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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의 고전적 경계를 뛰어넘은 디자이너 3

경계 없는 디자이너



디자인을 디자인하는 남자
P/P/S 구병준 대표 구병준 대표의 커리어를 한 문장으로 소개하기란 쉽지않다. 예술·디자인 콘텐츠 기획 및 컨설팅 회사 P/P/S의 대표, 리빙 편집숍 챕터원의 대표이자 상품 기획자, 다양한 디자인 전시를 선보여온 전시기획자가 모두 그의 직함이다. 디자인 이슈를 다루는 일이 지금처럼 일상적이지 않던 10여 년 전. 전통적인 파인 아트의 장이던 미술관에 디자인의 거장을 초청하고 서울 옥션에 디자인 경매를 처음 도입하는 한편, 본격적인 ‘빈티지 디자인’ 시장을 개척한 주역이 바로 구병준 대표였다. “대학에서 4년 동안 산업디자인을 공부했는데 졸업할 때 무엇을 배웠는지 떠올려보니 기억나는 건 ‘기술’뿐이더라고요. 정작 디자인의 원론적인 부분은 건드리지도 못한 기분이었어요. 디자인을 평생의 업으로 삼으려면 체계적으로 배우는 것이 좋을 듯해 유학을 떠났죠.”


1 인테리어에 포인트를 주는 오브제나 화병으로 활용 가능한 ‘아트데코 1920 블랙’. 2 직선을 교차한 디자인이 돋보이는 실용적인 선반 ‘엘 셀프LShelf’. 3 이탈리아 천연 소가죽 누벅 스킨으로 제작한 실내 슬리퍼. 앞트임이 짧아 발등을 넉넉히 감싸는 디자인이 특징이다. 4 10명까지 둘러앉을 만큼 넉넉한 상판과 심플한 하단 디자인이 특징인 ‘아 따블르A Table’. 
네덜란드에서의 유학생활은 발상을 전환하는 동시에 당시 여러 모로 뒤처져 있던 한국의 디자인 현실을 자각하는 계기가 됐다. 귀국 후 디자인 스튜디오가 아닌 갤러리의 문을 두드린 것은 시대 흐름에 맞는 디자인을 보여주고 싶은 바람 때문이었다.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한가람 미술관에서 <디자인 메이드>라는 타이틀의 첫 전시를 기획했어요. 디자이너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낸 전시였죠. 당시 한국에는 디자인 전시를 기획할 수 있는 인적 자원이 전무했고, 미술관 역시 디자인을 다뤄야 할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었어요. 디자인에 대한 인식 자체를 바꿔야 하는 상황이었죠. 어찌 보면 당시의 한국 실정이 지금 제가 하고 있는 여러 일들의 계기를 만들어준 거죠.”


도예 작가 권나리의 컬래버레이션으로 탄생한 ‘스틸 라이프’ 머그. 
갤러리 전시와 다양한 기획을 통해 디자인 작품도 잘 ‘팔릴’ 수 있다는 걸 직접 확인한 그는 고객과 디자이너의 접점을 진지하게 고민해나갔다. 특히 단순히 보고 감상하는 전시에서 그치지 않고 실질적인 구매로 연결하는 다양한 방식을 만들어내는 일에 집중했다. ‘프로덕트Product’, ‘프로젝트 Project’, ‘스페이스Space’의 첫 글자를 한데 모은 ‘P/P/S’를 회사 이름으로 내걸고 디자인을 통해 수익을 만들고 싶어 하는 개인과 기업을 위한 길잡이 역할을 하는 한편, 전공이던 산업디자인을 포괄하는 여러 작업도 이어가고 있다. 그 대표적인 결과물이 아내와 함께 운영 중인 리빙 편집 숍 ‘챕터원Chapter1’ 의 자체 브랜드 ‘스틸 라이프Still Life’ 시리즈다.

“정물화를 의미하는 ‘스틸 라이프’라는 이름처럼 챕터원만의 정물화를 구현하고 싶었어요. 21세기를 대표하는 ‘정물화’를 선보인다는 개념으로 공간 구성과 작품에 대해 고민합니다. 대표적인 제품이 ‘바이블 노트’예요. 성경책과 같은 재질이지만 내지는 빈 종이로 채웠고, 십자가를 X자 형태로 살짝 돌려 표지를 장식했어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개념이 아닌, 이미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데이터를 제거하거나 변형하는 방식으로 디자인에 접근한 거죠.” 스틸 라이프의 제품은 구병준의 디자인 콘셉트에 각카테고리마다 일가견이 있는 디자이너와 생산자의 손길을 얹어 완성한다. 일종의 협업 개념 브랜드인 것. 디자인 제품을 판매하는 것을 넘어 한국의 재능 있는 디자이너를 발굴해 소개하고, 그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목표다. 그래서 그는 스틸 라이프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경계 없는 디자인’이라 말한다. “‘디자인 기획자’라는 직업이 없던 시절, 타인에 의해 이 호칭으로 불리던 때가 있었어요. 시대가 변하면 또다시 타이틀도 달라질 텐데, 저 역시 어떤 방향으로 발전하게 될지 예측하기 어렵네요. 현재 진행 중인 제품 디자인, 전시 기획, 컨설팅을 기반으로 자연스럽게 관심사를 확장해갈 생각입니다.”



일상의 감각을 디자인하다
엘리펀트 디자인 김원선 대표 엘리펀트 디자인은 그래픽디자인을 기반으로 다양한 기업 비즈니스 활동을 총괄 지원하는 디자인 전문 에이전시다. 아트 디렉팅, 브랜딩, 편집, 광고, 웹 디자인, 인테리어디자인에 이르기까지 전방위 크리에이티브 영역을 다룬다. 코끼리의 몸집처럼 크고 많은 일을 할 수 있다는 의미를 담은 회사명처럼 지난 10년간 차곡차곡 축적한 경험과 인프라로 활동 영역을 꾸준히 넓혀왔다. 록 페스티벌과 영화제 포스터부터 친숙한 브랜드의 브로슈어와 웹사이트, 대중적인 아티스트의 앨범 재킷, 디톡스 주스 바와 퍼블리싱 스토어까지 엘리펀트 디자인은 우리의 시선과 손길이 머무는 일상 곳곳에 스며 있다.

1인 회사로 시작해 현재 25명의 직원이 일하는 기업으로 성장한 엘리펀트 디자인을 이끄는 김원선 대표는 일러스트레이터와 그래픽 디자이너로 활동하다 2006년 자신만의 회사를 열었다. 11년째 아트 디렉팅을 도맡고 있는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 작업을 비롯해 아디다스 플래그십 스토어 오프닝 디자인, 리바이스 501 행사 아트 디렉팅, 하이네켄 007 프로모션 디자인, ‘렛츠락 페스티벌’ 아트 디렉팅, 컨버스 홍보물 제작 등 다양한 작업을 통해 활기차고 유연한 감각을 선보였다.


엘리펀트 디자인이 한남동에 직접 운영하고 있는 주류 바 ‘2E’의 내부 전경. 
그래픽과 아트 디렉팅 작업을 주로 진행하던 엘리펀트 디자인이 공간과 브랜딩 등 전혀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복잡 미묘한 맛으로 마니아층을 두텁게 형성하고 있는 진gin ‘몽키Monkey 47’을 정식 수입하면서였다. “디자인 작업의 대부분은 호기심에서 시작하는 것 같아요. 몽키 47의 경우 개인적으로 정말 좋아하는 술인데 국내 유통사가 없어 직접 수입까지 하게 된거예요. 이후 주류에 대한 관심이 더 커져 한남동에 ‘2E’라는 이름의 바bar도 오픈했죠. 이전에 클라이언트 중심의 일을 하면서 완전하게 채울 수 없었던 다양한 창작 욕구를 우리만의 공간 속에 담아보고 싶기도 했고요. 공간 디자인과 마케팅, 브랜딩으로 이어지는 종합 디자인 시스템을 구축하는 새로운 실험이라는 점에서도 저희에게 의미가 큰 작업입니다.”

2E를 통해 새로운 디자인의 가능성을 확인한 엘리펀트 디자인은 작업 영역을 점차 확장해 현재 7개의 자체 브랜드 공간을 운영 중이다. 그중 대중의 피드백이 가장 활발한 브랜드는 ‘쥬시JUICY’와 ‘콜라주 하우스 collagE HOUSE’. “유기농 채소와 과일을 재료로 만드는 디톡스 주스 숍 쥬시는 해외 진출을 준비하기 위해 얼마 전 경리단에 있던 본점을 서초구 내곡동으로 이전했어요. 여러 분야의 잠재력 있는 아티스트가 작업한 포스터와 매거진을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퍼블리싱 스토어 콜라주 하우스는 카페라는 카테고리를 유지하되 전시 등 다양한 문화 활동을 할 수 있는 곳으로 공간의 성격을 굳혀가고 있고요.”


1 ‘2016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 포스터. 2, 3, 4 정재형 4집 앨범 <르 쁘띠 피아노Le Petit Piano>, 뜨거운 감자의 프로젝트 앨범 <시소>, 김윤아 솔로 3집 앨범 등 간결하면서 함축적인 디자인 성향이 잘 드러나는 다양한 앨범 재킷 작업. 
엘리펀트 디자인의 작업 전반을 관통하는 디자인 스타일 혹은 지향점을 묻는 질문에 김원선 디자이너는 말한다.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디자인을 추구합니다. 직원들에게 디자인적으로 ‘반 보’만 앞서가자는 말을 자주 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예요. 새롭지만 생경하지 않은 일상의 디자인이 목표인 거죠. 디자인이 유행을 반영하는 데만 급급하다 보면 생명력이 짧아진다고 생각해요.” 디자인 회사라는 정체성에 충실하면서도 재미있고 잘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도전할 준비가 돼 있다는 김원선 대표. 가까운 미래에는 ‘생명력이 오래 유지되는 디자인’이라는 회사의 철학을 반영한 컨템퍼러리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를 새롭게 선보일 예정이다.




그래픽디자인과 순수 미술의 경계를 달리다
테이블 유니온 김영나 디자이너 김영나 디자이너가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은 “작가인가 디자이너인가?”이다. 2013 두산연강예술상 미술 부문 선정, 2014년 문화체육관광부 선정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수상, 미술 공간 커먼센터 운영위원, 브루노 비엔날레와 타이포 잔치를 포함한 국제 행사의 큐레이팅 등 그의 활동은 디자인과 미술의 경계를 가로질러 달리는 듯하다. 최근에는 두산갤러리 레지던스 프로그램차 뉴욕에 머물다 돌아왔다. “경계에 대한 질문을 자주 받지만, 제 정체성을 그래픽 디자이너로 소개하는 입장은 언제나 변함없습니다. 같은 작업도 주체가 순수 미술 작가인지, 디자이너인지에 따라 관객이 전혀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카이스트에서 제품 디자인, 홍익대학교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한 후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예술 학교 베르크플라츠 티포흐라피Werkplaats Typografie에서 유학한 김영나 디자이너. 재료와 형태, 흑백의 조화에 매력을 느껴 그래픽디자인을 시작한 그는 자신의 감각을 기반으로 다양한 분야의 시각적 균형을 조율하는 작업을 통해 관심의 영역을 확장해왔다.


2014년 두산갤러리 서울에서 진행한 개인전 <선택 표본Choice Specimen> 작품 설치 전경.
“처음 그래픽디자인을 시작했을 때는 활자 하나하나를 신중하게 종이 위에 얹는, 문자를 신성하게 대하는 작업 태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매체의 특징에 따라 타이포그래피를 다채롭게 활용하고 표현하는 방식에 더 관심이 가요. 평면 종이뿐 아니라 입체 공간을 채우는 작업을 진행하면서 사람이 그 속에서 체험할 수 있는 경험의 중요성을 중점적으로 고려하게 됐죠.” 그래픽디자인과 전시 기획, 커머셜 공간의 아트 디렉팅을 아우르는 그의 작업은 ‘소통을 통한 기획력’을 기반으로 한다. 많은 이가 함께 둘러앉아 의견을 나누고 의사를 결정하는 ‘테이블’을 스튜디오 이름으로 내건 것으로도 그의 작업 성향을 파악할 수 있다. “주어진 상황에 대해 논의하고 해결책을 제시하는 일에 흥미를 느껴요. 작가가 외부의 이슈를 재료 삼아 오롯이 자신의 관점에서 이야기한다면 디자이너는 외부와 끊임없이 주고받은 의견을 토대로 작업을 발전시키고 변화해간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과정에 몰입해서 즐기다 보니 자연스레 그래픽디자인을 넘어서는 작업을 진행할 기회가 만들어진 것 같아요.” 다양한 클라이언트와의 작업에서 디자인뿐 아니라 콘텐츠 기획까지 포괄적인 아트 디렉팅을 도맡아온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김영나 디자이너가 기획·디자인 전반을 아트 디렉팅하고 프로파간다에서 발행한 <그래픽 Graphic> 매거진. 
“함께 일해온 클라이언트의 대다수는 저를 기본적으로 콘텐츠 생산이 가능한 사람으로 대합니다. 예를 들면 패션 브랜드 코스COS의 첫 단독매장 오픈에 맞춰 기획한 ‘코스 스페이스 프로젝트’는 ‘텅 빈 상자에 뭘 채워야 할지 모르겠다’는 클라이언트의 주문에서 시작했죠. 디자이너의 역할은 물론 사람을 모으고, 기획하고, 전반적인 판을 꾸리는 전시 기획자의 몫까지 기대한 거예요. 앞으로도 이렇게 함께 일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저를 협업의 대상자로 바라본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 같습니다.” 수집하는 물건에서 작업의 영감을 받는다는 김영나 디자이너는 출장길에 틈틈이 사 모은 스티커와 종이, 테이프를 펼쳐 보인다. 간격과 형태, 색깔이 각기 다른 스티커는 사무용품 섹션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견출지가 대부분이다. “서로 다른 규칙을 찾아내려는 노력이 작업을 위한 훈련이 돼요. 이미 정의 내려진 것들을 자르고 붙이는 과정을 통해 발견하는 새로운 질서를 보며 희열을 느끼기도 하고요. 시각적인 훈련을 하는 동시에 그 자체를 다른 프로젝트에 활용하기도 하죠. 취미일 수도, 혹은 진지한 작업일 수도 있는 소소한 활동 안에 제 디자인 전반을 관통하는 주제와 정의가 담겨 있어요.”

디자인하우스 [LUXURY 2017년 1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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