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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재즈페스티벌 김지연 대표

10년간 재즈 밴드 80팀을 무대에 세운 여자

‘로열 팬!’ 공연업계에서 서울재즈페스티벌의 팬들에게 붙인 이름이다. 올해로 11회째를 맞는 이 음악 축제의 블라인드 티켓과 얼리버드 티켓은 오픈 1분 만에 매진된다. 몇 년째 이어지는 기록이다. 세계적 재즈 뮤지션들은 서울 공연에 맞춰 아시아 투어 일정을 잡는다. 이 새로운 규칙을 만든 이가 김지연 대표다.


김지연 중학생 때부터 심야 라디오를 들으며 새로운 음악과 아티스트를 섭렵했다. 자연스럽게 공연 기획사 쪽으로 진로를 잡았고 2007년 서울재즈페스티벌을 선보이며 서울을 ‘재즈 공연의 메카’로 만들었다. 지난 2003년 서울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중국 장이머우 감독의 <투란도트> 공연 때는 추진사무국 총괄 실장을 맡았다. 재즈, 팝, 가요, 클래식 등 모든 음악을 가리지 않고 듣는다.
서울재즈페스티벌(이하 서재페)의 인기를 확인하다 보면 서울이 오래전부터 재즈의 고향이었던 것만 같다. 서울이 재즈와 별 상관없는 도시란 걸 모르는 외국인이 보면 서울을 아시아의 뉴올리언스 같은 도시라 상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서재페의 면면은 놀랍다. 팻 메시니, 마크 론슨, 조지 벤슨, 데이미언 라이스 등 세계적 거장이 무대에 오르고 라인업이 결정되기도 전에 3000여 장의 티켓이 팔려나간다. 뮤지션들에게 서재페는 만나고 싶던 선후배, 동료와 조우하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선배 뮤지션에게 얼굴을 붉히며 사인을 받는 이도 있고, 즉석에서 합동 공연을 선보이는 이도 있다.

서재페 최고의 무기는 막강 출연진이다. 세르지우 멘지스, 어스 윈드 앤드 파이어, 킹스 오브 컨비니언스, 칙 코리아, 허비 행콕, 그레고리 포터, 제이미 컬럼…. 날씨 좋은 5월 올림픽공원에서 펼쳐지는데 너른 잔디밭에 메인 무대가 세워지고 그 옆쪽으로는 유명 자동차 브랜드의 라운지가 마련된다. 한쪽에서는 다양한 장르에 걸친 ‘음악 덕후’의 강연이 열리고 또 다른 곳에서는 요리 코너가 선을 보인다. 캔 맥주 하나 손에 쥐고 음악소리에 맞춰 몸을 흔들며 음식을 먹는 재미는 짜릿한 순간으로 오랫동안 기억된다. 이 충성도 높은 페스티벌을 기획하고, 키운 이가 김지연 대표다. 공연기획 전문 업체인 프라이빗 커브의 대표이기도 한 그녀는 뮤지션들과의 끈끈한 관계를 무기 삼아 2007년에 서재페를 론칭했다. 많은 이가 “고생길이 훤하다”고 했지만 서재페는 2회부터 손익을 넘기며 한국을 대표하는 음악 축제로 자리매김했다.

서재페는 순수 창작 뮤직 페스티벌입니다. 음악을 보통으로 좋아해서는 기획하기 힘든 축제인데 음악에 대한 열정이 원래 남달랐나요?
중학교 때부터 음악 듣는 걸 좋아했어요. 심야 라디오를 들을 때는 아예 녹음기와 메모장을 준비해두고 레코딩했다가 다음 날 반복해서 들었지요. 음악 노트에는 새로 알게 된 가수와 노래를 정리해놓고요. 그 노트가 아직도 있는데 리스트가 어마어마해요. 혹시 <전영혁의 음악세계> 아세요? 2013년에 20주년 앨범도 발매했는데 대중적인 노래 말고 그 가치에 비해 저평가된 음악이나 실험적인 곡을 많이 들려줬어요. 제겐 바이블 같은 프로그램이지요.

그러다 자연스럽게 공연에도 관심을 갖게 된 겁니까?
공연 기획안을 만들어 광고 기획사에 보낸 적도 있어요. 광고 기획사라니, 뜬금없지요? 공연업계 사정을 모르니 그런 쪽에서 공연을 기획하는 줄 알았어요. 답장도 받았습니다. “관심이 있으니 좀 더 구체적인 기획안을 보내달라”는 내용이었지요. 덜컥 겁도 나고 어떻게 아이디어를 발전시켜야 할지도 모르겠어서 그냥 “감사합니다.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편지만 보냈지요. 혼자 기획한 것 중에 ‘풀 문Full Moon 콘서트’도 있었어요. 보름달 뜨는 날에 야외 콘서트를 하는 거죠. 재미있겠다 싶었는데 외국에서는 풀 문을 ‘늑대로 변하는 날’이라고 받아들이더라고요. 거기서 막혀 또 포기했죠. 틈날 때마다 음악을 듣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런저런 무대를 떠올렸던 것 같아요. 스스로 목숨을 끊는 뮤지션이 많았을 때는 너무나 마음이 아파 ‘나에게로 떠나는 음악 여행’ 같은 걸 해보면 어떨까 싶었어요. 자신을 좀 더 소중하게 생각하면 세상을 등지는 이들이 줄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었어요.

한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사람들에게는 내공이 훌쩍 올라간 결정적 시기가 있더라고요. 대표님에게도 그런 시기가 있었는지요?
1990년대 초, 대학을 졸업하고 공연 기획사에 들어갔어요. 일은 행복했지만 음향 시스템과 장비에 관해 모르는 게 너무 많더라고요. 고민 끝에 회사를 그만두고 뉴욕으로 떠났습니다. 8개월 정도 머물면서 낮에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그렇게 번 돈으로 저녁에는 공연을 보러 다녔어요. 세계적 뮤지션들의 라이브 공연도 많이 보고요. 뉴욕 근교에서 공연이 있을 때는 새벽 기차를 타고 떠나 버스로 갈아타고 가서 공연을 본 후 밤늦게 귀가하곤 했지요. 그때 U2, 마돈나, 엔싱크, 스팅 같은 슈퍼스타들의 공연을 다 봤어요. 뉴욕 라디오 시티 뮤직 홀에서 했던 콜드 플레이 첫 공연도요. 어찌나 풋풋하고 싱그럽던지…. 슈퍼스타가 된 그들을 볼 때마다 공연을 본 추억이 생각나 기분이 좋아요.

1990년대라면 다양한 장르에서 슈퍼스타가 쏟아지고 미국의 음반 유통 산업이 전 세계에 걸쳐 맹위를 떨치던 시기네요. 당시 뉴욕에는 ‘특이한’ 페스티벌도 많았지요?
헤비메탈을 대표하는 보컬 오지 오스본이 기획한 ‘오지 페스티벌’이 있었어요. 블랙 사바스 같은 하드록 밴드가 나오는 축제인데 현장에 갔더니 웃옷을 벗어 던지고 가슴과 팔뚝에 문신을 한 마초들만 있더라고요. 여자는 저 혼자였어요. 롱아일랜드에 있는 존스 비치에서 열리는 축제도 생각나요. 바닷가 앞에 만든 무대에서 비치 보이스, 에어로스미스 같은 밴드가 공연을 펼쳤지요. 뉴욕에서 기차와 버스를 갈아타며 장시간 이동할 때도 많았어요. 기차역에는 10대 청소년들이 널브러져 있었지요. 저를 보고 어린 동양 여자라 생각해 까불까불 이것저것 캐묻기에 “나, 너희보다 한참 누나거든” 하고 쏘아붙였습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서재페에 관해 이야기를 해보지요. 뮤지션을 초청할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준이 있습니까?
전년도에 활동이 많았거나 올해 많을 뮤지션 위주로 1차 리스트 업을 합니다. 그다음에는 ‘이 뮤지션이 혁신적이고, 새로운 음악을 들려주나?’ 자문하면서 선택지를 좁혀가지요. ‘새로운 음악을 하는가’하는 부분은 무척 중요해요. 그런 뮤지션이라야 만 관중 사이에서 기대가 생기고, 이슈가 되기 때문이지요. 그런 뮤지션들은 서재페에 참가한 다른 아티스트에게도 영감과 자극을 줍니다. 선순환의 시작점 같은 거죠.

서재페의 프로그램을 보면 ‘아, 이거 재미있겠다’ 싶은 독특한 구성이 많아요.
어떻게 하면 더 새롭고, 남다른 프로그램을 구성할까 고심합니다. 그런 고민 끝에 선보인 것이 허비 행콕과 칙 코리아의 협연이었지요. 무대에 피아노 2대를 놓았고, 막강 재즈 아이콘들은 즉석에서 호흡을 맞춰가며 환상적 멜로디를 들려줬지요. 이런 프로그램은 평소 보기 힘든 것이라 관객 만족도도 높았어요. 함께 앨범을 발표한 토니 베넷과 레이디 가가의 협연도 추진했는데 성사가 안 됐습니다. 이런 거물급은 출연료가 비싸 섭외가 쉽지 않지요.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3년째 연락하고 있습니다. 비비 킹과 에릭 클랩턴이 함께하는 무대도 계획했어요. 역사적 공연이 될 수 있었지만 논의 중 비비 킹이 작고하면서 더 이상 진행할 수가 없었습니다.

서재페에는 세계적 재즈 뮤지션들이 앞다퉈 내한합니다. 비결이 뭔가요?
음악 관련 매체와 방송, 인맥을 총동원해 끊임없이 뮤지션들의 근황을 업데이트합니다. 새 앨범이 나오고 나서 부랴부랴 연락을 하면 이미 늦어요. 미리 섭외가 끝나 있어야 하죠. 막대한 출연료를 지급하고 데려올 수 있을 만큼 예산이 많은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항상 안테나를 세우고 열심히 추진하는 수밖에 없어요. 올해 5년 만에 내한하는 애시드 재즈 밴드 자미로콰이도 그렇게 섭외했어요. 새 앨범이 나온다는 정보를 미리 입수한 덕에 서재페를 중심으로 한 아시아 투어를 제안할 수 있었지요. 세계적 뮤지션을 섭외하는 것은 쉽지 않아요. 모든 것이 장기전이에요. 지금은 서재페가 외국에까지 알려져 “이런 공연을 선보이고 싶습니다” 하고 제안하면 대부분의 뮤지션이 일정을 살피며 진지하게 고민해줍니다. 서재페 라인업이 확정되면 일본과 대만, 저 멀리 호주까지 추가 콘서트 논의가 이뤄지고요.

페스티벌의 개최 시기를 5월로 잡은 것도 주효했습니다. 완연한 봄, 야외 잔디밭에서 듣는 재즈라니,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집니다.
서재페 전까지 재즈 뮤지션들의 내한 공연을 추진하는 방법은 하나였어요. 아시아에 있는 다른 공연업체와 공연 일정을 공유한 후 기획사 측에 서울 투어를 타진하는 거지요. 재즈 뮤지션들이 아시아를 가장 많이 찾는 시기는 3월이었어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열리는 자바 재즈 페스티벌을 중심으로 말레이시아, 태국, 싱가포르 등이 자국 콘서트 일정을 짰지요. ‘우리도 3월에 해야 할까?’ 고민을 많이 했어요. 여러 기획사와 함께 진행하며 뮤지션 초청 비용을 n분의 1로 나누면 되니까 경비도 아낄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끝내 마음이 동하지 않았어요. 온전히 홀로서기를 해야 한다는 게 걱정됐지만 밀어붙였습니다.

서재페는 첫 번째 행사에서부터 강렬한 느낌을 줬어요. 제1회 페스티벌 라인업에 팻 메시니 트리오가 있는 걸 보고 놀란 기억이 납니다.
서재페의 주최사인 프라이빗 커브에서는 매년 다양한 콘서트를 선보입니다. 해외 뮤지션 공연도 자주 올리지요. 팻 메시니와도 그렇게 오랫동안 인연을 맺어왔습니다. 덕분에 서재페를 한다고 했을 때 흔쾌히 출연을 수락해주었지요. 인연보다 중요한 것은 섭외부터 출연료 지급까지 모든 과정을 정확하게 하는 거예요. 지금껏 뮤지션들에게 한 번도 일과 관련해 실수한 적이 없어요. 계약 전까지는 개런티 등을 놓고 협상을 하지만 계약서에 사인을 한 다음에는 철저하게 약속한 대로 모든 일을 진행합니다. 출연료를 깎기 위해 매달리는 일도, 지급 기한을 늦추는 일도 없습니다. 일처리를 정확하게 하지 않고 대충 어떻게 넘어가겠지 하는 마음가짐을 정말 싫어해요. 사소한 것 때문에 큰일을 망칠 수 있거든요. 아티스트를 배려하는 자세도 중요해요. 공항에 도착했을 때 얼굴이 안 좋으면 “어디 아프냐, 밥은 먹었냐?” 물어보고 해줄 수 있는 게 없을지 살핍니다. 시간이 갈수록 작은 것들의 중요성을 알게 되는 것 같아요.


서재페를 찾은 허비 행콕과 칙 코리아


서울재즈페스티벌의 흥겨운 현장
국내에서 열리는 뮤직 페스티벌의 관객 대부분은 20~30대지요. 서재페에도 젊은 층의 관중이 많은 것 같은데 어떤가요?
다양한 연령대의 팬들이 축제를 즐기지만 해외 재즈 페스티벌과 비교하면 연령층이 낮은 편이지요. 사실 재즈는 중・장년층이 좋아하는 음악인데 회사와 가정생활에서 오는 부담감 때문에 하루 이틀을 통째로 빼기가 쉽지 않은 것 같아요. 마음의 여유가 없는 거지요. 우리 부모 세대가 열심히 일해 살 만한 나라를 만들어준 덕분에 요즘 젊은 친구들은 콘서트도 보러 다니고 페스티벌도 즐길 수 있게 됐어요. 서재페에 온 외국 뮤지션들은 잔디밭에 모인 관중을 보고 깜짝 놀랍니다. 어린 친구들이 워낙 많으니까. 뮤지션과 관객이 나누는 교감은 최고예요. 서재페에 오는 뮤지션 중엔 실험적 음악을 하는 이들이 많은데 젊은 친구들이 환호를 해주니 감격적이고 기운이 나는 겁니다. 전 세계 어느 재즈 페스티벌에서도 이런 기분을 느끼기는 쉽지 않지요.

1회 공연의 무대가 세종문화회관이었다는 것도 인상적입니다. 작은 무대에서 시작해 점점 큰 무대로 옮기는 것이 일반적인데 말이죠.
첫 번째 행사를 치르기에는 분명 큰 규모였지만 또 너무 작으면 뮤지션을 섭외하기가 어려워지는 측면도 있어요. 이왕 하는 거 제대로 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요. 세종문화회관이란 큰 무대를 잡은 만큼 최대한 세세한 부분까지 챙겨 다음에도 다시 찾고 싶은 축제를 만들자는 것이 내부 약속이었어요. 그런 마음으로 무료 와인 서비스를 진행했습니다. 서재페를 찾은 이들이 좀 더 대접받는 기분을 느끼고, 또 기분 좋게 공연을 즐겼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거든요. 와인업체와 협약을 맺고 진행했는데 2800~3000석 정도라 큰 문제 없이 비교적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올림픽공원으로 무대를 바꾼 지금은 하루 관람객이 몇 만 명에 이르다 보니 더 이상 진행을 할 수 없어요. 가능한 많은 혜택을 드리고 싶은데 아쉬운
마음입니다.

어떤 일을 시작하는 데 있어 가장 큰 적은 자기 의심이지요. 성공하리란 확신이 있었습니까?
공연 때문에 한국을 찾은 칙 코리아를 배웅하러 갔다가 “저 올해부터 서울재즈페스티벌 할 거예요”라고 말했더니 “너, 음악 축제 끌고 가는 거 쉽지 않다. 최소한 7년은 고생해야 할 걸” 하더라고요. ‘7년? 너무 길잖아. 어떡하지? 내가 사고를 친 건가?’ 하고 걱정이 되더라고요. 물론 확신은 없었지만 ‘잘될까?’ 걱정하는 대신 ‘최고의 공연을 만들어봐야지’ 하는 의욕이 넘쳤던 것 같아요.

다양하고 맛있는 음식 덕분에라도 서재페에 가는 것이 즐겁다는 분이 많습니다.
흥겨운 축제에 맛있는 음식이 빠질 수 없잖아요. 먹는 문제는 언제나, 모든 경우에 중요한 부분이지요. 서재페 현장에 오면 셰프들이 그 자리에서 직접 조리한 요리를 맛볼 수 있어요. 사전 예약을 하면 좀 더 편안한 자리에서 가족이나 연인끼리 식사를 하는 것도 가능하지요. 맥주와 나초처럼 축제에 빠질 수 없는 음식도 열심히 준비합니다. 와플에 요거트를 잔뜩 올린 음식을 선보이고 싶은데 직원들이 업체 섭외가 쉽지 않을 것 같다며 반대해 못하고 있어요. 영국의 한 음악 페스티벌에 참가했다가 이 음식을 접했는데 너무 맛있어서 3일 내내 이것만 먹었거든요. 직원들이 반대하면 ‘그래 알았어’ 하고 순순히 포기할 때도 많답니다(웃음).

올해로 11회째인데 지금껏 가장 기억에 남는 무대를 꼽는다면요?
7회 때 서울을 찾은 데이미언 라이스의 무대요. 킹스 오브 컨비니언스가 공연할 때부터 슬슬 비가 내리기 시작하더니 그가 무대에 올랐을 때는 폭우로 바뀌었어요. 관중 손에 들린 맥주잔에도 빗물이 차고 넘쳐 맥주를 마시는지, 빗물을 마시는지 모를 정도였지요. 데이미언 라이스는 그런 날씨에 ‘블로어스 도터The Blower’s Daughter’를 열창했고 사람들은 빗물에 젖은 채 ‘떼창’을 했습니다. 지금껏 회자되는 최고의 순간이지요.

데이미언 라이스는 서울재즈페스티벌의 아이콘 같은 존재지요. 2013년, 2014년 2년 연속 헤드라이너로 나섰고 작년에도 공연장을 찾았습니다. 그와 나눈 소소한 추억이 많을 것 같습니다.
그의 첫 앨범 를 들은 직후부터 섭외를 시작했어요. 덕분에 월드 투어 콘서트를 하지 않을 때였는데도 기꺼이 서재페를 찾아주었지요. 작년에는 뮤지션 대기실에서 함께 멤버들 양말과 속옷을 갰어요. 할 말이 있어 들어갔더니 빨래방에서 가져온 옷가지가 수북하게 쌓여 있더라고요. 한 장 한 장 차곡차곡 개키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습니다. 더 깊은 정이 쌓였어요.

뮤지션마다 체크리스트와 요구 사항이 천차만별이지요. 기억에 남는 것이 있으신지요?
몇 년 전부터 최고의 남자 재즈 가수로 우뚝 선 그레고리 포터요. “술은 단 한 병도 안 보이게 해달라”고 요청하더라고요. 함께하는 밴드의 멤버 중 한 명이 애주가라 술만 보이면 공연을 앞두고도 마신다는 거예요. 음주 후에 하는 연주가 좋을 수도 있지만 그 반대일 수도 있어 이동하는 모든 곳에서 아예 술이 안 보이도록 신경을 썼습니다.

곧 제11회 서재페가 열립니다. 최근 3차 라인업을 발표했는데 꼭 챙겨보면 좋을 무대가 있다면요?
애시드 재즈 밴드 자미로콰이와 소프라노에서 부터 알토까지 모든 음역대를 소화하는 재즈 디바 다이안 리브스 공연은 꼭 봐야 해요. 신예 뮤지션들의 무대도 기대해주세요. 특히 세실 맥로린살반트! 지난해 그래미 어워드에서 올해의 재즈 앨범상을 수상한 여성 재즈 보컬리스트인데 음악을 갖고 논다고 할 정도로 실력이 뛰어나요. 도레미파솔라시도의 느낌과 색깔이 부르는 노래마다 다 달라요. 클래식부터 재즈까지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실력파 바이올리니스트 겸 싱어송라이터 강이채도 눈여겨보세요.

10년을 넘긴 시점에서 서재페를 찾는 관객들이 이 음악 축제를 어떻게 느끼고, 생각했으면 좋겠는지요?
공연을 보고 나서 “아, 참 좋았다. 좋은 여행지에 다녀온 것 같다” 하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았으면 좋겠어요. 현장에서 찍은 사진을 보면 그날의 음악과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떠오르고요. 앞으로도 그런 축제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최고의 음악 축제를 선보인 대표님이 생각하시는 진정 럭셔리한 삶이란 어떤 걸까요?
생각만으로도 행복한 것이 있는 삶이요. 그 대상과 더 푹 빠지면 좋겠지만 여건상 그렇게 못하더라도 상관없어요. 꿈을 갖고 있다는 것만으로 행복할 테니까요. 좋아하는 순간을 더 자주 갖기 위해 노력하는 삶은 모두 멋진 것 같습니다.


디자인하우스 [LUXURY 2017년 5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