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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언 오피, 데이비드 걸스타인, 로메로 브리토, 마틴 크리드를 만나다

세계적 아티스트 4인의 서울 원정기

줄리언 오피, 데이비드 걸스타인, 로메로 브리토, 마틴 크리드…. 세계 현대 미술계의 확실한 블루칩인 4명의 아티스트가 최근 서울을 찾았다. 소리 소문 없이 비밀리에 왔다간 이도 있고, 공식 기자회견을 한 이도 있다. 그들의 작품을 보면 서울, 아니 전 세계가 왜 그들에게 매혹됐는지 단박에 알 수 있다.


줄리언 오피, “내 생애 최대 프로젝트였다”

현재 영국에서 가장 유명한 팝 아티스트로 꼽히는 이가 바로 줄리언 오피Julian Opie다. 오늘날 영국 현대미술의 부흥을 이끈 최고의 ‘아이돌 그룹’으로 평가받는 yBa(Young British Artist) 출신으로 데미언 허스트, 마크 퀸과 동문인 그는 전 세계를 무대로 눈에 띄는 활약을 펼치고 있다. 그의 작품이 주목받는 이유는 심플함과 모던함에 있다. 주요 작품 소재는 사람! 굵은 매직펜으로 쓱쓱 팔다리를 그린 후 눈도, 코도, 입도 없는 동그라미를 얼굴로 얹은 것 처럼 보이는데 무척 모던하고 감각적이다. 의상에 컬러를 입히기도 하는데 색상이 4~5가지를 넘지 않는다. 이 같은 이유로 그의 작품은 세련되고 미니멀한 픽토그램Pictogram(사물, 시설, 행위, 개념 등을 상징화한 그림 문자로 보여주는 것)이라 평가받는다. 이번 줄리언 오피의 서울 방문은 서울시와 모건 스탠리, 가나아트센터가 함께 준비 중인 초대형 프로젝트 때문이다. 서울역 맞은편에 있는 대우빌딩(지금 소유주는 모건 스탠리로 지난 2007년 9600억 원을 주고 매입했다)이 11월 서울 스퀘어란 이름으로 그랜드 오픈했는데 이를 기념하기 위한 첫 공공 미술의 주인공으로 그를 낙점한 것. 세계적 스타 작가는 가로 99m 세로 78m의 초대형 건물 외벽을 캔버스 삼아 걸어가는 도시인의 영상을 LED로 쏘아 올리는 작품을 기획했고, 사전 점검차 서울에 왔다. 시연 작업에 참여한 가나아트센터의 이정권 과장은 “거대한 크기의 사람들이 걸어가는 모습은 마치 오늘날 서울의 단면을 1000% 확대해놓은 것 같았다. 그 밑으로 지나가는 차량과 사람들을 보니 레고 병정처럼 작아 보이더라. 줄리언 오피도 “이런 작업은 처음이다. 대단하다”고 했다. 이번 프로젝트는 미디어 아트로는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로 현재 <기네스북> 등재를 준비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줄리언 오피의 영상 작품은 12월 1일부터 매일 저녁 6시부터 11시까지 매시간당 10분간 상영된다. 시간을 1시간에 10분씩으로 제한한 이유는 조명 자체가 워낙 밝아 빛 공해를 우려한 때문이라고.


He is 1958년 영국 런던 태생. 사진과 비디오 영상에서 영감을얻은 이미지를 컴퓨터를 이용해 선과 면으로 단순화하는 작업으로 새로운 팝 아이콘을 창조했다는 평을 얻고 있다. 눈, 코, 입이 있는 ‘제대로 된’ 얼굴과 동그라미만 덜렁 있는 얼굴 모두 그리는 데 서울 스퀘어 빌딩에 쏘는 이미지는 후자의 사람 이미지다. 영국 테이트 모던 미술관, 뉴욕 현대미술관, 도쿄 현대미술관 등이 그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데이비드 걸스타인, “이번에도 실패하지 않겠지?”
이스라엘 출신의 거장 데이비드 걸스타인David Gerstein의 서울 방문 역시 서울 스퀘어 프로젝트와 연계해 이루어졌다. 줄리언 오피가 건물 외관을 책임진다면 그는 빌딩 주변을 생동감 있게 바꾸는 작업을 맡았다. 그가 선정된 배경에는 “작품이 워낙 컬러풀하고 따뜻해 어디에 설치해도 좋다”는 평이 크게 작용했다. 한솔오크밸리, 자양동에 있는 주상 복합 빌딩 스타시티에도 작품이 놓여 있는데 반응이 좋다. 회화와 조각을 넘나드는 작가는 나무, 알루미늄, 스테인리스 스틸 등 다양한 소재를 사용한다. 목탄이나 연필 드로잉을 기본으로 컴퓨터 작업을 한 후 해당 소재를 레이저로 자르고 그 위에 색을 입혀 완성하는데 하트 표시, 구두, 입술, 꽃 등 일상의 것들을 모티프로 작업한다. 지난 10월 중순, 8박 9일 일정으로 서울에 온 그는 인터뷰 등 외부 일정을 일절 잡지 않고 현장에서 자장면과 김치찌개를 시켜 먹으며 작품 제작과 설치에만 매달렸다. 서울 스퀘어 빌딩을 정면으로 보고 왼쪽으로 들어가면 그 결과물을 확인할 수 있다. 가장 먼저 보게 되는 작품은 ‘라이더’! 자전거 타는 사람들을 표현한 8점의 작품은 자전거 색깔도, 사람들의 복장도 모두 파스텔 톤이라 주변이 활짝 피어나는 느낌이다. 화단 아래쪽 선큰sunken 플레이스에는 5m짜리 트리 작품을 세웠다. 흰 나뭇가지마다 형형색색의 나비가 앉아 있어 ‘나비들의 나무’처럼 보인다. 지하 1층에 있는 컨셉트 홀은 아예 한쪽 벽면 전체가 작품이다. 주제는 ‘사람들’. 약 21m 길이의 벽면에 쇼핑하는 사람, 전화 통화하는 사람, 데이트하는 커플 등 전 세계인의 다양한 일상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줄리언 오피의 작품이 한시적으로 선보이는 것과 달리 그의 작품은 이곳에 영구 설치된다. 데이비드 걸스타인 역시 가나아트센터 전속 작가다.


He is 1944년 이스라엘 출신으로 1960년대 중반 예루살렘의 브자렐 예술학교에서 그래픽 아트와 공예를 배운 후 파리 에콜 데 보자르, 뉴욕 아트 스튜던트 리그, 런던 세인트 마틴 스쿨 등 당대 최고의 현대미술 메카에서 차례로 수학했다. ‘OK Man’이라 불릴 만큼 낙천적인 성격으로 도시 풍경,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회화와 조각을 넘나들며 표현한다. 런던, 뉴욕, 로마, 앤트워프 등 전 세계 주요 도시 공원과 학교 도서관, 주상 복합 빌딩, 호텔 등에 작품이 놓여 있다.


로메로 브리토. “행복한 그림이 내게 슈퍼카를 사줬다”
“아쉽게도 서울에서 하루도 자지 못한다. 싱가포르, 도쿄로 다음 스케줄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청담동 오페라갤러리가 오픈 2주년을 기념해 마련한 국내 첫 개인전을 위해 방한한 로메로 브리토Romero Britto는 오전 11시경 서울에 도착해 오후 4시 경 모든 일정을 마치고 싱가포르로 날아갔다. 오페라갤러리 김영애 실장은 “그의 작품을 여러 점 소장하고 있는데 신작은 물론 로메로 브리토를 직접 만나보고 싶다는 컬렉터들의 요청이 많아 초청했다”라고 말했다. 스스로 “지독히 가난한 유년 시절을 보냈다”고 회상하는 작가는 지난해 12월 루브르 박물관에서 초대 전시를 할 만큼 세계적 작가가 되었다. 빌 클린턴,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 모나코의 알베르트 왕자, 데미 무어, 세계 최고 부호 중 한 명인 멕시코의 통신 재벌 카를로스 슬림 헬루 등이 그의 작품을 컬렉션한다. “엄청난 부자가 되었는데 지출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그는 “아름다운 집과 그림, 차에 관심이 많다. 특히 자동차 드라이브를 좋아해 페라리, 포르쉐, 벤틀리, 랜드로버, 머스탱 등 10여 대의 자동차를 갖고 있다. 로이 리히텐슈타인, 키스 헤링, 앤디 워홀의 작품도 소장하고 있다”라고 말한다. “부자가 돼 좋은 것도 많지만 진심을 가장해 접근하는 사람들 때문에 간혹 상처를 받는다”며 아쉬워하기도 했다. 그를 세계 최고의 아티스트로 성장하게 만든 동력은 ‘행복’이다.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려 머리 아프게 고민할 필요 없이 그저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행복한 그림! 뉴욕 파인아트 아카데미 대표인 일레인 구겐하임은 말한다. “브리토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흥겨움으로 어깨가 들썩인다. 브리토는 우리가 사는 세상을 축복과 환희의 장소로 바꾸어놓는 아티스트다.” 전시는 오는 12월 6일까지.


He is 1963년 브라질 출신으로 밝고 풍부한 색감, 유쾌하고 행복한 작품으로 스타 작가 반열에 올랐다. 보드카 앱솔루트와의 컬래버레이션으로 탄생한 ‘앱솔루트 브리토’가 히트를 치면서 이름을 알렸는데 이후 스웨덴 왕실이 그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음이 밝혀지면서 또 한 번 주목을 받았다. 500년 전통의 오스트리아 트라츠버그 성에서 개인전을 열고, 90년 역사상 단 한 번도 아티스트와 컬래버레이션을 한 적이 없는 벤틀리와 작업하는 등 매년 더욱 확고한 입지를 다지고 있다.


마틴 크리드, “저항도, 공감도 모두 관객의 몫!”
컬러풀하고 유쾌한 작품을 선보이는 앞의 세 작가와 달리, 이 작가의 작품은 산만하고 파격적이며 불편하기까지 하다. 조명은 30초 간격으로 껐다 켜지고, 한쪽 구석에는 각기 다른 박자로 세팅한 메트로놈이 ‘똑딱 똑딱’ 정신없이 움직인다. 빔 프로젝터 화면에서는 술에 취한 대학생이 구토를 하는가 하면, 다른 남성은 아예 엉덩이를 드러내고 앉아 ‘큰일’을 보는 충격적인 영상도 펼쳐진다. 작품에 제목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No.227’, ‘No.228’ 같은 워크 넘버가 전부다. 이 괴짜 아티스트는 영국 웨이크필드 출신의 개념미술 작가 마틴 크리드Martin Creed. 전시를 기획한 사무소Samuso 김선정 대표는 “마틴 크리드는 아직까지 국내에 생소한 이름이지만, 이미 세계 무대에서는 ‘Next yBa’로 주목받는 작가다. 꼭 한번 국내에 제대로 소개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는 2001년, 덩그러니 알전구만 깜박거리는 방을 설치해 영국 최고 권위의 터너상을 수상한 이래 매 전시마다 “과연 이것이 예술이 맞느냐?”는 논란의 중심에 서왔다. 녹슨 못, 구겨진 종이, 오케스트라 악기 등 일상의 소재를 사용하지만, 그가 창조한 세계는 낯설고 급작스럽다. 작가는 관객의 반응을 어떻게 생각할까? “관객이 내 의도에 맞춰 사고를 규정하길 원치 않는다. 나는 어떤 현상을 보여줄 뿐 자유롭게 편집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관객의 몫이다.” 작품만큼이나 자유분방한 답변이다. 그의 논리에 따르면 골목길 창가에 비치는 화분, 모퉁이 화단과 피아노 건반 침묵에도 예술이 존재한다. 조명을 껐다 켜고, 커튼을 여닫는 행위는 정확히 무엇을 원하고 선택해야 하는지 모르는 작가의 마음이자 모든 현대인의 고민이다.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개념미술의 현주소를 알고 싶다면 마틴 크리드의 개인전만큼 훌륭한 자리도 없다. 전시는 2010년 2월 12일까지 아트선재센터.



He is 영국 웨이크필드 출신으로 평론가들로부터 ‘최소한의 것으로 최대한의 사유를 끌어내는 작가’란 평을 받는다. “내 작품은 그 자체로 소우주다”라고 말할 만큼 독특한 그는 개념미술을 선택한 이유를 묻는 질문에 “나는 개념미술이라는 것을 해본 적이 없다”고 정색하는가 하면, “Next yBa로 평가받는다는 세간의 이목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는 “I’m ( yBa보다 어린) yyBa!”라고 위트 있게 화답했다. 그의 작품 워크 넘버는 현재 1200번에 달하는데, 가장 마지막 작품은 발레리나의 무용 동작을 5단계로 나눠 상영하는 퍼포먼스 아트다.


디자인하우스 [LUXURY 2009년 12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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