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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女, 女, 여보세요>전의 그림 속 여러 여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세상에서 최고로 멋진 여자를 찾습니다

얼굴이 예쁘면 절세미인으로 불리며 각광받던 때가 있었다. 복잡해진 세상에선 얼굴만 예쁜 것으로는 모자란다. 스타일, 지성, 말솜씨, 심지어 경제력까지 멋진 여자가 갖추어야 할 조건에 추가되고 있다. 복잡해진 조건을 다 갖추면 최고로 멋진 여자라고 단언할 수 있을까? 새롭게 추가될 멋진 여자의 조건은 무엇일까?


1 곽승용 작가가 자신의 작품 ‘오래된 미래’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그림 속 여인이 조앤 폰테인.

지난 6월 3일 김현주갤러리에서는 여성에 대한 다양한 접근과 해석, 표현을 살펴볼 수 있는 <女 女 여보세요!>전을 개최했다. 김동유, 김샨, 곽승용, 배준성, 이동재, 이호련, 임태규, 전상옥, 야노스 샤브Janos Schaab 등 작가 9명의 ‘여성’을 주제로 한 작품을 선보인 갤러리 안에는 다채로운 매력이 넘실대고 있었다. 이 시대 최고로 멋진 여성의 모습을 찾기 위한 장소로 제격인 듯했다. 전시 작가 중 여성의 특별한 매력에 천착해온 4명을 직접 만나 그들의 작품 속 여성 이미지와 매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고전미 넘치는 우아한 미인 곽승용
한복을 입은 우아한 미모의 서구 여인. 치마저고리는 마치 햇살 아래 얇은 커튼처럼 여인의 알몸을 어슴푸레하게 드러낸다. 작품마다 나오는 얼굴은 한 사람. 1930~40년대를 풍미한 할리우드 여배우 조앤 폰테인이다. 캔버스 속 그녀는 시선을 살짝 피한 채 부드럽게 미소 짓고 있다. 고전미 넘치는 우아한 분위기다. 그의 다른 작품에도 그녀는 어김없이 등장한다.

조앤 폰테인만 그리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얼굴은 영혼이 흐르는 통로이고, 제겐 창조적 실험의 대상입니다. 다른 여러 인물을 작품에 표현한 적도 있습니다. 그러나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의 영화 <레베카>를 보며 조앤 폰테인을 만난 후 직접 만나지 않더라도 잡지나 스크린 이미지를 통한 것도 만남의 한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계속해서 그녀를 그려왔습니다. 그리면 그릴수록 전에는 발견하지 못한 것이 하나씩 눈에 들어옵니다. 한 사람만 반복해 그리는 것의 장점이지요. <레베카>의 조앤 폰테인은 어딘가 신선한 느낌으로 다가왔고, 계속 바라봐도 지루하지 않더군요.

서양 여인인데 옷은 한복입니다. 보시다시피 한복을 입었지만 누드죠. 누드라고 하면 진부한 것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한복은 현대 미술에서 흔히 택하지 않는 소재인데 이를 통해 새로운 아름다움을 창조하고 싶었습니다. 온고지신이죠. 파리에서 유학할 때 “너희 것은 뭐냐?”고 묻는데 할 말이 없더군요. 제가 받은 미술 교육은 이미지도, 재료도 모두 서양식이었으니까요. 우리 것이 무엇인지 인식할 겨를 없이 그냥 받아들인 것이죠. 그래서 캔버스 대신 한지를 써보기도 했고요. 한복도 같은 맥락입니다.

한복을 통해 몸이 비쳐 보이는 건 어떤 의미인가요? 19세기 프랑스 화가 자크 루이 다비드는 “아름다움 이전에 먼저 진실을 표현하라”고 했습니다. 제가 매우 의미 있게 생각하는 말이죠. 가려진 것과 비쳐 보이는 것은 아름다움과 진실의 기준을 찾는 실험 과정 중 한 시도입니다.

한복과 누드의 매치는 발칙한 느낌도 드는데 실제로는 우아해 보입니다. 한복을 통해 비치는 누드는 일탈이라고 볼 수 있죠. 하지만 부드러운 선과 풍만함으로 우아한 여성스러움을 표현했습니다. 입었거나, 벗었거나 우아한 자태는 그대로입니다.

어떤 여성이 최고로 멋있다고 생각하세요? 여자다운 여자가 좋습니다. 남자인지 여자인지 헷갈리는 여성에게서는 멋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생김새나 자태나 행동 모두 부드럽고 우아한, 말 그대로 여성다운 여성이 가장 매력적입니다. 상냥하면 더 좋고요. 보수적이라고 할지 몰라도 아무튼 제 주관적 미의 기준은 그렇습니다.

곽승용은 홍익대 미대와 파리 8대학 조형예술대학원을 졸업했다. 현재 금호창작스튜디오 입주 작가로, 고전미 넘치는 서구 영화배우와 한복 그리고 누드라는 언밸런스한 매치로 부조화 속의 조화를 선보이며 독특한 회화 세계를 펼치고 있다.


2, 3 곽승용의 ‘오래된 미래’. 이 제목은 창작의 새로움을 과거에 찾았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다리가 매끈한 여자 혹은 모든 여자 이호련
분명 젊은 여자다. 팔랑거리는 짧은 치마를 입은 그녀는 스물네댓 살쯤 됐을 듯한데, 팔다리를 하느작거리면서 살포시 치마를 걷어 올린다. 걷어 올린 치마를 내리는 것 같기도 하다. 이호련은 주로 여성의 하체를 소재로 중첩된 이미지를 표현한다. 작품 속 여성은 얼굴이 보이지 않아 궁금증을 자아내고 야릇한 느낌이 든다. 대신 그녀의 감성이나 기분보다 중첩된 이미지가 주는 동작성에 더 집중하게 된다. 이호련이 말하는 이상적인 여성의 모습에는 독특한 탐미주의가 묻어난다. 그와 나눈 대화는 중첩된 이미지처럼 어쩐지 모호하게 느껴졌다.

왜 짧은 치마를 입은 여성의 하체인가요? 제 작품에서는 여성이라는 소재보다 ‘중첩overlapping’이라는 형식이 우선입니다. 두 겹, 세 겹 겹쳐서 모호한 이미지를 만드는 것. 새로운 회화를 고민하다가 이 형식을 탐구하게 됐죠. 얼굴?손?풍경 등을 다양하게 그려봤고, 지금처럼 짧은 치마를 입은 여성의 다리를 소재로 그리기 시작한 것은 2년 전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대상이고, 매력적이죠. 중첩된 이미지를 표현했을 때 효과적이고 훨씬 더 감각적입니다.


4 이호련 작가와 ‘중첩된 이미지’.

모두 치마를 살짝 걷어 올리고 있습니다. 야릇한데요? 큰 의미는 없습니다. 형식이 내용에 우선하기 때문에 작품 제목도 ‘치마를 올린 여자’가 아니라 ‘중첩된 이미지’입니다. 회화 작업 전 사진 촬영 단계를 거칩니다. 이미지를 겹칠 것을 예상하면서 같은 옷차림, 다른 포즈로 10~20컷을 촬영하죠. 그리고 컴퓨터로 작업한 후 캔버스에 옮깁니다. 촬영 작업은 참 매력적입니다. 글쎄요, 흑심이 있을 수도 있죠. 그림을 그릴 때는 잘 그려야겠다는 생각뿐입니다만.

어떤 여성이 가장 멋진가요? 다리가 매끈한 여자. 골반이 예쁜 여자.

그게 다인가요? 개인적 취향이죠. 이성에 대한 본능이기도 하고요. 특히 가벼워 보이는 납작한 신발을 신은, 다리가 예쁜 여자가 최고입니다. 이건 성욕과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시각적인 아름다움을 갈구하는 탐미 행위라고 할 수 있죠. 서른이 넘으면서 미의 기준이 좀 더 관대해지긴 했습니다. 다리가 안 예뻐도 센스 있게 옷을 입은 여자도 멋지고, 옷은 못 입어도 얼굴이 정말 예쁜 여자도 좋습니다.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여자도 매력 있습니다. 이렇게 관대하게 보면 세상 모든 여성이 다 멋져 보이겠죠.

전상옥은 경원대 회화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광고 이미지를 미묘하게 복제하고 재해석해 본래 이미지보다 더욱 강한 욕망과 매력을 덧입히는 작가로 평가받는다. 이호련은 한남대 회화과와 홍익대 대학원 회화과를 졸업했다. 여성을 소재로 중첩된 이미지를 탐구해왔고, 작년에 아카서울갤러리에서 첫 개인전을 가졌다.


1, 2 전상옥의 ‘무제’. 작가는 광고 속 화려하고 도발적인 여성의 이미지를 세련된 붓 터치로 캔버스에 강렬하게 재현한다. 자신의 작품 앞에 선 전상옥 작가.

가감 없이 자기 역사를 드러낸 당당한 여성 전상옥
스모키한 아이 메이크업, 아무나 소화하기 어려울 법한 화려한 의상, 도도하고 차가운 이미지를 상상했다. 작가가 자신의 그림 앞에 나타나기 전까지는 그랬다. 전상옥. 순한 눈매, 수수하고 단정한 차림새다. 그녀는 광고나 패션 화보 속에 만들어진 여성의 이미지를 재해석해 섬세하고 세련된 붓 터치로 캔버스에 표현한다. 전상옥이 선택하는 이미지는 특히 화려하고 이것을 캔버스에 옮기면 한층 강렬해진다.

작품을 보고 상상한 것과 이미지가 많이 다르시네요. 그런 말 정말 많이 들어요. 제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의 이미지가 워낙 화려하니까요. 갖고 싶고, 되고 싶은 온갖 것이 눈길을 사로잡는 잡지 화보와 광고 이미지를 바탕으로 한 작업이어서 그렇죠.

광고 속 여성의 모습을 캔버스에 재현하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욕구와 욕망을 자극하는 광고 이미지의 화려함은 지극히 표피적인 것이고 대부분 실재가 아닌 허구죠. 그 화려함은 지속되는 것이 아니라 찰나적인 것이고요. 처음에는 그 찰나의 아름다움을 막연하게 그리기 시작했어요. 어느 정도는 콤플렉스의 발현 때문일 수도 있고요 .

당신 작품 속의 여성들은 어떤 사람들일까요? 고전 작품 속 여성은 관객이 일방적으로 바라보는 대상이었어요. 하지만 제 작품 속 여성은 힘을 가졌죠. 동경의 대상이자 욕망의 대상이에요. 관객이 바라본다는 것은 같지만 바라보게 만드는, 욕망을 일으키는 힘을 가진 능동적인 존재죠. 매력적이지만 쉽게 접근할 수 없는 대상이기도 해요.

이 시대 최고로 멋있는 여성은 어떤 모습일까요? 당당한 여성이죠. 연륜도 있고, 시대를 앞서 나가며, 자랑거리든 흠이든 자기 역사를 숨기지 않고, 그 자체로 아름다운 여성. 예를 들면 마릴린 먼로? 이 시대가 아니라 과거의 인물이긴 하지만요. 먼로가 시대의 아이콘이었던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고, 누드 촬영을 하면서 담낭 수술로 생긴 커다란 흉터를 감추지 않았다죠. 사람들의 시선을 그토록 많이 받는 최고의 배우였는데도 말이에요.


3 김샨의 ‘Until Knowing the Sorrow’.
4 작품 ‘Wanna be a Lady’ 앞에서 포즈를 취한 앳된 얼굴의 김샨.


타인을 의식하지 않으며 생기가 도는 사람 김샨
김샨의 그림 속 여인은 관람자를 향해 있다. 그것도 얼굴이 클로즈업된 채. 만화 캐릭터처럼 커다란 눈으로 근심, 불안, 기대, 행복 같은 감정을 털어놓으면서 손짓으로도 이야기를 한다. 작품 속 여성의 이미지는 몽환적이고 낭만적이면서도 강렬하다. 어린아이 같기도, 성숙한 여인 같기도 하다.

작품의 모델이 어머니라고 들었습니다. 맞아요. 서양 여성을 모델로 했냐고 많이들 묻는데 엄마가 모델이에요. 어린 시절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엄마의 이미지죠. 저도 자랐고 엄마도 나이 드셨지만 기억 속 그 얼굴은 그대로예요. 당시 아주 화려한 색상으로 독특하게 눈 화장을 하셨던 것도 기억나고, 표정도 생각나요. 그런 것들이 그림에 많이 드러났죠.

왜 엄마의 얼굴을 계속 그리나요? 엄마를 그린다기보다 익숙한 엄마의 이미지를 통해 여성의 여러 이미지를 그리는 거예요. 제일 잘 아는 것이고, 그리고 싶은 것이기 때문이죠. 그림은 거짓말을 하지 않아요. 좋아하는 것, 그리고 싶은 것을 그려야 좋은 느낌으로 완성돼요.

우울하거나 슬퍼 보이는 얼굴도 환하고 따뜻하네요. 전 이집트 카이로에서 태어났어요. 여섯 살 때까지 그곳에서 살았고요. 살갗에 닿던 햇볕의 따뜻함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고 그 느낌을 표현하죠. 유화지만 얇게 여러 번 덧발라서 말갛게 수채화 느낌을 내고, 색채도 밝고 선명하게 써요. 그림을 그리고 있으면 유년으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 들 때도 있죠.

어떤 여자가 가장 멋지다고 생각하세요? 다른 작가 분들은 이 질문에 모두 자기 그림 속 인물과 똑같은 이미지를 얘기했답니다. 남의 눈 의식하지 않고, 획일화에 휩쓸리지 않는 사람. 개성과 창의력이 있으면서 자기 능력과 끼를 맘껏 표현하는 사람요. 외모가 어떠하든, 꾸몄든 꾸미지 않았든 간에 얼굴에 생기가 도는 사람 있잖아요. 이런 사람은 너무 멋있어서 그녀에 대해 알고 싶은 마음이 생기죠.

구체적으로 예를 들 수 있나요? 음, 오프라 윈프리요. 자신감과 확신에 차 있는 것 같아요. 남에게 베풀 줄도 알고. 그녀에 관한 기사는 모두 스크랩해둔답니다.

재미있는 것은 같은 질문에 남녀 작가의 대답이 판이하게 다르다는 것. 여성은 지향하는 여성상을 말했고, 남성은 반할 만한 이상형을 말했다. 전자는 내적 가치에, 후자는 외모 쪽에 무게중심이 쏠려 있다. 응답자가 겨우 2명씩이니 ‘남녀는 이렇게 다르다’고 말하긴 어렵지만 그래도 여전히 남성이 생각하는 여성과 여성이 생각하는 여성의 이미지에 엄청난 간극이 있다는 것은 추측해볼 만하지 않을까? 인터뷰를 모두 마친 후 다시 전시장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작가의 페르소나 혹은 연인들이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자신들이 얼마나 아름답고 멋있는지 얘기하는 것을 다 들었겠다. 그들의 매력이 자꾸 시선을 끌어당기고 붙들어놓아 그곳에 한참을 더 있었다. 그동안 그들도 몰래 나를 바라보는 것 같았다. 자신의 매력이 누군가의 시선을 끌어당긴다는 것, 은근히 설레고 떨리는 일이다.

김샨은 서울여대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벨기에와 상하이 아트 페어에 참가했다. 말없이 말을 거는 그녀의 그림은 번번이 매진될 정도로 인기가 높다.


디자인하우스 [LUXURY 2008년 7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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