갤러리 등 세계적 화랑이 아직 진출하지 않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지만 경기가 회복되면서 서서히 때가 무르익고 있다고 판단했다. 모두가 알아차릴 만큼 시장이 커졌을 때는 이미 늦은 것이다.

근래에 뉴욕 지점을 어퍼 이스트Upper East에서 로워 이스트 사이드Lower East Side 쪽으로 옮겼다.
뉴 뮤지엄New Museum과 가까운 곳에 지점을 냈는데 이전 공간과 비교하면 7배 까이 크다. 큰 공간에서 전시를 하는 싶어 하는 아티스트에게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이 지역이 뉴욕의 트렌드를 리드하고 있는 것도 이전을 결심한 배경이다. 5개 층 전체를 쓰는데 개관전으로는 설치미술을 선보이는 콜롬비아 출신의 이반 아르고테Ivan Argote의 개인전을 선보였다.


한국 시장에 진출한 이유는 무엇인가?
한국의 아트 컬렉터는 많은 경우 특정 갤러리를 통해서만 작품을 거래한다. 이런 시스템은 유럽에서는 익숙하지 않은 풍경이다. 유럽의 컬렉터는 완전히 자유롭다. 특정 갤러리에 얽매이지 않는다. 그래야만 여러 작가의 다양한 마스터피스를 소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 미술 시장을 보면 컬렉터가 특정 갤러리에 소속된 듯한 느낌이 든다. 그 과정에서 누리는 좋은 점도 있겠지만 컬렉션을 양적, 질적으로 향상하는 데는 별 도움이 안 된다. 이런 독점적 문화를 깨고 한국 컬렉터에게 더 넓은 시장과 작가를 보여주고 싶었다. 해외에서는 작품성과 스타성를 인정받지만 한국에서는 아는 이가 많지 않은 작가를 공격적으로 소개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국 작가를 발굴하기보다는 해외 작가 작품을 소개하고 판매하는 데만 치중한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내가 집중하는 것은 세계적으로 인정받을 만한 작가를 해외에 소개하는 것이다. 작년, 갤러리 페로탕 파리 본점에서는 박서보 작가의 대규모 개인전을 열었다. 그는 한국에서 유명한 작가지만 세계 시장에서는 ‘젊은 작가’에 속한다. 박서보 작가가 큐레이팅한 한국의 작가 3명을 소개한 전시를 열었으며 정연두 작가의 전시를 선보이기도 했다. 매년 전 세계 주요 아트페어에 나가는데 최근에는 정창섭 작가를 자주 소개하고 있다. 박서보나 이우환, 정창섭이나 정연두 정도의 실력을 가진 아티스트라면 얼마든지 함께할 생각이 있다. 이런 활동을 통해 작가는 물론 한국 미술을 세계에 알리는 데도 일조했다고 생각한다.

어떤 기준으로 함께할 작가를 선택하는가?
독창적 미감이 있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고 작가의 열정과 에너지를 눈여겨본다. 25세에 요코하마 비엔날레에서 무라카미 다카시를 처음 만났는데 둘 다 영어를 못해 쩔쩔맸다. 파리에 돌아와 종이에 질문 3개를 적어 팩스를 보냈더니 그가 전전긍긍하며 11장의 종이에 그림을 그려 답으로 보내왔다. 당시에도 그는 도전하고 싶은 것이 많았고, 열정도 대단했다. 이런 의욕이 있어야만 계속해서 새롭고 다양한 작품을 선보일 수 있다.

마우리초 카텔란을 포함해 20년 가까이 함께하는 작가도 많다. 아티스트와 오랫동안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비결이 뭘까?
21세에 갤러리를 시작할 때부터 ‘아티스트 우선주의’를 고수하고 있다. 실현 불가능할 것 같은 요구도 어떻게든 들어주려 노력한다. 이탈리아 출신의 아티스트 파올라 피비는 동물을 모티프로 실험적인 작품을 하는데 좀 더 특별한 작품을 제작하고 싶어 해 아예 말 한 마리를 끌고 파리 에펠탑에 갔다. 파리 시의 승인을 얻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각고의 노력 끝에 허락을 받아냈고 작가는 에펠탑에서 뛰노는 말의 모습을 사진 작품으로 남길 수 있었다. 도록 제작에도 공을 들인다. 두세 차례 전시 경력이 쌓이면 카탈로그 레조네(전작도록) 수준으로 두꺼운 책자를 만든다. 도록 작업을 전문으로 하는 인력을 따로 두며 인쇄는 벨기에의 한 아트 북 전문 출판사에서 한다.

당신이 발굴한 아티스트를 거론할 때 데이미언 허스트도 빼놓을 수 없다. 많은 아티스트가 당신과 오랫동안 함께하지만 이 ‘슈퍼스타’는 데뷔와 동시에 당신을 떠났다.
20대 때 그와 두 차례 전시를 선보였다. 첫 번째 전시에서 그는 참수된 두상 사진을 걸어 관람객을 놀라게 했다. 이후 포름알데히드가 가득 찬 수조 안에 상어를 집어넣는 프로젝트를 하고 싶어 했는데 내가 감당하기에는 제작비가 너무 많이 들었다. 아마도 그는 현대미술사에서 가장 빨리 성공한 작가 중 한 명일 거다. 나와 두번 째 전시를 한 지 얼마 안 돼 그는 세계적 스타 작가가 됐다. 소속 작가로 함께하진 않지만 그와 나는 무척 친밀한 관계다. 멕시코에 있는 그의 별장에서 함께 휴가를 보내기도 한다.

데이미언 허스트 작품은 섬뜩하고 해괴하다. 언론과 인터뷰를 하며 사진을 찍을 때도 혀를 내미는 등의 괴상한 포즈를 취하곤 한다. 일상적 대화를 이어나가기가 쉽지 않을 것 같은데….
하하. 그는 굉장히 좋은 사람이다. 유머러스하고 아량도 넓다. 유명세를 얻기 전 그는 무척 가난했지만 도와주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들 만큼 열정적이었다. 그의 작품 세계를 상징하는 삶과 죽음이라는 키워드는 그가 18~19세 때부터 천착하던 주제였다. 그의 어머니가 시체 안치소에서 일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관심을 갖게 됐다고 한다.


베르사유 궁전에서 열렸던 무라카미 다카시의 전시. Takashi Murakami, “Flower Matango (d)”, 2001-2006, Fiberglass, iron, oil paint and acrylic 315 × 204,7 × 263 cm / 10,33 × 6,7 × 8,63 feet © 2001-2006 Takashi Murakami/Kaikai Kiki Co., Ltd. All Rights Reserved. photo : Cedric Delsaux - The Hall of Mirrors / Château de Versailles Courtesy Galerie Perrotin


인체 조각 시리즈로 유명한 자비에 베이앙 역시 갤러리 페로탕의 전속 작가다. Xavier Veilhan, View of the exhibition Xavier Veilhan Flying V at Perrotin Paris, from September 7 to September 23, 2017. Photo: Claire Dorn © Veilhan / ADAGP, Paris, 2017. Courtesy Perrotin


파리에 있는 갤러리 페로탕의 전경. Façade of Perrotin, Paris. Photo : Guillaume Ziccarelli. Courtesy Perrotin
21세에 거주하던 아파트를 전시장으로 꾸며 갤러리를 시작했다. 별다른 전시 이력도 없고 자본이 많은 것도 아니었는데 어떻게 작가를 설득하고 갤러리 규모를 키울 수 있었나?
당시 거주하던 집 규모가 140m2였다. 전시를 열기에는 좁아 접이식 침대를 갖다 놓고 살았다. 매일 아침 침대를 접어 한쪽으로 밀어놨다. 돈이 없어 한동안 컵라면과 콜라만 먹기도 했다. 당시 내게 가장 중요한 일은 작가를 찾는 것이었다. 내가 처음 갤러리에 입문했을 때만 해도 컴퓨터를 잘 다루는 사람이 없었다. 갤러리나 작가 모두 포트폴리오 관리를 주먹구구식으로 할 때라 작가들이 모이는 클럽을 찾아다니며 안면을 트고 컴퓨터를 이용해 일일이 아카이브를 만들어줬다. “나도 부탁한다”며 아티스트가 하나둘 찾아오기 시작했다.

미술업계에서 일하는 이들은 대부분 배운 것도 많고 재력도 상당하다. 대학도 안 나오고 자본금도 많지 않다는 것이 콤플렉스가 되지는 않았나?
한국에 ‘금수저’란 표현이 있던데 나는 이 경우와 거리가 멀다. 가방끈도 짧고 가진 것도 없었다. 하지만 허세를 부린 적은 없다. 포커 용어 중에 ‘블러프bluff’라는 단어가 있다. 속임수를 써서 내가 가진 패를 상대방이 과대평가하거나 과소평가하도록 만드는 건데 나는 그런 짓을 절대 하지 않는다. 영어를 좀 더 잘했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은 지금도 하지만 환경을 탓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기회로 작용한 것도 사실이다. 미술 관련 지식이 많은 갤러리스트는 어떤 작가의 작품을 보면 많은 경우 이렇게 얘기한다. “이 작품은 OO 작품과 비슷하다”, “옛날에 이런 사조가 유행한 적이 있다” 블라블라블라…. 지식이 오히려 독이 되는 거다. 나는 그런 걸 잘 모르기 때문에 본능적 감각에 의존해 작가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는데 반복해서 하다 보니 동물적 감각이 생겼다.

2009년 바젤 아트 마이애미에서 선보인 파티는 지금도 회자될 만큼 이슈가 됐다.
당시는 2007년 터진 미국발 경제 위기로 전 세계가 몸살을 앓던 때였다. 많은 갤러리가 ‘혹독하고 긴 겨울’을 예상하며 긴축 경영에 돌입했다. 왠지 모르겠는데 지금이 아니면 평생 갤러리를 키울 기회가 오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갤러리 부스에서 무라카미 다카시가 다이아몬드를 사용해 만든 보석 조각 ‘The Simple Things’를 선보인 뒤 큰 배를 빌려 파티를 하고 콘서트도 두 차례나 열었다. 미국의 가수이자 프로듀서인 퍼렐 윌리엄스는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세 곡을 열창했다. 무라카미의 작품은 20억 원이 넘는 금액에 팔렸다. 전 세계 최고의 화상 중 한 명인 래리 가고시언도 우리 부스를 찾았다.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됐느냐고 했더니 “다들 돈을 안 쓰니 갈 데가 있어야지”라고 말하더라.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파워 컬렉터를 거느리고 있는데 이들에게는 어떤 혜택을 주나?
파워 컬렉터가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은 좋은 작가와 작품이다. 이를테면 베르사유궁전에서 열리는 자비에 베이앙과 무라카미 다카시의 전시에 초대받는 것은 그 어떤 이벤트보다 만족도가 높다. 지금은 매년 10월, 파리에서 열리는 아트페어 피악FIAC 준비로 바쁘다. 파리의 유명 호텔 크리용Hôtel de Crillon을 통째로 빌려 전 세계 파워 컬렉터 200여 명에게 훌리오 레 파르크Julio Le Parc, 로랑 그라소Laurant Grasso, 대니얼 아샴Daniel Arsham을 소개할 것이다.

음악을 좋아하고 뮤지션들과 관계가 좋아 콘서트를 자주 여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퍼렐 윌리엄스, 아케이드 파이어Arcade Fire 등 함께하는 가수와 밴드가 많다. 한국에서는 KAWS 오프닝 파티에 지 드래곤과 프라이빗 클럽 파티를 열기도 했다.

갤러리스트로서 보람을 느끼는 때는 언제인가? 반대로 회의를 느끼는 때는?
자비에 베이앙이 베르사유궁전에서 전시회를 열 때 진행한 인터뷰만 160번이 넘었다. 무라카미 다카시는 카타르 도하에서 전시를 열었는데 전시 공간을 아예 우리가 원하는 크기로 만들어버렸다. 작가들이 많은 기회를 얻고 흡족해하는 모습을 보면 언제나 기분이 좋다. 나의 커리어나 작가 선택, 전시 퀄리티에 관해 호사가들이 안 좋은 이야기를 하거나 지식을 뽐내며 심기를 건드릴 때면 잠시 기운이 빠지기도 하지만 크게 신경 쓰진 않는다.

파리에 새집을 마련했다고 들었는데 거실에는 어떤 작품울 걸었나?
박서보, 정창섭, 앙스 아르퉁Hans Hartung, 베르나르 프리즈Bernard Frize 등의 작품이 걸려 있다. 예전에는 거실에 작품을 아예 걸지 않았는데 집에 오는 사람들이 그 작품을 ‘진짜’ 좋은 것이라고 생각해 자신에게 팔라고 했기 때문이다(웃음).

본인이 생각하는 진정한 럭셔리는 어떤 것인가?
지금 가진 것을 즐기고 누릴 수 있는 시간! 전시를 준비하다 보면 몇 날 며칠 밤을 새워가며 아이디어를 내고 작품을 설치할 때가 있다. 그렇게 열정적으로 준비해 전시를 오픈하는데 막상 결과물을 차분히 돌아볼 시간은 없다. 바로 다음 프로젝트를 시작해야 하기 때문이다. 최근 남프랑스 페레곶Cap Ferret 해안가에 별장을 마련했다. 3월에 태어난 아들, 파트너와 함께 그곳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 왔다. 앞으로도 이런 시간을 최대한 자주 가지려고 한다.

디자인하우스 [LUXURY 2017년 10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