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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의 도시, 교토]

모던 주얼리에 담은 교토의 장인 정신

한국에는 ‘말은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은 서울로 보내라’는 말이 있는데, 여기에 하나를 더 추가해야 할 듯하다. ‘장인은 교토로 보내라’고. 교토는 오랫동안 일본의 수도로 왕족과 귀족들의 거처였고 정치와 경제, 문화의 중심지였으며, 부가 넘치고 자유로운 분위기 덕에 개성 있는 기업가와 장인들이 모여든 곳이었다. 건축과 공예, 음식과 옷, 학문과 유행 중 상당수가 교토 혹은 교토 장인의 손끝에서 만들어졌다. 일본 내에서도 교토 사람들은 다소 까다롭고 엉뚱하고 집요하며 창조적이란 평가를 받는데, 이것 역시 그런 장인 정신의 바탕이 될 것이다. 오랜 전통은 지금도 이어진다.

계측분석기를 만드는 시마즈제작소의 평사원인 다나카 고이치가 2002년 노벨화학상을 수상하면서 다시 한번 교토 기업에 관심이 몰렸다. 닌텐도, 교세라, 일본전산 등 세계적으로 경쟁력을 지닌 교토태생의 기업과 브랜드를 보면 남과 다른 독자적인 가치를 고집하는 개성파 오너, 무차입 경영, 특화된 기술을 기반으로 자기 분야의 최고가 되길 꿈꾸는 고집 등의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여기에 또 하나의 회사, 주얼리 전문 기업인 니와카를 추가해야 할 것 같다. 300년 된 소바집, 200년 된 찻집이 셀 수 없이 많은 이 전통의 도시에서 1983년 설립되었으니, 연륜만으로 따진다면 니와카는 ‘신인’ 중에서도 한참 신인이라 불러야 할 것이다. 하지만 교토를 대표하는 럭셔리 브랜드로 확고하게 자리를 잡았고 일본과 미국뿐 아니라 한국과 중국 등 전 세계에 독특한 미감을 선보이고 있다.

“공예와 미술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도예, 건축, 그래픽, 사진 등 모든 부분을 좋아했지요. 예술대학에 갈까 생각했는데 공부를 별로 열심히 하지 않아 결국 대학 입시에 실패했고 금속 장인으로 일을 하게 되었지요. 일을 할수록 ‘무언가 좋은 물건을 만드는 만족감’에 점점 더 빠져들었습니다.”
주얼리 학교를 다니며 간단한 액세서리를 만들다가 점차 자신이 좋아하던 공예, 건축, 디자인 그 모든 것을 한데 집결시킨 작지만 아름다운 주얼리에 매혹된 아오키 토시카즈靑木敏和 대표는 독자적인 크리에이티비티와 디자인을 실험하고 싶어졌다. 자신만의 브랜드를 만들어 독립을 결심하기에 교토는 가장 적합한 배경이었다. 실력과 솜씨만 있다면 안목 있는 사람들이 기꺼이 고객이 되어주는 도시. 천년을 이어오며 아름다움에 대한 동경이 DNA 속에 박혀 있는 도시.

“독립해서 처음 10년간은 굉장히 힘들었습니다. 초창기에는 먹고 자는 것 이외에는 일만했지요. 아니, 먹고 자기 위해 일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지도 몰라요.”
큰 고생 없이 커다란 성공을 이뤄냈을 것 같은 이 신사의 입에서 고생한 과거 이야기가 나오자 왠지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회사 이름이자 브랜드 이름인 ‘니와카俄’는 ‘갑자기’, ‘급히’, ‘돌연’ 등의 의미도 있지만 ‘다른 사람人’과 ‘나我’의 조화를 이룬 사회에서 좋은 물건으로 사회에 공헌하려는 바람이 담겨 있다. 그가 창업을 결심한 1980년대 중반은 일본의 경제력이 최고에 달한 시기였다. 그런데 모던하고 서양적인 것을 중시하던 당시 트렌드를 거슬러 그는 극히 일본적이고 동양적인 이름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역시 교토라는 분위기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오래된 노포老鋪의 느낌을 주고 싶었습니다. 늦게 시작했지만 한결같은 마음으로 무언가 만들어가는 브랜드. 지난 역사보다 앞으로의 미래가 더 유구하고 의미 있는 브랜드를 만들고 싶었어요.”


1 니와카의 모던한 해석이 돋보이는 제품으로 한자에서 모티프를 가져왔다.
2 다이아몬드와 핑크 사파이어가 고급스러운 광채를 선사하는 ‘나유타’ 라인.
3 연꽃과 연잎이 지닌 기품을 형상화한 ‘수련’ 라인 네크리스.


그의 바람대로 니와카는 주얼리 디자인 어워드에서 연속적으로 수상하며 고정 팬을 확보했고 최근 들어서는 매해 일본에서 발표되는 주얼리 브랜드 종합 평가에서 프랑스 등의 유명 브랜드를 누르고 3위에 랭크되었다. 정교하지만 대담하고 철학적인 동양의 정서를 담은것이 니와카, 아니 아오키 대표의 특징이다. 그와 그가 만든 회사는 교토의 장인 정신이 오늘날 어떻게 구현되는지 살필 수 있는 좋은 사례이기도 하다.


물건을 만드는 즐거움
“비즈니스로 시작한 것이 아니라 ‘물건을 만든다’는 생각에서 시작했다는 것이 다른 브랜드와 차이점이 아닌가요. 남과 비교할 필요 없이 나의 최선을 다해 최고를 만드는 것이 의미 있지요. 물건을 만드는 자부심과 품질에서는 결코 어떤 타협도 하지 않는 DNA가 이 회사에는 자리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장인 정신을 구현하는 브랜드를 만들고 싶은 마음입니다.”

주얼리 장인이자 디자이너 출신인 그이니 사업 전반에 디자인을 중시하고 장인 정신을 구현하려는 노력이 배어 나오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해 보였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니와카의 사옥. 지난 2009년 4월, 19세기 교토의 중심가였던 산조토리三鳥通り에 새로운 본사 건물을 열었다.


(왼쪽)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교토의 전통을 담아 설계한 사옥은 건축학도들의 필수 견학 코스.
(오른쪽) 니와카 교토 본사의 상징이 된 대형 설치 작품 ‘이부키’. 섬세한 비즈 조각들이 날씨와 채광에 따라 묘한 변화를 선사한다.


“지나치게 멋부리지 않아 간소하지만 우아하다고 할까요? 사옥을 만들면 안도 다다오에게 의뢰하고 싶다고 생각해왔습니다. 뮤지엄 혹은 미술관같은 분위기를 내는 동시에 비즈니스 공간으로서 활용도를 만족시키는일을 그라면 잘 해낼 것이라 생각했지요. 교토는 도시 전체가 미관 지구로 정해져 건물의 고도가 제한되며 차양과 격자라는 교토 고유의 요소를 모든 건축물에 녹여 넣어야 하는 규정이 있습니다. 그 조건을 만족시키며 새 건물을 짓는 것은 정말이지 쉽지 않은 도전이었어요. 물론 그러느라 엄청난 비용이 추가되었답니다.”

외관은 안도 특유의 노출 콘크리트로 처리했고 정문이 있는 건물 전면은 교토의 전통 격자를 넣어 온화한 느낌을 살렸다. 정문을 열고 들어가면 눈앞에 대리석 계단이 펼쳐지고, 내부에는 교토 특유의 인테리어가 곳곳에 숨어 있다. 공간을 구분하지만 단절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교토 건축의 특징인데, 이를 응용해 매장에는 답답한 스크린 대신 가느다란 브론즈로 발을 만들어 적절히 가리고 적절히 보이는것이 가능하도록 했다. 그 덕에 공간이 훨씬 넓어 보이는 효과를 만들어냈다.


(왼쪽) 널찍한 매장에서는 다른 고객을 신경 쓰지 않고 니와카와 루시에의 모든 제품을 만날 수 있다.
(오른쪽) 니와카를 상징하는 보라색 패브릭으로 장식한 매장 벽면.


벽에는 브랜드 컬러인 보라색의 당초 문양 패브릭을 사용했는데 교토 전통 방식으로 직조해 빛과 각도에 따라 다른 느낌이 들도록 했다. 매장 인테리어에 사용한 목재는 플라타너스. 특유의 은근한 색이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른 인상을 전한다. 지하부터 지상 4층까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이부키’는 ‘매달린 조각’이라는 컨셉트로 세계적으로 화제가 된 사와다 히로토시澤田廣俊의 작품이다. 열 성형한 수지로 비즈를 만들어 ‘매일매일 변하는 조각’으로 탄생시킨 이 작품은 높이 11미터, 폭 7미터에 이르는 규모를 자랑한다. 빛, 바람, 물, 대지를 상징하는 이 설치물은 시간과 계절에 따라 그 느낌이 달라지는 것이 특징. 이런 요소를 제외하곤 군더더기나 장식이 없는 깔끔하고 절제된 공간이다. 디테일한 배려는 매장에서 풍기는 향기와 꽃꽂이에서도 느낄 수 있다. 교토의 유명 향 전문점과 상의해 이곳에 가장 적합한 향을 만들어 사용하고 계절감을 느낄 수 있는 모던한 꽃꽂이로 손님을 맞는다.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 모두 행복한 선물

니와카의 주얼리는 매년 새로운 디자인, 기존 디자인의 재해석 등으로 다양하게 선보인다. 우주의 무한함을 주얼리로 표현한 ‘나유타’ 라인은 핑크 사파이어와 다이아몬드의 조화에 섬세한 세공으로 여성적인 매력을 강조한다. 안쪽을 투각한 독특한 디자인이 보석의 광채를 극대화한 것이 특징. 연꽃과 연잎을 모티프로 디자인한 ‘수련’ 역시 대담하지만 우아함을 잃지 않아 특히 인기를 누리는 라인. 넓은 매장 안에는 각 라인별로 디스플레이가 되어 있어서 다른 고객을 신경 쓰지 않고 편안한 쇼핑이 가능하다. 건물 앞 쇼윈도에는 니와카의 ‘플레지Pledge’ 라인 홍보가 한창이다. 제대로 프러포즈하지 않고 애매하게 청혼하는 요즘 남성들에게 ‘용기 내서 멋지게 청혼하라’고 응원하는 캠페인이다.

매장에서는 니와카뿐 아니라 세컨드 브랜드인 루시에를 만날 수 있다. 동양적이고 볼드하며 은유적인 니와카와 조금은 다른 브랜드를 생각하던 중 영국의 유명 여성 도예가 루시 리(Lucie Rie, 1902~1995)의 전시회에서 영감을 얻어 2002년, 세상에서 가장 희귀한 귀금속인 플래티넘난 솜씨를 지닌 장인들이 다양한 주얼리를 만들고 있다. 눈으로는 잘 보이지 않는 작은 다이아몬드를 촘촘히 박아 화려한 목걸이를 만들기도 하고, 반지를 조금 늘이고 싶다는 주문에 따라 잇거나 메운 흔적 없이 완벽하게 고객을 만족시키는 리세팅을 하기도 한다.

회사가 커지며 이제는 경영자로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아오키 대표에게 경영자로서의 삶과 주얼리 디자이너로 사는 삶에 관해 물었다. “연봉이야 경영자인 지금이 낫겠지만 만족감은 직접 무언가를 만들 때가 훨씬 높은 것 같습니다. 다만 이젠 생각의 변화가 일어나 혼자 만드는 것이 아니라 조직이 함께 만든다고 생각하고 있지요.” 좋은 직원을 뽑고, 이들이 다양한 의견과 아이디어를 내고 매일 더 나은 주얼리, 더 아름다운 주얼리를 만들도록 자극하며 격려하는 것이 이제 그에게 가장 중요한 일인 것이다.

(왼쪽) 니와카와 루시에의 주얼리들이 만들어지는 아틀리에. 강과 산이 한눈에 보이는 멋진 전망을 자랑한다.


(왼쪽) 아틀리에에서는 최고의 기술과 기계를 사용하지만 결국 그 완성도를 결정하는 것은 장인의 솜씨라고.
(오른쪽) 장인 정신과 교토의 전통에 관해 누구보다도 다양한 이야기를 알고 있는 아오키 대표.


“주얼리란 무엇일까, 우리 삶에서 어떤 의미가 있을까 자주 생각합니다. 그럴 때면 예전에 한 고객으로부터 받은 편지를 떠올리지요. 남자 친구에게 니와카의 반지를 선물받았는데, 그 후로 니와카 본사 건물 앞을 지나면 추억이 떠올라 행복해진다고 써 있었어요. 다이아몬드를 사서 행복해진다면 모든 사람들이 다이아몬드를살 것입니다. 하지만 그저 값비싼 물건을 소유했다고 행복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주얼리는 인생을 즐겁게 만들어주는 수단일 뿐입니다. 주는 사람의 따듯한 마음, 받는 사람의 감사라는 의미가 없다면 그저 비싸고 반짝이는 돌에 지나지 않을 겁니다. 주얼리를 통해 가장 소중하고 고귀한 마음을 담는 것이 이 일의 보람이지요.”

브랜드를 만들고, 뉴욕에 진출하고, 새로운 사옥을 건립하고…. 일 하나가 끝나면 또다시 새로운 일을 벌이는 사람. 하지만 앞으로의 바람은 조금 다르다고 한다. 나이가 좀 들어서 그런가 보다 하며 웃는다. “세상이 경쟁이나 싸움 없이 평화롭게 지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고, 더 많은 사람들이 삶에서 미의식을 추구했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지금 나의 위치에서 좋은 인생을 살고 싶은 마음도 있지요.” 아오키 사장을 만나며 그가 단호한 표정을 지은 것을 단 한 번 보았다. “납득하지 못하는 것은 진행하지 않는다. 허용 범위가 아닌 것은 행하지 않는다”는 말을 할 때였다. 그의 말을 들으며 너무 쉽게, 너무 자주 타협하고 대충 살아온 것 같아 마음 한 곳이 뜨끔했다.

교토의 정신을 이어가는 그에게 교토에서 가장 의미 있는 곳은 1001개의 불상이 자리한 산주산겐도三十三間堂다. 표정이 각각 달라 그 가운데 만나고 싶은 사람의 얼굴이 반드시 있다고 전해 내려오는 이 불상을 만들었던 옛날 사람들의 희망, 바람은 무엇이었을까? 무언가를 만드는 장인의 마음은 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았다. 그저 역사만 강조하는 거대한 박물관이 될 수도 있었던 이 도시를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어떻게 멋지게 변화시켰는지, 니와카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문의 512-6732, www.niwaka.com, www.lucie.jp

디자인하우스 [LUXURY 2011년 1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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