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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미나라 이종기 대표

"우리도 이제 국격에 맞는 술을 만들어야 할 때"

프랑스의 와인, 영국의 위스키, 일본의 사케처럼 나라마다 그 나라를 대표하는 술이 있다. 누군가 한국의 대표 술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우리는 어떤 술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오미나라 이종기 대표가 우리 술 만들기에 도전한 것도 바로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다.


이종기 오비맥주, 두산씨그램, 디아지오코리아를 거쳐 영남대학교 식품공학과 교수를 역임한 국내 술 제조 분야 제1의 권위자. ‘패스포트’, ‘썸씽스페셜’, ‘윈저’, ‘골든 블루’ 등으로 한국 프리미엄 위스키의 제조 실력을 인정받은 그는 우리나라의 대표 술을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2008년부터 경북 문경에서 재배한 오미자로 ‘오미로제’ 스파클링 와인과 스틸 와인, 브랜디 ‘고운달’을 연달아 내놓았다. 사과증류주 ‘문경바람’까지 성공시킨 그는 올 하반기 좀 더 저렴하게 맛볼 수 있는 오미자 스파클링 와인을 선보일 계획이다.
40대 이상인 사람이라면 만 스무 살을 넘기고 가장 먼저 마셔본 ‘양주’가 ‘패스포트’와 ‘썸씽스페셜’일 것이다. 평소 위스키를 즐겨 마시지 않는다고 해도 ‘윈저’나 ‘골든 블루’의 이름은 한번쯤 들어봤을 수 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신제품이 쏟아지고 트렌드가 바뀌는 요즘에도 여전히 우리나라 대표 위스키로 손꼽히는 이 술들을 만든 이가 바로 오미나라 이종기 대표다. ‘우리나라 최초의 마스터 블렌더’라는 이 대표의 수식어는 2008년부터 경북 문경에서 오미자, 사과로 만든 와인과 증류주를 연달아 내놓으며 ‘우리 술 명인’으로 바뀌었다.

스코틀랜드에서 공수한 위스키 원액을 블렌딩해 한국형 프리미엄 위스키를 만들던 그가 갑자기 우리 술 제조에 나선 이유는 무엇일까? “1990년부터 2년 동안 스코틀랜드의 헤리엇 와트 대학원에서 양조 증류학을 공부했습니다. 이때 가장 답답하게 느꼈던 부분이 우리나라에는 왜 내세울 만한 우리 술이 없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프랑스 학생이 와인과 샴페인, 일본학생이 사케를 자국의 술이라고 가져와 자랑할 때 나는 과연 무엇을 내세울지 혼란에 빠진 것이죠. 술을 만드는 사람으로서 한국산이라고 내세울것이 없다는 게 정말 자존심 상했습니다.”

이후 귀국한 이 대표는 쌀, 보리, 수수, 옥수수, 감, 배, 포도, 사과, 구기자, 오미자까지 곡류와 과일, 약재류를 가리지 않고 술을 만들었다. 여러 번의 실패와 긴 발효 과정 끝에 성공을 거둔 재료는 오미자였다. 달고, 쓰고, 시고, 짜며, 매운 5 가지 맛을 지닌 오미자는 짙은 빨간색과 독특한 향을 갖춘 개성 있는 와인 ‘오미로제’가 되었다.


오미로제 전까지 이종기 대표의 술은 모두 위스키였다. 그런데 오미자로 와인을 만들었다. 자신의 대표 주종을 바꾼 데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정부의 국빈 대접이나 국제 행사에서 만찬주나 건배주로 막걸리를 사용하는 것을 보고 안타까웠다. 개인적으로는 막걸리를 좋아하지만 그것은 등산을 갔다 내려오거나 힘들게 일을 한 다음 칼칼해진 목을 축이는 용도로 알맞은 것이지, 주요 행사에 어울리는 술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조선시대 왕명의 출납을 관장하던 승정원에서 매일 취급한 문서와 사건을 기록한 <승정원일기>를 보더라도 궁중에서 사용한 술은 대부분 청주와 약주 등의 맑은 술이었고, 탁주를 쓴 것은 철종이 유일하다. 자리에 어울리는 고급스러운 우리의 술을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건배의 자리에 알맞은 와인을 제조하기로 한 것이다. 2011년 오미로제를 처음 내놓았는데 2012년 열린 서울 핵안보정상회의 특별 만찬에서 세계 각국의 정상들에게 제공하는 만찬주로 채택되면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주류 전문가 대상의 오미로제 테이스팅에서는 스파클링 와인에 대한 반응이 특히 좋았다. 첫맛은 톡 쏘는 새콤함이 느껴지는데 점차 부드럽고 은은한 맛과 향만 남아 마치 고급 샴페인을 마신 듯하다. 기포도 예상보다 오래 올라와 파워가 느껴졌다.
오미로제 스파클링 와인은 산뜻하고 거침이 없으며 섬세하게 올라오는 버블을 만들기 위해 상파뉴 지역의 전통 샴페인 제조법으로 만들었다. 거꾸로 비스듬히 세워서 효모 등 찌꺼기를 병 입구로 모으는 리들링riddling을 해 급속 냉동시켜 제거한 다음 그 양만큼 와인을 보충하는 톱 업top up 처리로 깔끔한 스파클링의 특성을 구현할 수 있었다.

최근 전통주가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으면서 어떤 술을 전통주라고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의견도 분분하다. 뚜렷한 정의가 없이 제조 방법, 주류의 원료, 발효 방식 등에 따라 나누다 보니 그 범위가 모호하다. 이종기 대표가 만드는 우리 술과 전통주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전통주가 유행이라고 하기 전에 진짜 전통주가 무엇인가하는 의미부터 살펴봐야 한다. 전통주란 그 지역에서 나는 전통적인 원료를 가지고, 전통적인 제조 기술로 만든 술이라고 생각한다. 둘 중 하나만 만족시킨다면 그것은 아류일 뿐이다. 오미나라의 술도 오미자를 재료로 하지만 와인과 브랜디로 만들었으니 엄격하게 말하면 전통주가 아니다. 이런 술은 지역 특산주라고 하는 것이 옳다.

인터뷰 전 기획재정부 차관이 문경을 방문해 오미나라를 찾았다고 들었다. 그가 이곳에 온 이유는 무엇이었나?
경북 지역 6차 산업 추진 상황을 파악하고 의견을 듣기 위해 방문했다. 경북 문경에는 사과와 오미자를 생산하는 농가가 많다. 오미자의 전국 생산량 중 40%가 이곳에서 난다. 예전에는 대구 사과가 유명했지만 이제는 지구온난화로 과일 생산 지역이 북쪽으로 올라가고 있다. 머지 않아 이 지역에서 나는 사과가 드물어질 것으로 우려된다. 우리나라 농가는 대부분 바로 먹을 수 있는 생과만 심고, 사과도 잘 팔리는 품종인 부사를 주로 재배한다. 하지만 점차 생과 소비가 줄어들면서 남아도는 물량이 많아지고 있다. 생과를 냉장 창고에 넣어도 신선하게 보존하는 한계는 6개월이다. 보존성과 부가가치를 높이려면 과
일로 술을 만드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이런 지역 특산주 판매 진흥에는 6차 산업 활성화가 최적의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좋은 술과 제대로 된 술 문화는 사회를 더욱 성숙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잊힌 한국의 전통 음주 문화를 되살리고 글로벌 음주 에티켓을 보급하는 데에도 우리의 고급 술이 훌륭한 역할을 할 것이다.”

이 대표도 과일로 술을 만드는 것에 여러 번 실패했다고 들었다. 달고 시원해서 먹기에 좋은 과일이 술로 만들면 밋밋하다고 했는데 이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수 있겠는가?
좋은 술은 그 지역에서 나는 재료를 사용한다. 와인은 두말할 것도 없고 사과로 유명한 프랑스 노르망디에 가면 사과를 원료로 한 브랜디 칼바도스 제조 공장이 1000개가 넘는다. 다양한 품종의 과일을 생산하는 것은 물론, 그 과일에 맞는 술 제조법을 개발하는 것이 우선 과제이다. 처음 오미자로 와인을 만들 때도 특유의 천연 방부제 성분 때문에 발효 자체가 쉽지 않았다. 오랜 시간이 걸려 발효에 맞는 효모를 찾아내니 그만의 풍미가 일품이었다. 생과에 적합한 품종뿐 아니라 술로 만들 수 있는 품종을 개발한다든지, 발효와 숙성에 대한 연구를 지원한다든지 하는 적극적인 지원이 절실하다.

전통주가 새로운 트렌드로 급부상하고 있지만 호리병 모양이라거나 학 또는 용 문양을 투박하게 새기는 등 패키지가 세련되지 못한 면이 많다. 젊은 소비자나 해외에서 더 큰 호응을 얻고 성공을 거두려면 패키지 역시 주목해야 할 부분 아닌가?
사실 우리 같은 영세한 사업체에서 병 디자인까지 생각하기는 쉽지 않다. 술의 특성에 맞는 병을 구하지 못하거나 레이블 디자인의 완성도 때문에 제품 출시가 늦춰지는 경우도 허다하다. 별도의 마케팅 비용이 없어 레스토랑이나 행사를 진행하는 업체에서 주문이 오면 내가 직접 물건을 챙겨 서울로 올라가는 실정이다. 오미로제 스파클링 와인 병은 생산량이 적다 보니 국내 공장에서 제작을 거절했고, 할 수 없이 이탈리아에서 전통 샴페인 보틀인 에페르네 병을 들여왔다. 오미로제는 브랜드 디자인 전문가 손혜원 대표의 협력을 받았고, 고운달은 코스맥스 그룹 이경수 회장이 달항아리와 편병 모양을 융합한 디자인을 완성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신제품을 준비할 때마다 패키지 디자인에 대한 고민이 크다. 올 하반기에 출시하는 세컨드 라인의 스파클링 와인도 협력업체와 논의해 곧 디자인을 결정할 예정이다.

지난해 선보인 고운달은 프리미엄 브랜디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특히 ‘고운달 백자’는 초콜릿과 과일, 허브 향이 풍부하고 부드러운 목 넘김이 인상적이어서 프리미엄 위스키 못지않다는 평이다. 하지만 500ml 한 병의 가격이 40만 원에 육박해 너무 비싼 것이 아닌가 하는 지적도 있다.
고운달은 무농약이나 유기농으로 재배한 문경 오미자 와인을 만들어 3년 동안 숙성한 다음 증류하고, 다시 3년 동안 숙성시킨다. 시간이 오래 걸리는 만큼 맛과 향에 있어 부족함이 없다. 달항아리에서 숙성한 맑은 술 고운달 백자는 한 모금 마시면 부드러운 맛과 향긋함에 감탄하게 되고, 오크통에서 숙성해 황금빛을 띠는 ‘고운달 오크’는 오미자 본연의 맛과 향에 위스키처럼 오크 향이 밴 것이 특징이다. 고운달은 증류 과정에서 1년에 원액의 약 5~10%가 증발된다. 평균 증발량이 2%인 스카치위스키에 비해 3~5배 많은 양이다. 프리미엄 위스키나 그랑 크뤼 와인도 한병에 30만 원이 넘는 제품이 많은 것을 보면 500ml 기준 36만 원이라는 가격도 설득력이 있지 않을까.

주류 브랜드는 술에 맞는 전용 잔이나 음식과의 매치 등 가장 맛있게 먹는 법을 제안하기도 한다. 고운달을 즐기는 가장 좋은 방법을 제안해준다면?
둘 다 알코올 도수 52%이지만 싱글 몰트위스키처럼 물이나 얼음에 희석하지 않고 스트레이트로 천천히 즐길 것을 권한다. 선물 패키지에 10ml의 전용 잔을 함께 구성한 것도 느긋하게 여유를 가지고 술을 마셨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담은 것이다. 고운달이나 오미로제를 어디서 구해야 하는지, 어떻게 마실 수 있는지 물어보는 이들이 많았는데 전문 매장이 없어 지금까지는 전화 주문이나 행사장에서 판매하는 것이 전부였다. 올 2월 서촌에 오미나라에서 만든 모든 술을 테이스팅할 수 있는 ‘라운지 담’이라는 공간을 만들었다. 술에 어울리는 요리도 함께 제안해 좀 더 쉽고 편하게 우리 술을 맛볼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유기농과 무농약으로 재배한 경북 문경의 최고급 오미자 와인 오미로제가 새로운 패키지 디자인을 입은 ‘오미로제 결’로 출시되었다.


최고급 오미자 증류주‘고운달’은 이종기 대표의 새로운 시그너처 제품이 되었다. 도자기에서 전통 방식으로 숙성한 ‘고운달 백자’와 오크통에서 숙성해 오크 향이 가미되고 갈색빛을 띠는 ‘고운달 오크’ 2가지가 있다.

오미로제와 고운달로 성공을 거두었지만 이종기 대표 하면 여전히 윈저와 골든 블루가 자동으로 떠오른다. 이종기 대표에게 두 위스키는 어떤 의미인가?
1980년대부터 해외 출장을 다니면서 나라마다 음주 문화가 확연하게 다르다는 것을 알았다. 위스키 한 잔, 맥주 한 잔 시켜 한 모금씩 음미하면서 몇 시간씩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과 몇 병씩 쌓아두고 밤새 달리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술 마시는 양부터 현저히 다르다. 유럽이나 북미 사람들은 술을 천천히 즐기는 반면 우리는 급하게 들이붓는다. 그럼 우리나라 사람에게는 알코올 도수를 낮추고 맛과 향을 가볍게 하는 것이 정답이다. 한번에 마셔도 부담스럽지 않은 술을 생각하다 보니 한국식 위스키를 제조하게 되었다. 20년 전에 개발한 윈저가 국내 위스키 시장에서 여전히 1위를 차지하는 것도, 2009년 만든 골든 블루가 쟁쟁한 위스키들을 제치고 2위가 된 것도 모두 기쁘고 뿌듯하다.

폭탄주나 파도타기 등 우리나라 접대 음주 문화는 늘 논란이 되곤 한다. 술을 만들고 판매하는 입장에서 음주 문화의 정착을 위해 정부와 제조・판매업체에서 어떤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술은 처음 접하는 시기의 교육이 가장 중요하다. 우리나라 청소년 조사에 따르면 처음 술을 마신 나이가 보통 초등학교 3~4학년이고 늦어도 중학생이면 80~90% 이상이 음주 유경험자로 나온다. 문제는 부모에게 배우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 또래 집단에서 술을 처음 마신다는 것이다. 돈이 많지 않으니 좋은 술로 시작하는 것도 아니다. 어린 학생들에게 제대로 된 술 문화를 알려주는 교육이 절실하다. 무조건 술을 마시지 말라고 할 것이 아니라 술은 무엇이며, 술을 마시면 신체와 정신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정확한 사실을 알려줘야 한다. 어려서 제대로 배워야 나이가 들어도 큰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음주 교육만으로 술 문화가 정착될 수 있을까?
금주령 시대의 미국 사회 변화를 연구한 저서 <드링크Drinks>를 보면 1920년부터 1933년까지 금주령이 내려진 13년 동안 미국 사회는 폭력이 난무하는 등 엄청난 혼돈 상태였다. 좋은 술과 제대로 된 술 문화는 사회를 성숙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우리나라도 일제강점기와 1960년대의 빈곤기를 거치면서 고유의 술문화가 잊힌 것이다. 2005년 충주에 세계술문화박물관 ‘리쿼리움’을 세운 것도 한국의 전통 음주 문화를 되살리고 글로벌 음주 에티켓을 보급하기 위해서였다. 제대로 뿌리 내린다면 우리의 술 문화도 한층 성숙해질 수 있을 것이다. 술 한잔이 지닌 품격을 모든 이가 공감하면 좋겠다.

디자인하우스 [LUXURY 2017년 4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